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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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5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임훈의 문집. 임훈(林薰)[1500.7.15~1584.1.24]은 자가 중성(仲成), 호는 갈천(葛川)·자이당(自怡堂)·고사옹(枯査翁)이고,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시호는 효간(孝簡)이다. 증조할아버지 임천년(林千年)이 의령 현감(宜寧縣監)을 지낼 때 안음현 갈천동[현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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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사병리 당동 마을 출신 유학자 오병권의 시문집. 『송포문집(松圃文集)』은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사병리 당동(唐洞) 마을 출신 오병권의 시문집으로, 오병권이 죽은 후 둘째 아들 오환숙(吳煥淑)이 1990년 영일 인쇄사에서 영인 간행한 책이다. 거창 지역의 역사와 학문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오병권(吳秉權)[18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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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갈계리(葛溪里)는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의 동쪽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소정리, 남쪽으로는 농산리, 서쪽으로는 병곡리와 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고제면과 접해 있는 법정리이다. 갈계리는 갈계, 탑불, 중산 세 마을로 이루어졌는데, 이 중 갈계의 명칭을 따서 붙여졌다. ‘갈계(葛溪)’는 본래 갈천동(葛川洞) ‘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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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분파.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반발하는 16세기 종교 개혁에 의해 성립된 루터교, 장로교, 개혁파 교회, 성공회와 그 이후에 형성된 침례교, 감리교, 성결교 등 여러 종파를 총칭하는 말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도 장로교, 성결교, 감리교, 침례교, 순복음교 등 다양한 교파가 활동하고 있다. 장로교(長老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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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부터 1910년까지의 시기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의 역사. 조선은 1876년 2월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에 따라 부산, 원산, 인천이 차례로 개항되었고 내륙의 주요 도시에는 개시장이 설치되었는데, 이들 개항장과 개시장을 중심으로 근대의 신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정부는 개항 이후 부국강병을 목표로 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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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 건흥산 정상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거열성(居烈城)은 산악 지형을 이용한 테뫼식 석성으로,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과 마리면을 경계 짓는 취우령(驟雨嶺) 남단 건흥산[573m] 정상에 세워져 있다. 산세와 능선의 기복을 이용하여 축성한 요새 성격의 산성이다. 규모는 둘레가 약 1,115m이며 높이 8m, 하부폭 7m, 상부 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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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거창군 일대에 설치된 행정 구역. 거창 도호부(居昌都護府)는 1728년(영조 4)과 1799년(정조 23) 두 차례에 걸쳐서 설치되었다. 1799년 이후 두어진 거창 도호부는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관내에서 조선 전기 거창현에 속했던 거창읍·가북면·가조면·고제면·남상면·남하면·웅양면·주상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거창 도호부가 처음으로 설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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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일대에 있었던 고려 시대 절터. 거창의 지명은 옛 문헌상에 거열(居烈), 고타(古陀), 거타(居陀), 제창(濟昌), 아림(娥林) 등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들 지명 중 다른 지명과 달리 ‘아림’이라는 지명은 지금도 거창의 별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는 그만큼 거창 지역에서 그 유래와 의미가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림’은 한자로 ‘娥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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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 지역 청정 지역에서 나는 야생 쑥을 먹고 자라 육질이 좋은 한우. 경상남도 거창에서는 덕유산 청정 지역에서 나는 야생 쑥과 농가 맞춤 사료를 농가에 공급함으로써 애우 사육에 힘을 쏟아 왔다. 거창 애우는 2013년부터 4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대상을 수상하였다. 거창군에서는 2000년 6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애우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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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산포리와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대리 사이의 고개 일원의 조선 시대 임진왜란 전적지. 