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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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정월 대보름에 지신밟기를 하면서 부르는 민요. 「지신밟기 소리」는 「지신밟기 노래」라고도 한다.「지신밟기 소리」는 지신밟기를 하면서 부르는 세시 의식요이다. 지신밟기는 정월 대보름에 마을 공동체에서 행하던 세시 풍속이다. 지신밟기는 마을 사람들이 농악대를 앞세워 마을 당산에 고사를 지내고 마을과 각 가정을 차례로 다니면서 지신(地神)을 밟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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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에 간행한 조선 후기 학자 윤주하의 시문집. 『교우집(膠宇集)』의 저자인 윤주하(尹胄夏)[1846~1906]의 자는 충여(忠汝), 호는 교우(膠宇),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아버지는 윤흠도(尹欽道)이고, 생부는 윤문도(尹文道)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에서 태어났고, 합천에서 거주하였다.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 성재(性齋) 허전(許傳), 한주(寒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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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가북면 용산리 출신의 조선 시대 문신 문위의 시문집. 문위(文緯)[1554~1631]의 본관은 남평(南平)이며, 자는 순부(純夫), 호는 모계(茅溪)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문산두(文山斗)이며, 어머니는 함양 선교랑(咸陽 宣敎郞) 오세평(吳世平)의 딸이다.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배웠고 이후 조식(曺植), 오건(吳健), 정구(鄭逑)에게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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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출신의 조선 후기 유학자 하종호의 문집. 조선 후기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에서 태어난 유학자 하종호가 죽은 뒤 증손자 하영필이 펴낸 문집. 하종호(河宗浩)[1837.11.8~1898.4.14]의 자는 성중(聖仲), 호는 봉서(鳳棲),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하경룡(河景龍),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 신사모(申思模)의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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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이자 의병장 유중룡의 시문집. 유중룡(柳仲龍)[1558~1635]은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자는 여견(汝見), 호는 어적산인(漁適散人)이다. 아버지는 승지(承旨)에 추증된 유유춘(柳有春)이며, 어머니는 청주 경씨(淸州慶氏) 경지(慶祉)의 딸이다. 어려서는 가학으로 배우다가 자라서는 오건(吳健)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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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출신 유학자 신권의 문집. 신권(愼權)[1501~1573]의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언중(彦仲), 호는 요수(樂水)이다. 선교랑(宣敎郞) 훈도(訓導)를 지냈다. 아버지는 승훈랑 신우맹(愼友孟)이며, 어머니는 팔계 정씨이다. 부인은 은진 임씨(恩津 林氏)로 지평에 증직된 진사 석천(石泉) 임득번(林得蕃)의 딸인데 갈천 임훈과 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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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임석형의 시문집. 임석형(林碩馨)[1751~1816]의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원경(遠卿), 호는 용암(龍巖)이다. 선대에 임득번, 갈천 임훈, 첨모당 임운 등이 있으며 매헌(梅軒) 임상권(林尙權)의 아들이다. 지기(志氣)가 굳었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남을 돕기를 좋아하였다. 수승대에 퇴계 명명 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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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최윤정의 시문집. 최윤정(崔胤貞)[1630~1684]의 본관은 흥해이며 자는 복원(復元), 호는 종모당(終慕堂)이다. 원래 최산랑(崔山蓈)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단양 군수를 지낸 최후원(崔後遠)의 양자가 되었다. 1663년(현종 4) 계묘(癸卯) 식년시(式年試)에 생원 3등으로 급제하였으며 하겸진, 배계헌, 송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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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출신 조선 후기의 학자 윤동야의 문집. 윤동야(尹東野)[1757~1827]는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살목 마을 출신의 학자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성교(聖郊), 호는 소심(小心)·현와(弦窩)이며, 부친은 윤석로(尹碩老)이다. 최흥원(崔興遠), 정종로(鄭宗魯), 이만운(李萬運) 등에게 학문을 배워 학문과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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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금원산 자연 휴양림 동굴 바위에 새겨진 고려 시대 마애 여래 삼존 입상.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산 6-2번지 금원산 자연 휴양림 커다란 천연 동굴의 바위를 얕게 파고 만든 고려 시대 마애 여래 삼존 입상이다. 