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009
한자 宗敎
영어공식명칭 Religion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덕진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이나 자연의 힘을 초월하는 존재나 원리를 신앙하는 행위의 총칭.

[불교]

경상남도 거창군에 불교가 들어온 시기는 신라 때로 추정된다. 이는 거창 지역의 고찰(古刹) 고견사(古見寺), 송계사(松溪寺) 등의 창건주가 원효(元曉)[617~686]와 의상(義湘)[625~702] 두 고승(高僧)이기 때문이다. 거창 지역에는 고찰이 많다. 경상남도·경상북도·전라북도 3도의 접경 지역이자, 덕유산·가야산·지리산 3대 국립 공원의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지리적 특성에 걸맞게 산자락마다 절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리적으로 백제 문화권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거창은 신라와 백제의 완충 지역으로서 문화의 융화가 잘 나타나 있다. 거창 지역의 불교는 고려 때 더욱 융성하여 상림리 석조 관음보살 입상[보물 제378호]이나 가섭암지 마애 여래 삼존 입상[보물 제530호] 등의 불교 유산을 남겼다. 조선 시대에 들어 억불 숭유 정책으로 다소 소강 상태에 이르렀고,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많은 사찰과 유적들이 병란에 대부분 소실되었다.

2016년 현재 거창 지역에는 약 15개 종파에 50여 개의 사찰이 있다. 전통 사찰로 지정된 곳은 고견사, 금봉암, 송계사, 연수사 네 곳이다. 모두 대한 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末寺)이다. 고견사 동종(古見寺 銅鍾)은 보물 제1700호[2010년 12월 21일 지정]이고, 고견사 석불(古見寺石佛)은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263호[1988년 12월 23일 지정]이다. 송계사 내원암 부도는 옛 영취사의 내원암 자리, 현 송계사 입구 개울가에 있던 것으로 ‘내원 암지 부도’라고 불리던 것인데, 2009년 송계사로 옮겼다. 송계사 부도에는 강희 57년(1718)에 세웠다는 명문이 있다. 연수사 일주문 왼편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124호인 수령 600년이 넘은 연수사 은행나무가 있다.

거창 지역의 사찰 가운데 대한 불교 조계종에 속한 사찰은 해인사 거창 포교당인 심우사, 죽림 정사, 약수암, 붓다 선원, 보림사, 정각사, 웅양사, 금봉암, 송계사, 성불사, 정토사, 행복한 절, 연수사, 보현사, 고견사, 소림사, 보광사, 감월암, 아림사 등이다. 대한 불교 천태종의 경우 보광사, 구인사 거창 지회 등이 있으며, 그 외 대한 불교 법화종, 대한 불교 일승종, 일불 조계종, 선조계종, 한국 불교 태고종, 대한 불교 관음종, 대한 불교 조동종, 대한 불교 선학원 등에 소속된 사찰이 다수 있다. 한국 불교의 가장 큰 종단인 대한 불교 조계종은 사찰 수에서나 신도 수로 보아 교세가 월등하지만, 군소의 작은 종단은 교세가 미약한 편이다.

[유교]

사서오경(四書五經)을 기본 경전으로 하는 유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삼국 시대이다. 하지만 거창 지역에 유교 교육의 거점이 생긴 것은 고려 말에 향교(鄕校)가 생기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용전 마을을 ‘향교 마을’이라 부르는데, 이는 고려 시대 향교가 있었던 데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거창 지역의 서원(書院)은 선현의 존경과 후진 장학을 목적으로 세워진 사학 교육 기관이다. 서원의 구조는 선현을 봉사하는 사(祀)와 자제를 교육하는 재(齋)로 구성되었다. 서원이 발달하자 관학인 향교의 기능이 매우 떨어졌다. 서원의 교육 내용이 경학(經學)과 사장(詞章)을 중심으로 해 과거 시험 과목과 매우 밀접했기 때문이다.

거창 지역에서 서원은 17세기 중반에서 18세기 후반까지 약 150여 년 동안 14곳이 세워졌으며, 이 중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서 제외된 곳은 1737년(영조 13)에 세워진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포충사(褒忠祠)뿐이다. 하지만 서원은 철폐령 뒤에도 세워졌으며, 일제 강점기와 광복 후에도 세워진 곳이 있다. 철폐령 이전에 설립된 서원도 모두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다시 중건되었다. 근년에 세워진 서원들은 교육의 기능보다 선현을 기리는 사묘(祀廟)의 성격이 강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비록 서원이나 사(詞)란 이름을 쓰진 않아도 정(亭), 재(齋) 등의 이름으로 유림에서 제례를 올려 선현을 봉사하는 곳도 많다. 이로 보아 거창 지역에 유교 전통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거창 지역에는 1573년 세워져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는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갈천 서당(葛川書堂)[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295호], 1870년에 건립된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송정리 운정 마을의 현용재(見龍齋)를 비롯하여 마을마다 서당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 훼멸되었다.