임진왜란 초기에 송암(松巖) 김면(金沔)[1541~1593] 휘하 2천 명의 의병은 거창군의 가북면, 웅양면, 고제면까지 우두령을 중심으로 하는 도계 분수령 일대의 요소에 장병을 배치하여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지례를 공략한 고바야가와[小早川] 휘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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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에 있는 의료 봉사 단체. 적십자 병원은 제네바 협약의 정신과 국제 적십자 운동 기본 원칙에 입각한 적십자 사업의 원활한 수행을 도모함으로써 적십자의 이상인 인도주의를 실현하고 세계 평화와 인류의 복지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하며 "지역민의 건강을 최우선하는 병원"이다. 1905년 10월 대한 적십자사가 창설되면서 동시에 설립되었다. 초기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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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 지역 개신교권이 참여한 독립운동. 1919년 3월 1일과 그 이후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은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 지배에 대한 비폭력적 항거였고, 동시에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 민족 독립운동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적으로 2개월, 길게는 1년 여에 걸쳐 거창을 포함한 전국적 운동으로 확산되었고, 해외에서는 만주 연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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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서 쓰이는 말 가운데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문법적 현상의 특성. 거창 지역어의 문법적 특성은 경상남도 전 지역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 상당히 많다. 문법의 차이는 어휘 차이보다는 훨씬 적고, 음운 차이보다도 적은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거창 지역을 포함한 함양·하동·남해·사천 등은 2인칭 대명사 ‘너’의 쓰임에서 특이한 데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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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서 쓰이는 언어의 음운·문법·어휘적 특성. 거창 지역어의 특성을 음운적 특성, 문법적 특성, 어휘적 특성으로 나누어 기술하기로 한다. 여기에서 미리 강조해 두어야 할 것은 거창 지역어의 어떤 특성이 거창 지역어만의 특성이 아닐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거창 지역어는 인근의 함양 지역어나 산청 지역어를 비롯한 서부 경남의 여러 지역어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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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대동리에 있는 한국 신종교의 하나인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증인회의 거창 지역 교회.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安商洪) 목사에 의하여 1964년 부산 해운대에서 ‘하나님의 교회 예수 증인회’의 이름으로 창교되었다. 안상홍 목사는 1948년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에서 침례를 받았으나, 1962인 교인 23인과 안식일 교회를 탈퇴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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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중앙리에 있는, 거창·합천·함양 관내에 발생하는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피해 회복과 안전 보호, 정당한 권리 행사 및 복지 증진 등을 지원하는 사회 단체. 사단 법인 거창·합천·함양 범죄 피해자 지원 센터는 범죄로 인한 피해자와 직계 친족 및 형제 자매에 대한 국가 및 지방 자치 단체의 보호, 지원과 국민의 범죄 피해자 지원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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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서북쪽 경계부의 내륙 산간 분지에 위치한 군. 거창군의 지리적 위치는 경상남도의 서북쪽 경계부를 이루는 소백산맥의 동쪽 산록부에 위치하여 해발 고도가 높은 내륙 산간 지역이다. 백두대간 소백산맥의 분수계를 중심으로 하여 북동쪽으로는 경상북도와, 서쪽으로는 전라북도와 접하고 있다. 거창군의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7°41′00″~128°05′55″,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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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대현리에 있는 거창 사건 추모 공원 관리 및 거창 사건 명예 회복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 1951년 2월 9일부터 2월 11일 사이에 육군 제11사단[사단장 준장 최덕신], 9연대[연대장 대령 오익경], 3대대[대대장 소령 한동석]의 병력이 ‘견벽 청야(堅壁淸野)’라는 작전 명령 5호에 따라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덕산리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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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김천리에 있는, 거창 군민을 위한 문화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기관. 문화 예술 창달의 장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알차고 내실 있는 공연과 전시를 유치하고 고객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거창 군민들에게 수준 높고 질 좋은 공연과 전시를 보여 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편의 시설 확충과 쾌적한 공연·전시장 환경 조성 등으로 방문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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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대평리에 있는 시외버스 차고지 및 정류장. 