거창 가섭암지 마애 여래 삼존 입상이 있는 가섭암의 창건과 폐사(廢寺)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게 전하지 않는다. 현재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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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5현에 속하는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평촌 최숙량이 거창의 가조 대학동에서 만난 것을 추모하기 위하여 평촌의 후손과 유림 1천여 명이 1898년에 건립한 정자. 모현정은 흥해 최씨 후손과 30개 고을 유림 1천여 명의 성금으로 1898년(광무 2)에 세웠다. 조선 전기 1494년(성종 25)경 합천 숭산에 머물고 있던 김굉필(金宏弼)[1454~1504]과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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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용암 임석형이 건립한 정자. 용암정은 출사하지 않고 안빈낙도하던 용암(龍巖) 임석형(林碩馨)[1751~1816]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노닐던 유허지에 선조들의 뜻을 이어 1801년(순조 1)에 창건한 정자다. 이후 후손들이 자기 수양과 선현 추모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1864년(고종 1) 임석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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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거창군의 곽종석이 유림 대표로 파리 평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제출한 사건. 1894년 봉건적 사회질서와 외세의 침략에 맞서 봉기한 가조면의 농민들은 거창읍을 향해 진군하다 관군과 일본군에 진압당하였다. 유생들은 신분 질서를 뒤흔드는 농민군들을 스스로 민보군을 조직하여 처단하였다. 개항 초기 ‘근대’의 변화에 모든 것이 혼란스럽던 시절, 민중과 유생이 꿈꾸던 나라는 달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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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거창 신씨 선현의 추모와 서원의 문생 교육을 위하여 건립한 구연 서원의 문루. 거창 구연 서원 관수루는 거창 신씨 요수공 후손과 고을 사림들이 힘을 모아 1740년(영조 16)에 건립하였다. 조선 전기 안음현 원학동의 석천(石泉) 임득번(林得蕃)[1478~1561]의 문하에는 아들 임훈(林薰)[1500~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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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서북쪽 경계부의 내륙 산간 분지에 위치한 군. 거창군의 지리적 위치는 경상남도의 서북쪽 경계부를 이루는 소백산맥의 동쪽 산록부에 위치하여 해발 고도가 높은 내륙 산간 지역이다. 백두대간 소백산맥의 분수계를 중심으로 하여 북동쪽으로는 경상북도와, 서쪽으로는 전라북도와 접하고 있다. 거창군의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7°41′00″~128°05′55″,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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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내오리에 위치하는 청동기 시대 돌무덤. 경상남도 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로 북방식 고인돌 1기와 덮개돌 2기가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내오리 오산 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과수원 밭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황강의 최상류에 해당하는 황강천이 내려다보이는 서쪽 단구에 해당하며, 석산 개발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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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양지리에 있는 1923년에 신종학이 선조를 추모하여 건립한 정자. 거창 양지리 인풍정(居昌 陽地里 引風亭)은 인풍대 아래에 있는 누각형 정자다. 묵일헌(默逸軒) 신치중(慎致中)[1634~1691]이 1678년(숙종 4) 자연 속에서 자기 수양을 위해 인풍대를 쌓았다. 1923년에 후손 신종학이 선현을 추모하여 유허지에 정자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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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요수 신권이 경상남도 거창군 수승대 경내에 건립한 정자. 거창 요수정(居昌樂水亭)은 요수(樂水) 신권(慎權)[1501~1573]이 벼슬을 단념하고 구연재와 척수대 사이에 위천 물가에 휴식과 자기 수양의 공간으로 건립한 정자다. 향촌 자제를 교육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방문자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거창 요수정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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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2년(영조 8) 거창 지역민들이 집단 상경하여 홍수에 대한 진휼을 청원했던 사건. 1731년(영조 7) 거창 지역에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큰 홍수가 났다. 그러나 중앙 정부는 평년과 같이 무거운 세금을 매겼으므로 지역민들의 생활이 ‘참혹할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거창 도호부에 할당된 세금은 과중하였다. 거창 사람들이 매년 부담해야 할 세금을 보면, 전세 무명 70동,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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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일대의 산등성이에서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고개는 산 능선부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서 고도가 낮아져 말안장[안부(鞍部)]과 같이 생긴 지형을 말한다. 