성균관 거창 유도회는 그 창립 연도가 정확하지 않으며, 1940년 무렵으로 추정될 뿐이다. 거창 유도회는 거창 향교와 협력하여 각종 유학의 전례(典禮), 향교 재산 환수 운동, 지역 청소년 예절 교육, 강연, 유학 관련 서적의 간행 등을 주관하고 있다. 경상도 유교 문화의 대표 지역을 꼽으라면 좌안동(左安東), 우안음(右安陰)[현재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위천면·북상면 일대]이라고 할 정도로 거창 지역은 정통 유교의 고장이다. 거창 유학의 특징은 한 마디로 ‘선비 정신’이다. 거창 유학은 사화기에는 정여창(鄭汝昌)[1450~1504], 김굉필(金宏弼)[1454~1504] 등 영남 사림파(嶺南士林派)의 전통을 계승한 사림파에 속했고, 영남학파 중에는 주로 남명학파(南冥學派)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의 전형적인 산림처사(山林處士)요 강직한 선비의 표상인 남명 조식은 경의(敬義)를 신조로 이론보다 실천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은 거창의 유림들은 ‘충의와 절의를 숭상’함에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천주교]

영남 지방에 천주교의 씨가 심어진 것은 신유박해(辛酉迫害)[1801] 후의 일이다. 당시 기호 지방(畿湖地方)[경기도와 황해도 남부 및 충청남도 북부 지역]에서 피난하여 남하하는 천주교인들은 태백산, 소백산 등의 산간벽지에서 화전을 일구면서 박해를 피하였다. 그러나 기해박해(己亥迫害)[1839]와 병인박해(丙寅迫害)[1866]가 일어나면서 천주교인들을 모조리 색출하자, 그들은 근거지를 남으로 이동하였다. 이들 중 한 갈래는 동해를 따라 현재의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동래구·기장군으로 흩어져 정착하였다. 다른 한 갈래는 낙동강을 따라 경상남도 밀양시·함안군, 경상남도 김해시와 경상남도 거제도로 흩어져 살았는데, 이들 가운데 몇몇은 경상북도 상주군을 중심으로 경상북도 김천시와 경상남도 거창군·합천군의 일부 지방까지 들어와 숨어 살았다. 지리산, 덕유산을 중심으로 하여 전라북도 진안군·장수군·무주군과 경상남도 함양군·거창군·합천군까지가 그 근거지였다. 경상남도 서부 지역 곳곳에서 박해를 피하며 숨어 살던 천주교인들은 1880년대부터 신앙의 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됨에 따라, 1882년경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몽석리에 처음으로 공소(公所)[본당보다 작은 교회 단위]를 설립하였다. 이후 공소가 1892년에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박암리로 옮겨지면서, 초대 회장으로 박정식이 선임되고, 경상북도 가설 본당에 소속되었다. 1896년 경상남도 위천면 상천리에 가섭 공소[전라북도 진안 본당 관할]를 설립하고, 1907년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당산 마을에 공소를 설립하였다. 1913년에 진안 본당에서 경상남도 함양 본당으로 관할이 바뀌었다. 1916년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 학리 공소, 1924년에 양평 공소를 설립하였다. 1932년에 합천 본당을 신설하여 거창 공소와 박암 공소, 학리 공소, 양평 공소를 합천 본당에 소속하도록 하였다.

1940년 성당[대구 교구 관할]을 건립하여 거창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1957년 대구 교구에서 부산 교구가 독립하게 되면서 거창 성당은 부산 교구 거창 성당으로 개칭되었고, 1966년에는 마산 교구가 설정되면서 마산 교구 거창 성당으로 개칭되었다. 현재 거창 성당의 교적에 등록된 신자는 4천여 명에 이르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에는 군 단위에서는 드물게도 두 개의 성당[거창 천주교회, 위천 천주교회]이 있다.