거창 시외버스 터미널은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대평리 1005번지에 있는 거창 군민을 위한 버스 터미널이다. 1987년 12월 9일 거창 터미널 주식 회사가 설립하였으며, 9,629㎡의 대지에 3,209.59㎡의 연면적을 가진 3층 규모의 거창 시외버스 터미널을 완공하였다. 현재는 거창 군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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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 존재하는 이름난 산. 명산의 사전적 정의는 이름난 산으로, 국가별로 또는 지역별로 다양한 목적과 취지에 맞춰 명산을 선정하고 이를 활용하고 있다. 거창군 관내에는 총 55개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거창군에는 산림청 선정 ‘한국의 100대 명산’에 해당하는 덕유산, 가야산, 황석산 산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산봉이 비경을 자아내는 바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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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 지역 사람들의 일반 의복과 예복 및 관복의 특색. 거창 지역 의복의 특징은 기후와 지형적 특성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거창은 내륙 산간의 형태이므로 여름에는 강우량이 많고 겨울에는 강설량이 많다. 여름은 다소 시원하지만 겨울은 경남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기온이 낮은 편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일상적인 의복은 함양이나 산청, 김제, 장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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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2년(영조 8) 거창 지역민들이 집단 상경하여 홍수에 대한 진휼을 청원했던 사건. 1731년(영조 7) 거창 지역에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큰 홍수가 났다. 그러나 중앙 정부는 평년과 같이 무거운 세금을 매겼으므로 지역민들의 생활이 ‘참혹할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거창 도호부에 할당된 세금은 과중하였다. 거창 사람들이 매년 부담해야 할 세금을 보면, 전세 무명 70동,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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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민 유격대의 경상남도 조직으로 거창 지역에서 활동한 북한 인민군의 배후 부대. 1950년 9월 인천 상륙 작전 성공 후 인민군 후퇴 과정에서 낙오병과 토착 좌익 세력이, 9월 29일 경상남도 인민 유격대를 결성했다. 경상남도 인민 유격대는 지리산, 덕유산을 중심으로 1950~1951년에 주로 활동했으며 1954년 10월에 완전히 토벌되었다. 1950년 9월 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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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원활하게 해 주는 교통수단 및 도로와 철도 등의 관련 시설. 경상남도 거창군에 존재하는 교통수단은 도로 교통이 유일하다. 거창군에는 철도 노선과 공항이 존재하지 않아, 이러한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인근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항공 노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대구광역시에 존재하는 대구 공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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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 있는 기독교 종교 시설. 1900년대 초기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의 교회는 선교부의 거창 지부를 중심으로 한 지역 교회를 말하기에 거창을 거점으로 한 안의[현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와 함양[현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등지를 포함하여 이해해야 한다. 『조선 예수교 장로회 사기』에는 "동년(1904년) 추(秋)에 거창군 개명리 교회가 성립하다. 선시(先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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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대동리에 있는, 국민 건강 보험 부산 지역 본부의 거창 지사. 국민 건강 보험 공단 부산 지역 본부 거창 지사는 거창·합천·함양 지역민의 질병·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과 출산·사망 및 건강 증진에 대하여 보험 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거창·합천·함양 지역민의 보건 향상과 사회 보장 증진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설립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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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의 정치인. 김동영(金東英)[1936.12.23~1991.8.19]은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태어나 거창 농림 고등학교를 거쳐 동국 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부산 동성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제9대, 제10대, 제12대, 제13대에 걸쳐 국회 의원을 지냈다. 민주 자유당 원내 총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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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3월 여순 사건 반란군 김지회 부대가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황점 마을을 점령한 뒤 거창 경찰서 위천 지서와 북상 지서를 습격하고 북상 지서장을 납치한 사건. 1949년 3월 말 김지회와 홍순석이 이끄는 여순 사건의 반란군이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황점 마을을 점령하고, 거창 경찰서 위천 지서와 북상 지서를 습격하고 북상 지서장을 납치했다. 