교통·통신이 발달하기 이전의 시기에는 산은 넘어서 극복하기 힘든 지형으로 여겨졌으며, 산지는 서로 다른 생활권, 영향권을 구분 짓는 단위 역할을 하였다. 반면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능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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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末寺).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 우두산(牛頭山)에 자리한 천년 고찰이다. 우두산에 있는 고견사(古見寺)는 현재는 가야산 줄기인 우두산 밑에 있는 조그마한 사찰에 지나지 않지만 신라, 고려, 조선 초기에는 영남 굴지의 사찰로, 조선 태조, 태종, 세종 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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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 분포하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청동기 시대 고인돌은 지상에 드러나 있는 덮개돌과 그 밑에 고임돌, 묘역 시설, 매장 주체부[무덤방] 등이 있는 구조이다. 고인돌은 외형적 형태에서 크게 탁자식, 기반식, 개석식, 위석식 등으로 구분되며, 매장 주체부는 판돌로 된 돌널형[석관형], 깬돌이나 강돌로 쌓은 돌덧널형[석곽형], 구덩이만 있는 움형[토광형],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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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창고. 조선 시대 지방의 각 관아에는 관내에서 거두어들인 곡물을 출납하고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 지금의 거창군은 조선 시대 거창현(居昌縣)[거창부(居昌府)] 지역과 안음현(安陰縣)[안의현(安義縣)]·삼가현(三嘉縣) 일부 지역이 합쳐진 구역이다. 고현창(古縣倉)은 조선 시대 안음현 지역에 설치되었던 창고 중 하나로 고창(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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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파리 장서 운동 등 유림의 독립운동을 이끈 거창 거주 유학자.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영남 유림을 대표하는 학자로 지칭되는 곽종석은 거창에서 태어났으며 장년기에 거창 지역에 이주하여 연구와 강학은 물론, 현실 문제에도 적극 개입하는 등 학문과 실천에 있어 큰 업적을 남겼다. 특히 곽종석이 주도하여 다수의 거창 유생이 가담하였던 1919년 파리 장서 운동은 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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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자연, 인문, 문화 유적 등을 유람하는 일. 관광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문 tourism의 정의를 살펴보았을 때, 휴일을 즐기기 위해 제공되는 호텔, 식당, 여행 등의 서비스를 의미하고 있다. 거창은 전국 7대 문화 관광권 중 영남 남부권에 속하고 있다.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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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 있었던 유학자들의 모임. 1894년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사병리 당동 마을로 이주한 유학자 장복추는 장복추의 강학을 듣고자 주위에 모인 삼남의 문인들로 관선계를 조직하였다. ‘영남의 삼징사(三徵士)’로 불리는 당대 영남의 대표적인 유학자 사미헌 장복추는 경상북도 칠곡군 각산 출신으로, 1894년 갑오 농민 전쟁을 피해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사병리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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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을 기점으로 경상남도 거창군을 경유하여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을 종점으로 하는 고속 도로. 광주대구고속도로는 1984년에 개통하여 개통 초기부터 2015년까지 88 올림픽 고속 도로로 불렸다. 광주대구고속도로는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를 동서 방향으로 잇는 171.530㎞의 고속 도로이다. 광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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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황산 구연동에 소재하는 국민 관광지 수승대의 경내에 있는 서원. 거창 구연서원은 요수(樂水) 신권(愼權)[1501~1573]을 제향하는 서원이다. 요수 신권은 석천 임득번의 제자로 임득번의 아들인 갈천 임훈과 함께 지역에서 학문에 열중하였다. 이들은 남명 조식[1501~1572]과 동시대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남명과 함께 영남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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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창선리에 있는 산.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창선리, 위천면 강천리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사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높이는 1,353m이다. 금원산 명칭 유래는 『여지도서(輿地圖書)』[안의]에 "금원산(金猿山)은 월봉에서 동쪽에서 달려나와 이 산을 이룬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옛날에 한 도승이 날뛰는 금원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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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용산리 우천천에 있는 바위. 