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유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495
한자 龍巖遺集
영어공식명칭 Yongam Yujip
이칭/별칭 용암집(龍巖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태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751년연표보기~1816년연표보기 - 『용암유집』 임석형이 저술
간행 시기/일시 1936년 - 『용암유집』 간행 추정
소장처 성균관 대학교 존경각 -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3가 52-16
성격 고문서
저자 임석형(林碩馨)
권책 3권 1책
행자 10행 18자
규격 31.2×21.0㎝|반곽(半郭) 19.5×16.3㎝
어미 상하 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임석형의 시문집.

[저자]

임석형(林碩馨)[1751~1816]의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원경(遠卿), 호는 용암(龍巖)이다. 선대에 임득번, 갈천 임훈, 첨모당 임운 등이 있으며 매헌(梅軒) 임상권(林尙權)의 아들이다. 지기(志氣)가 굳었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남을 돕기를 좋아하였다. 수승대에 퇴계 명명 지대, 갈천 장구 지대와 원운 4수를 새겼으며, 용천 정사를 중수하였고, 화엽루를 창건하였으며, 용암정을 창건하여 원학동 일대의 경관을 일신하였다. 호걸의 기풍과 초연한 기질이 있어 자연을 즐겼는데 용암정을 지나는 영남과 호남의 선비들은 임석형을 ‘원학 주인(猿鶴主人)’이라 칭송하였다. 당대의 명유 석학들과 교유하며 유풍을 진작시켰다. 저서로 3권 1책의 『용암유집(龍巖遺集)』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간행 경위는 불분명하나 1936년에 쓴 서(敍)가 있다.

[형태/서지]

『용암유집』은 3권 1책으로, 선장(線裝)[인쇄된 면이 밖으로 나오도록 책장의 가운데를 접고 책의 등 부분을 끈으로 튼튼하게 묶는 장정 형태]하였다. 크기는 31.2×21.0㎝이며, 반곽(半郭)[글이 담긴 테두리 안쪽 면]은 19.5×16.3㎝이다. 사주 쌍변(四周雙邊)[지면의 네 둘레를 두 개의 선으로 돌림]이며, 어미는 상하 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下 內向 二葉花紋 魚尾)[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2개 어미 가운데 위 어미가 아래쪽, 아래 어미가 위쪽을 향하며, 어미 부분에 2개의 화문이 있는 형태]이고, 10행 18자이다.

[구성/내용]

『용암유집』은 3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 1에는 서문에 김헌태·장복추의 찬기가 있으며 시가 약 100여 수 등재되었다. 권 2는 서(書)로 한계중(韓啓重), 한복연(韓復衍), 김인순(金麟淳), 이교원(李敎源) 등과 주고받은 편지가 있다. 또한 「용암정기(龍巖亭記)」, 「용암정 상량문(龍巖亭上樑文)」, 잡저, 상량문, 제문, 묘갈명 등과 후서, 발 등이 있다. 부록으로 「용암정운(龍巖亭韻)」이 실려 있다. 『용암유집』에 실린 글들을 살펴볼 때 임석형은 만년에 용암정에 심취하여 항상 용암정에서 창수(唱酬)[시가나 문장을 지어 서로 주고받고 함]하고 소요자적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임석형이 사망한 후 친구들이 쓴 만시와 뇌사로 볼 때 뛰어난 선비임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용암유집』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수승대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일대의 용천 정사와 용암정, 수승대 등에 현재 남아 있는 암각이나 누각 등에 대한 내력이 잘 기록되어 있어 이 일대의 지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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