그 뒤 김지회 부대는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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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거창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김천만(金千萬)[1862~1910]은 1907년 11월부터 경상남도 일대에서 부하 30여 명을 이끌고 경상남도 안의군, 삼가군, 합천군, 함양군 등지를 거점으로 의병 활동을 하였고, 1909년 3월부터 10월까지는 김유준(金有俊), 오낙삼(吳落三), 심낙준(沈落俊) 등과 함께 거창 지역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교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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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부터 1895년 사이에 경상남도 거창 지역의 가조 등지에서 일어난 반봉건 반외세 농민 봉기. 1894년 농민 전쟁은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을 중심으로 농민, 도시민, 소상인, 몰락 양반, 이서 등 봉건 사회 해체 과정에서 몰락한 계층이 광범하게 참여한 반봉건 반외세 근대화 운동이다.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는 안의와 가조 등지에서 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에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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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거창 지역을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난 농민 항쟁. 임술 농민 항쟁은 삼정의 문란과 지배층의 과도한 수탈로 인해 1862년 2월 진주와 이웃한 단성현에서 시작된 이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삼남 지방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거창에서도 삼정의 문란으로 불만을 품은 농민들이 거창 부사 황종석(黃鍾奭)이 진주 항쟁을 살피러 떠나 자리를 비운 사이에 봉기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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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영조 4) 3월 20일 정희량이 거창 일대에서 일으킨 난. 1728년(영조 4)에 노론 정권에 불만을 품은 소론 과격파와 남인들이 연합하여 영조와 노론을 제거할 목적으로 전국적인 규모로 기병(起兵)을 한 사건이다. 무신년에 일어나 무신란(戊申亂)이라 하거나, 이인좌(李麟佐)의 난이라고도 한다. 정희량(鄭希亮)의 난은 1728년 3월 20일 안음현에서 난을 일으킨 정희량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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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 있는 사람이나 차들이 통행할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넓고 큰 길. 거창군의 도로는 고속 도로, 일반 국도, 지방도, 군도가 존재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건설된 국도와 지방도로 인해 인근에 있는 함양, 산청, 합천 등과의 교통 편의성이 증가하였으며, 진주, 창원 등 인근의 중소 도시와의 교류도 증가하게 되었다. 1984년에는 광주 대구 고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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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에 있는 통계청 소속 특별 지방 행정 기관. 동남 지방 통계청은 기존 울산·창원·진주·통영·김해·거창·합천 등 일곱 개 지역 사무소에서 거창·합천 사무소 두 곳을 줄여서 다섯 개 지역 사무소를 두고 있다. 진주 사무소는 두 개 시[진주·사천]와 다섯 개 군[남해·하동·산청·함양·거창]을 관할하고 있으며, 그중 산청군, 함양군과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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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에 있는 마리면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 경상남도 거창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읍[거창읍], 11개면[주상면, 웅양면, 고제면, 북상면, 위천면, 마리면, 남상면, 남하면, 신원면, 가조면, 가북면] 중에서 마리면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이다. 마리면사무소는 행정의 능률과 주민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가족 관계 등록·주민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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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거창 덕유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문태수(文泰洙)[1880~1913]는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출신의 의병장으로, 1906년 이후 덕유산을 중심으로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덕유산 의병 연합 부대를 조직하고, 경부선 이원역을 공격하는 등 활발한 의병 활동을 하였다. 문태수의 본관은 남평 문씨(南平文氏)로, 문익점(文益漸)의 23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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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거창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박춘실(朴春實)[1875~1914]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켜 5년간 경상남북도 및 전라북도 등지를 횡행하며 일본군과 60여 회 교전 또는 습격 등을 감행하여 수백 명을 살해하고 많은 무기를 노획하였다. 1909년 체포되어 교수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14년 감옥 벽을 파괴하고 100여 명의 동지들을 탈옥시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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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 있는 산, 봉, 령, 현, 치 등의 산지 지형. 산(山)의 사전적 정의는 평지보다 썩 높이 솟아 있는 지형을 가리키지만 실제 산지를 설명하는 명칭으로는 산 이외에도 봉(峰), 령(嶺), 현(峴), 치(峙) 등이 다양하게 사용된다. 