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헌병대 거창 헌병 분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140
한자 晋州 憲兵隊 居昌 憲兵 分隊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진주 헌병대 거창 헌병 분대, 진주 헌병대 산하 거창 헌병 분대로 창설
해체 시기/일시 1919년 9월 이후 - 진주 헌병대 거창 헌병 분대, 헌병 경찰 제도 폐지
최초 설립지 진주 헌병대 거창 헌병 분대 - 경상남도 거창군
성격 군사 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에 설치된 대표적 조선인 탄압 기구.

[개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병합한 후 헌병 경찰 제도를 시행하고 각지에 헌병대를 설치하였다. 특히 의병 활동이 있었던 곳에 헌병 분대를 두었다. 거창은 한말 의병 운동이 활발한 곳이었으므로 헌병 분대를 두었다. 거창 헌병 분대는 거창 지역 대표적인 일제의 탄압 기구였다. 1919년 3·1 운동 당시 거창 지역 시위를 탄압하였으며 거창민들의 습격을 받기도 하였다.

[설립 목적]

진주 헌병대 거창 헌병 분대는 거창 일대의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조선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10년 진주 헌병대 산하 거창 헌병 분대는 거창군, 초계군, 합천군, 감가군, 안의군, 함양군, 산청군을 관할하였다. 산청, 삼가, 권빈, 안의, 함양, 웅양에 각각 헌병 분견소를 두었다. 1914년 거창 헌병 분대의 관할 구역은 거창, 합천, 산청, 함양이었다. 산청과 함양에 헌병 분견소를 두었다. 1919년 3·1 운동 이후 헌병 경찰 제도가 폐지되면서 거창 헌병 분대도 폐지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헌병 경찰 제도는 헌병이 경찰의 업무까지 담당하여 그 역할이 매우 광범위하였다. 그리고 한국인의 모든 생활을 철저히 탄압하고 규제하기 위하여 헌병 경찰에게 일정한 사법관의 특권까지 부여하고 태형 제도(笞刑制度)를 제정, 공포하였다. 즉 1910년 12월 3일에 총독의 제령 제10호로 「범죄 즉결례」를, 1912년 3월에는 제령 제13호로서 「조선 태형령」을 제정 공포하면서 많은 권한이 헌병과 경찰에게 주어졌다. 헌병대에서는 첩보 활동, 치안, 위생, 소방 업무뿐 아니라 범죄 즉결, 민사 소송 조정, 검찰 사무, 집달리 사무, 도로 건설, 삼림 보호, 나무 심기 등의 장려 행정에도 관여하였다.

[의의와 평가]

1910년대 일제 무단 통치의 핵심인 헌병 경찰 제도를 시행해 조선인들을 탄압하고 억압했던 기구이다. 3·1 운동 당시 거창민들의 저항을 받았던 기구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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