낙모대는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용산리 용산 마을 동쪽의 우천천 하도 내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용산 마을 북동쪽 용천 정사(龍泉精舍)에서 동쪽으로 50m 떨어진 작은 교량 인근에 있다. 낙모대는 용산 팔경(龍山八景) 중의 하나로 조선 후기 문신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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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제일의 명승으로 꼽히는 거창군 원학동과 그 주변 풍광 및 선비들의 문화 이야기. 원학동은 조선 시대 안의현(安義縣)에 속한 동천(洞天)으로, 화림동(花林洞)·심진동(尋眞洞)과 함께 이른바 ‘안의 삼동(安義三洞)’으로 일컬어지던 곳이다. 안의 삼동은 백두 대간의 동남쪽 경사면에 형성된 계곡으로 산수가 빼어나 예로부터 영·호남 최고의 명승으로 알려졌다. 안의 삼동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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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영조 4) 3월 20일 정희량이 거창 일대에서 일으킨 난. 1728년(영조 4)에 노론 정권에 불만을 품은 소론 과격파와 남인들이 연합하여 영조와 노론을 제거할 목적으로 전국적인 규모로 기병(起兵)을 한 사건이다. 무신년에 일어나 무신란(戊申亂)이라 하거나, 이인좌(李麟佐)의 난이라고도 한다. 정희량(鄭希亮)의 난은 1728년 3월 20일 안음현에서 난을 일으킨 정희량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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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 있는 수양·교육·연회와 풍류·종교 행사·군사 목적·행정 집행을 위하여 조망이 좋은 곳에 건립한 다락집. 누정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누정 문화는 중국에서 시작했으나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독자적인 문화로 발전하였다. 중국에서는 은나라 말기에 이미 성곽에 누각을 건립하였다. 중국 춘추시대에 도루를, 한무제 때는 성루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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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월성 계곡에 형성된 토르 지형. 사선대(四仙臺)는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월성 계곡에 형성된 토르 지형으로, 북상 13경 중 제9경으로 지정되어 있다. 지방도 37호선 월성 1교에서 조망 및 접근이 가능하다. 사선대는 거대한 암석이 층층이 포개져 있는 형상과 신선이 내려와 바위 위에서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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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 일대에서 1919년 3월 20일부터 4월 말까지 일어난 민족 독립운동. 거창 3·1운동은 1919년 3월 20일부터 4월 말까지 일본의 강제적인 식민지 정책에 대항하여 가조면 장터, 거창읍 장터, 위천 장터 등 거창 일대에서 전개된 민족 독립운동이다.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3·1운동은 일본 제국의 수탈과 탄압 속에서 독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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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문인.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자는 회숙(晦叔)이며 호는 운호(雲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신수검(愼守儉)이다. 신수검에게는 아들이 없어, 신수이(慎守彛)의 둘째 아들인 노산(老山) 신도명(愼道明)을 양자로 삼았으며, 신도명이 신필희의 할아버지가 된다.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신성중(愼性中)이며, 어머니는 탐진 안씨(耽津 安氏)로 안세언(安世彦)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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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한을 시조로 하고 이간인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거창군의 세거 성씨. 영천 이씨의 시조는 고려 때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이문한(李文漢)이다. 이문한의 7세손 이극인(李克仁)이 익양군(益陽君)에 봉해지고, 익양군의 후손 이대영(李大榮)이 영양군(永陽君)에 봉해지면서 본관을 영천으로 하게 되었다. 거창 지역의 영천 이씨는 이대영의 7세손 이보흠(李甫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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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 있는 산. 경상남도의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와 함양군 서상면 대남리 사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높이는 1,279m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 보유[안의]에 "월봉(月峰)은 황봉[현 남덕유산]에서 동쪽으로 달려 나와 이 산을 이룬다. 관아의 서북쪽 40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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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을 시조로 하고 임천년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거창군의 세거 성씨. 임씨의 도시조(都始祖)[모든 임씨의 시조]는 임팔급(林八及)으로, 당나라 때에 귀화한 8학사의 한 사람이다. 신라에 귀화했으며 자손이 흥성해지면서 많은 파로 분관되었다. 