거창군에는 산, 봉, 령, 현, 치 등으로 명명된 총 55개의 산봉이 분포하며 해발 고도가 1,000m가 넘는 고산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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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서 나는 산나물에 지역 특산물을 가미하여 만든 비빔밥. 거창은 사방으로 해발 1,000m 내외의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산에서 나는 온갖 나물류가 철마다 그 풍미를 풍기며 밥상에 오른다. 현재 거창의 특산물로는 높은 지대에서 생산되는 오미자가 유명하고, 머루를 개량하여 만든 머루 포도도 유명하다. 이외 흔하게 나오는 나물류로는 고사리, 취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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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선거권을 가진 군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공식적인 의사 결정 과정. 선거는 ‘일정한 조직이나 집단에 있어서 특정의 지위에 취임할 사람을 그 조직이나 집단 구성원들이 집합적인 의사 표시를 통하여 선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수인이 일정한 직에 취임할 사람을 선출하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선거는 반드시 국가 기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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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거창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성문길(成文吉)[?~?]은 김동신(金東臣) 의병장의 비장(裨將)으로 합류하여 거창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이다. 1908년 6월 김동신이 체포된 후에는 독자적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여, 차은표(車恩表)와 함께 경상북도 성주에서 활약하였다. 성문길은 경상북도 지례군[현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으로, 1894년 동학 농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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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거창 교회 주남고 목사 및 기독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신사 참배에 저항한 사건.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지 조선의 종교 활동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통제했다. 특히 기독교의 경우 선교사들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했기에 한편으로는 미션 스쿨의 종교 교육을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법인 설립을 용인해 주는 등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대해 노골적인 반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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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는 1860년 최제우가 동학을 창도한 이후 새롭게 발생한 자생 종교 혹은 외국에서 유입된 종교의 총칭. 거창 지역의 신종교는 약 13개 이상의 종단이 활동하고 있으며, 유동적이다. 이를 계통으로 분류해 보면, 불교계, 증산계, 봉남계, 그리스도계, 계통 불명, 외래계[중국, 일본, 서양] 등의 다양한 계통이 공존하고 있다. 신종교는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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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국회 의원과 제7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거창 출신 정치인. 신중목(愼重穆)[1902~1982]은 일제 강점기 거창군 서기, 거창읍 협의원을 지냈고, 해방 후 거창 군수, 남조선 과도 입법 의원 민선 경상남도 의원, 제2대 국회 의원, 국민회 경남 본부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50년대 제7대 농림부 장관, 자유당 재정부장, 1960년대 농업 협동조합 중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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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에서 활동한 문인. 신희성(慎熙晟)[1874~1945]의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자는 문여(文汝), 호는 초헌(蕉軒)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신유성(愼惟誠), 증조할아버지는 신수행(愼脩行)이다. 할아버지는 신영채(愼永采)이며, 아버지는 신종장(愼宗璋)이다. 어머니는 하택동(河宅東)의 딸 진양 하씨(晉陽河氏)이다. 부인은 서해규(徐海奎)의 딸 달성 서씨(達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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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군과 함양군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조선 시대에 거창군의 마리면과 위천면, 북상면과 함양군의 안의면, 서하면, 서상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이다. 안의군은 신라 때 마리현(馬利縣)과 남내현(南內縣) 지역이며 경덕왕 때 ‘이안’과 ‘여만’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여만현(餘萬縣)은 감음현(感陰縣)으로 바뀌었는데, 1390년 이안현(利安縣)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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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언론 활동의 총칭. 언론은 정치·사회·문화·교육 전반에 걸친 정보의 소통 수단으로 말이나 글 등을 통해 정보 전달과 여론 형성의 역할을 하는 행위를 통칭한다. 거창 지역에서 발생되는 크고 작은 일은 방송, 신문, 인터넷 언론 등의 매체를 통하여 기사나 음성 그리고 실시간 영상 등으로 대중에게 전달되고 있다. 중앙 일간지 중심으로 언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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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서 현재 사용하는 말. 