공소로는 1960년에 설립된 가지리 공소, 1990년에 설립된 웅양 공소, 1951년에 설립된 신원 공소, 1972년에 설립된 가조 공소가 있다.

[개신교]

거창 지역에서의 최초의 개신교 기록은 1904년으로 확인된다. 『조선 예수교 장로회 사기』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에 속해 있던 선교사 심익순[Walter E Smith, 1874~1932]에 의해서 1904년에 거창 지역 최초로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개명 교회(開明 敎會)가 설립되었다고 전한다. 심익순은 이외에도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웅양 교회[1906],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의 가조 교회[1906],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가천 교회[1907] 등을 설립했다.

호주 장로교 선교회는 1911년부터 거창 지역에 선교 지부를 설립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는데, 맹호은[Frederich John Macrae, 1884~1973]이 신설 책임자가 되어 1912년 거창으로 파송되었다. 맹호은은 거창을 거점으로 경상남도 안의군[현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경상남도 함양군 등지를 순회하며 교회를 개척하였고, 웅양 교회·가조 교회·가천 교회·위천 교회·거창읍 교회 등에서 사역하였다. 맹호은은 곧 새로 도착한 길아각(J. T. Kelly) 목사 부부와 합류하였다. 길아각 목사는 웅양 교회, 가조 교회, 가천 교회, 위천 교회, 성기 교회, 원기 교회 등에서 사역하였다. 이 중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의 원기 교회는 그 설립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1914년 9월 거창에 추가 배속된 여자 선교사 에버리(Ebery)와 스키너(Skinner)는 위의 두 선교사 가족과 함께 거창, 안의, 함양 지역을 순회하며 전도 활동에 힘썼다. 에버리와 스키너의 후임인 스코트는 1916년부터 1928년까지 거창 지역에서 유치원, 보육원, 명덕 강습소 등의 교육 활동을 주도하였다.

한국인 교회 지도자로는 오형선이 있다. 거창 교회를 설립한 오형선은 1913년 맹호은 선교사에게서 세례를 받았고, 1918년에 거창 교회 초대 장로로 옹립되기도 하였다. 황보기(皇甫琪)는 맹호은의 어학 교사였으며, 1912년부터 거창·안의·함양 3군의 교회를 돌보는 순회 조사로 임명되어 1916년까지 5년간 일했다. 1917년에는 거창군 내 일곱 개 교회 조사로 시무하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선교사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회를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위천 교회는 1909년에 유응춘이,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성기 교회는 1913년에 김달성이 설립하였다. 또한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거창읍 교회는 1909년에 오형선이,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의 원기 교회는 1915년에 정선택이,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의 적화 교회는 1923년에 정경식이,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청림 교회는 1926년에 고운서가,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말흘 교회는 1931년에 윤한선이,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농산 교회는 1934년에 고운서가,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 교회는 1934년에 최성환이,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북상교회는 1934년에 김동선이,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도평 교회는 1936년에 김기화가,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 교회는 1936년에 정봉조가,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봉산 교회는 1937년에 황보기가 설립하였다.

2016년 현재 경상남도 거창군에는 80여 개의 교회가 있다. 이중 거창 지역에서 가장 큰 교단은 장로교 교단이다. 거창 지역의 장로교 교단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와 기독교 대한 장로회로 크게 나누어진다.

[신흥 종교]

1860년 창도된 동학(東學)을 기점으로 그 이후에 발생된 종교를 신흥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창 지역에는 신흥 종교가 13개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성덕도 거창 교화원(聖德道 居昌 敎化院), 여호와의 증인 거창 회중(여호와의 證人 居昌 會衆), 원불교 거창 교당(圓佛敎 居昌 敎堂), 금강대도 경상 본원(金剛大道 慶尙 本院), 증산도 거창 지부(甑山道 居昌 支部), 국제 도덕 협회 거창 지부(國際 道德 協會 居昌 支部), 거창 대순 진리회(居昌 大巡 眞理會), 대한 천리교 거창 교회(大韓 天理敎 居昌 敎會), 거창 통일 교회(居昌 統一 敎會), 거창 대신 불당(居昌 大信 佛堂), 거창 천부 교회(居昌 天父 敎會), 거창 하나님의 교회(居昌 하나님의 敎會), 한국 SGI 거창 문화 회관(韓國 SGI 居昌 文化 會館) 등이다. 신흥 종교 단체는 한두 곳을 제외하고는 신자가 50여 명을 넘지 못하여, 교세가 상당히 미약하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