은진 임씨(恩津林氏)는 1세조 임성근(林成槿)이 개성에 살다가 2세 임정(林挺) 때 금산군 안성으로 옮겼고, 3세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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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김천리 거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대전(大田) 이보흠의 실기 책판과 교지. 1457년(세조 3)에 순흥 부사(順興府使)로 재직 시 유배되어 온 금성 대군(錦城大君)과 단종(端宗) 복위를 도모한 조선 초기 문신 이보흠(李甫欽)[1398~1457]의 실기(實記)[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은 기록] 목판과 ‘충장공(忠莊公)’ 시호(諡號)를 받은 교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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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 출신으로 세상 사람들의 존중을 받아 온 뛰어난 사람들. 산이 높고 물이 맑은 거창은 옛부터 지금까지 그 이름이 빛나는 수많은 인물(人物)을 배출한 고장이다. 지금까지도 그 덕화가 남아 후손들도 추앙하는 인물들이 많다. 역사적 행적을 남긴 인물로 두드러진 경우는 첫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인물과 역적의 난이 있을 때 이를 무찌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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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의 지세, 지질, 지형, 기후, 토양 등의 지리적 조건. 지표면의 일정 부분을 구분하는 단위로 지역을 설정하고 이러한 지역의 특성, 즉 지역성을 구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지리학이다. 지역성을 이루는 항목 중에서 거창군의 위치, 지세, 지질, 지형, 기후, 토양 등의 주제가 자연 지리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은 대한민국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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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수승대 일원의 야외극장에서 매년 여름 개최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적 야외 연극 축제. 거창 국제 연극제는 야외 연극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에서 매년 여름 7월 하순과 8월 중순에 걸쳐서 ‘자연·인간·연극’이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에 위치한 수승대 일원의 야외 공연장에서 개최된다. 수승대의 빼어난 절경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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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문신. 정온(鄭蘊)[1569~1641]의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고고자(鼓鼓子),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포서 별제((司圃署別提)를 지낸 정옥견(鄭玉堅)이며, 할아버지는 진용교위(進勇校尉) 정숙(鄭淑)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 정유명(鄭惟明), 어머니는 장사랑(將仕郎) 강근우(姜謹友)의 딸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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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주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경상남도 거창군에서는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부족한 자원의 획득과 배분을 둘러싸고 대립과 분쟁, 그리고 타협이 발생하여 왔다. 분쟁과 대립을 조정하여 타협에 이르고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서 정치라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며, 정치는 국가, 정부 또는 자치 단체라는 제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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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이나 자연의 힘을 초월하는 존재나 원리를 신앙하는 행위의 총칭. 경상남도 거창군에 불교가 들어온 시기는 신라 때로 추정된다. 이는 거창 지역의 고찰(古刹) 고견사(古見寺), 송계사(松溪寺) 등의 창건주가 원효(元曉)[617~686]와 의상(義湘)[625~702] 두 고승(高僧)이기 때문이다. 거창 지역에는 고찰이 많다. 경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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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서 청동기를 사용하던 시대. 청동기 시대는 청동으로 된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철제 도구를 사용하기 직전까지의 시기이다. 한국의 청동기 시대는 청동기의 사용 자체보다는 빗살무늬 토기를 사용하던 신석기 시대 이후 민무늬 토기를 사용한 시기를 청동기 시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서 청동기 시대의 개시는 민무늬 토기 출토 유적의 탄소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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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문인. 최윤정(崔胤貞)[1630~1684]의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복원(復元), 호는 종모당(終慕堂)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 최의(崔漪)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참봉(參奉) 최응참(崔應參)이다. 할아버지는 사재감 첨정(司宰監僉正) 최유성(崔有聲)이며, 아버지는 군수(郡守) 최후원(崔後遠)이다. 생부는 통정(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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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도리에 있었던 터널.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을 동서로 잇는 총연장 181.87㎞인 고속 도로의 한 부분을 잇는 터널이었다. 1973년에 고서~담양 구간이 호남 고속 도로 담양선으로서 개통하고, 옥포~담양 구간이 1981년에 착공하여 1984년에 88 올림픽 고속 도로라는 이름으로 개통하였다. 2015년 전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