경상남도 거창군 일원에서 발화되는 언어를 ‘거창 지역어’라 한다. 이를 ‘거창 방언’이라고 부르지 않고 ‘거창 지역어’라고 부르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두루 알려져 있다시피, ‘언어(language)’와 ‘방언(regional dialect)’ 사이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존재한다. 공통점은 두 용어 공히 다른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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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에서 현대에 이르는 거창의 역사. 거창 지역은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살았던 자취를 남기고 있는 곳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서, 거창 정장리 유적은 발굴 조사를 통해 석기 공방을 비롯해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이 시기 사람들은 생산 활동을 위하여 동물의 뼈나 뗀석기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무리를 지어 사냥감을 찾아다니면서 이동하는 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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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조선 시대 거창 지역에 설치한 교통, 숙박 시설. 거창 지역에는 이미 고려 시대에 무촌역(茂村驛)과 성기역(星奇驛)이 설치되었고, 조선 초 성초역(省草驛)이 새로 설치되었다. 고려 후기 거제현과 함께 오양역(烏壤驛)이 함께 거창군 가조 지역에 이동했다가 조선 초 거제도로 돌아갔다. 조선 초 거창 지역에 설치되었던 원은 동원(東院), 정태원(鼎台院), 고천원(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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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체결 이후 거창군 고제면을 근거지로 활약한 항일의병.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오 진사(吳進士) 부자에 의해 조직된 지역 의병이다. 을사늑약 체결 후 이에 반대하는 의병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거창군 고제면은 거창 내에서도 의병 운동이 활발하였던 지역 중 하나로, 궁항리에서는 오 진사 부자를 중심으로 의병 부대가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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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거창 출신의 문신. 오상문(吳尙文)[1412~1475]의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선질(先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오기룡(吳起龍), 할아버지는 소윤(少尹)을 지낸 오흥(吳興)이다. 아버지는 사직(司直)을 지냈으며 형조 판서(刑曹判書)에 증직(贈職)된 오선량(吳善良), 오상문의 선대는 할아버지 오흥 대에 처음으로 거창현에 정착하였다. 오상문은 거창현 출신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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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문인. 오정민(吳貞敏)[1785~1840]의 본관은 함양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오찬식(吳燦寔), 증조할아버지는 오윤(吳潤)이다. 할아버지는 가남재(伽南齋) 오대인(吳大仁)이다. 아버지는 오명상(吳命祥)이며, 어머니는 이수남(李壽南)의 딸 사천 이씨(泗川李氏)이다. 부인은 김억안(金億安)의 딸 김해 김씨(金海金氏)이다. 오정민은 17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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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왜구가 경상남도 거창 일대에 침입한 사건. 왜구란 대략 13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한반도와 중국 연안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일본인 해적 집단을 총칭하는 말이다. 당시 왜구가 자행한 각종 노략질은 일반 민인들의 삶에 큰 고통을 안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조운(漕運)를 비롯한 행정 체제에도 큰 혼란을 초래하였다. 고려 시대 거창 지역은 삼별초 항쟁 이후 왜구의 침략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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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과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을 잇는 고개. 우두령(牛頭嶺)은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과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을 연결하는 고개이며, 높이 580m이다. 과거 우두령은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즉 경상남도의 남해의 사천에서 진주, 산청, 함양을 거쳐 우두령을 지나 경상북도의 김천, 상주, 점촌을 거쳐 문경 새재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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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체결 후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를 근거지로 활약한 항일 의병. 을사늑약 체결 후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서 조직되어 덕유산 의병과 함께 일본군 및 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거창의 대표적인 지역 의병이다. 을사늑약 체결 후 이에 반대하는 의병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무렵인 1906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서 오일선(吳馹善)을 중심으로 김성진(金成鎭),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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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을 시조로 하고 임천년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거창군의 세거 성씨. 