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진사 의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545
한자 吳 進士 義兵
영어공식명칭 Justice Army of Oh Jinsa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하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운동
관련 인물/단체 오 진사

[정의]

개항기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에서 활동한 의병 부대.

[개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오 진사(吳進士) 부자에 의해 조직된 지역 의병이다.

[역사적 배경]

을사늑약 체결 후 이에 반대하는 의병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거창군 고제면은 거창 내에서도 의병 운동이 활발하였던 지역 중 하나로, 궁항리에서는 오 진사 부자를 중심으로 의병 부대가 결성되었다.

[경과]

거창군 고제면 궁항 마을의 오 진사는 인근 각 면에서 돈과 곡식을 징발하여 군비에 충당하는 한편 주민을 대상으로 의병을 모집하여 부대의 확장을 도모하였다. 1908년 2월 오 진사 부자가 자택 내에 잠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곡면장이 밀고하면서 일제는 오 진사 의병을 토벌할 계획을 세웠다. 거창 경찰서에서는 일본군 합천 수비대, 함양 수비대와 함께 21~22일 사이 오 진사를 체포할 계획을 세운 후, 합천 수비대는 우측에서, 함양 수비대는 좌측에서 공격하도록 하고 경찰서는 정면에서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22일 일제의 경찰과 군인은 합동 작전으로 우선 적화면 일대를 수색하였고, 이튿날 고제면 궁항리를 포위, 공격하였다. 그러나 오 진사 부자는 이에 앞선 15일 이미 임씨, 신씨, 배씨 등 세 사람을 의병에 가담시킨 후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이후에도 오 진사 의병 부대는 고제면에 기반을 두고 의병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 갔다.

[결과]

1908년 4월 26일 거창군 거창읍 동변리에 격문이 돌았다. 그 내용은 “왜군이 오거든 속히 의병에게 통보할 것, 의병이 없으면 한국은 오랑캐가 될 것이다. 의병의 정성을 생각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보답할 것” 등이었다. 경찰이 이에 대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궁항리 매학 마을에 사는 배준경이 오 진사로부터 의병 격문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자 배씨의 친척들은 배준경의 면죄를 빌기 위하여 옆 동네에 잠복 중이던 오 진사와 부하 1명을 체포하여 일본군 수비대에 넘겼다. 이로 인하여 일본 군경의 집요한 추적을 받던 오 진사는 체포되고 말았다.

[의의와 평가]

을사늑약 체결 이후 일제의 국권 침탈에 반대하며 봉기한 거창군 지역 의병으로서 큰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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