임씨의 도시조(都始祖)[모든 임씨의 시조]는 임팔급(林八及)으로, 당나라 때에 귀화한 8학사의 한 사람이다. 신라에 귀화했으며 자손이 흥성해지면서 많은 파로 분관되었다. 은진 임씨(恩津林氏)는 1세조 임성근(林成槿)이 개성에 살다가 2세 임정(林挺) 때 금산군 안성으로 옮겼고, 3세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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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 살았던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했던 음식 관련 어휘. 경상남도 거창 지역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음식 관련 어휘의 특색과 형태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거창 지역의 음식 어휘를 주식과 부식, 반찬과 별식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같은 내용을 가리키지만 표준어와 형태가 다른 어휘나 같은 형태이지만 내용이 다른 어휘를 중심으로 기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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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주로 음(音)으로 나타내는 예술. 거창의 음악은 우리 음악과 서양 음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주로 우리 음악을 창작, 연주, 교육하는 ‘한국 국악 협회 거창 지부’[1991년 1월 26일 창립]는 거창의 예술과 문화 발전을 위하여 거창군의 8개 협회[국악, 무용, 문인, 미술, 사진, 연극, 연예,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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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4월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궁항리 매학 마을에서 일본군과 교전한 항일 의병. 1908년 4월 7일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궁항리 매학동에서 이(李) 진사(進士)가 이끄는 의병이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였다. 러일 전쟁과 을사늑약의 체결로 이어지는 일제의 국권 침탈이 가속화되자 이에 반대하는 의병이 전국적으로 크게 일어났다. 거창 등의 경상남도 서부 지역에서는 덕유산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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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1945년 일제의 식민 통치와 거창 지역민의 대응, 지역 사회 변천사. 거창의 역사에서 일제강점기는 중세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중요한 시기로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때였다. 당시 대다수의 지역민들은 정치적 자유는 물론이고 생존권까지 위협당해 절대 빈곤의 상태에 빠졌다. 해방 전까지 거창 전체 인구 중 30% 이상의 주민이 해외로 이주해야 했던 사실은 이를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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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거창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임수안(林遂安)[?~?]은 의병장으로서 약 9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독립적으로 활동하였지만, 상황에 따라 김동신, 이장춘, 유종환 등의 의병 부대와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김동신(金東臣) 의병장의 비장으로서 거창을 비롯하여 지리산과 덕유산을 무대로 활동하였다. 임수안은 김동신 의진에 참여한 의병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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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1598년 2차에 걸쳐 일본이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일대를 비롯한 조선 전역을 침략해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정명가도(征明假道)[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길을 빌리다]를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함으로써, 1598년(선조 31)까지 7년간 임진왜란이 조선에서 치러졌다.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을 이루고 있던 조선 시대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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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의 지세, 지질, 지형, 기후, 토양 등의 지리적 조건. 지표면의 일정 부분을 구분하는 단위로 지역을 설정하고 이러한 지역의 특성, 즉 지역성을 구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지리학이다. 지역성을 이루는 항목 중에서 거창군의 위치, 지세, 지질, 지형, 기후, 토양 등의 주제가 자연 지리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은 대한민국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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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일어난 태풍, 홍수, 호우, 폭풍, 해일, 폭설, 가뭄, 지진 또는 기타 이에 준하는 자연현상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재난. 경상남도 거창군은 한반도 내륙에 있고 하천의 상류부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비교적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다고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발생한 이상 기후 현상이 발생하여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록적인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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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량의 난으로 몰수되었던 조선 후기 거창의 명신 정온의 위토가 90여 년 만에 반환된 사건. 정온(鄭蘊)은 병자호란 때 척화 공신으로 조야에 이름이 높았으나 그의 4대손 정희량(鄭希亮)은 1728년(영조 4) 반란을 일으켜 안음, 거창, 함양, 합천, 삼가 일대를 점령했다가 관군에 진압되었다. 그 후 정희량의 가족은 처벌되었고 가산은 적몰(籍沒)되었다. 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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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거창 출신의 학자. 정유명(鄭惟明)[1539~1596]의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극윤(克允), 호는 역양(嶧陽)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충주 목사(忠州牧使)를 지낸 정종아(鄭從雅)이며, 할아버지는 사포서 별제(司圃署別提)를 지낸 정옥견(鄭玉堅)이다. 아버지는 진용교위(進勇校尉) 정숙(鄭淑), 어머니는 부사용(副司勇)을 지낸 정순(鄭純)의 딸 진주 정씨(晋州鄭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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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이나 자연의 힘을 초월하는 존재나 원리를 신앙하는 행위의 총칭. 경상남도 거창군에 불교가 들어온 시기는 신라 때로 추정된다. 이는 거창 지역의 고찰(古刹) 고견사(古見寺), 송계사(松溪寺) 등의 창건주가 원효(元曉)[617~686]와 의상(義湘)[625~702] 두 고승(高僧)이기 때문이다. 거창 지역에는 고찰이 많다. 경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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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거창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항일 운동가. 주남수(朱南守)[1892~?]는 경상남도 거창에서 한학자 주회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때 3월 20일 거창에서는 거창읍 교회를 설립한 주남수의 형 주남고를 중심으로 거창읍 교회 교인들이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주남고는 당시 같은 교회 교인이던 오형선의 집에서, 김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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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2월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일어난 국군에 의해 민간인이 집단 희생된 사건. 1951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육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가 지리산 일대 빨치산 토벌을 구실로 민간인 719명을 학살했다. 국군이 자국의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이 충격적 사건은 곧 국회에서 문제가 되었고, 현지에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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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에 설치된 대표적 조선인 탄압 기구. 1910년 일제가 조선을 병합한 후 헌병 경찰 제도를 시행하고 각지에 헌병대를 설치하였다. 특히 의병 활동이 있었던 곳에 헌병 분대를 두었다. 거창은 한말 의병 운동이 활발한 곳이었으므로 헌병 분대를 두었다. 거창 헌병 분대는 거창 지역 대표적인 일제의 탄압 기구였다. 1919년 3·1 운동 당시 거창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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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효자. 최발(崔潑)[?~?]은 정유재란 때 여든 살이 넘은 아버지를 업고 피난하다 왜적을 만나자 곧은 절의로 왜적에 대항하다가 아버지를 안은 채 순절한 효자이다. 최발(崔潑)의 본관은 화순(和順)이며, 조선 세종(世宗)~세조(世祖) 때의 문신으로 공조 판서(工曹判書)를 지낸 문혜공(文惠公) 최선문(崔善門)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참봉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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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거창 출신의 효자. 최진대(崔鎭大)[?~?]는 어려서부터 홀어머니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고, 돌아가신 후에도 그 정성을 그치지 않고 죽으로만 연명하여 나라에서 동몽교관을 내린 효자이다. 최진대의 본관은 화순(和順)이다. 화순 최씨의 시조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최세기(崔世基)이다. 고려 시대에 최세기가 전라도 화순의 옛 이름인 오산(烏山)군에 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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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에 있는 유서 깊은 전통 마을. 영승(迎勝)은 삼국 시대의 역사와 전설이 깃든 유서 깊은 마을이다. 조선 시대에는 안의 3동 중 원학동에 자리 잡은 안의현 동리면의 중심 마을이었고,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면 소재지가 있던 곳이다. 비록 1960년대 이후 이농으로 인해 주민이 많이 줄었고 옛 집들은 현대식 건물로 바뀌고 있지만, 한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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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에 있는 한국 농어촌 공사의 거창·함양 지역 지사. 한국 농어촌 공사 거창·함양 지사는 농업 생산성 증진 및 농업인 소득 향상을 이끌어 농어촌의 경제·사회적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이다. 한국 농어촌 공사 거창·함양 지사는 거창·함양 지역의 농촌 정비 사업과 농업 기반 시설 관리, 농촌 지역 개발 사업 등을 실시하기 위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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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휘를 시조로 하고 오흥과 오중부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거창군의 세거 성씨. 우리나라 오씨의 시조는 무혜공(武惠公) 오첨(吳瞻)으로 중국에서 귀화했는데, 중국의 남북조 시대인 500년에 혼란을 피해 무역선을 타고 전라남도 해남에 도착했다. 오첨은 병법으로 유명한 오기(吳起)의 45세손이다. 오첨의 19세손인 오광휘(吳光輝)가 함양 오씨(咸陽吳氏)의 득관조(得貫祖)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