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서일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474
한자 鳳棲逸稿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정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837년연표보기~1898년연표보기 - 『봉서일고』 하종호가 저술
간행 시기/일시 1987년 10월 5일연표보기 - 『봉서일고』 간행
성격 전적
저자 하종호(河宗浩)
간행자 하영필
권책 1권 1책
규격 B5|202페이지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출신의 조선 후기 유학자 하종호의 문집.

[개설]

조선 후기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에서 태어난 유학자 하종호가 죽은 뒤 증손자 하영필이 펴낸 문집.

[저자]

하종호(河宗浩)[1837.11.8~1898.4.14]의 자는 성중(聖仲), 호는 봉서(鳳棲),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하경룡(河景龍),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 신사모(申思模)의 딸이다. 부인은 하빈 이씨(河濱李氏) 이정섭(李正燮)의 딸이다.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에서 태어났다. 종숙부 하경룡의 양자로 들어갔다. 독서에 열중하여 경서 및 역사서를 두루 열람하고 도략(圖略)과 풍수에까지 정통하였으나, 세상에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계(契)를 만들고 학당을 설치하여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갑오 동학 혁명 때는 부사의 추천으로 통수(統首)가 되어 의병을 모집하였다. 세 아들을 거느리고 도마현(都磨峴)에 나아가 적을 방어하니 적이 감히 영호(嶺湖)의 경계를 넘어 영남 지방을 침범하지 못하여 모든 고을이 안도하게 되었다. 1873년에 남유(南遊)를 기록하고, 1896년에는 금강산을 여행하였다. 충정공 민영환, 참판 정관섭(丁觀燮), 승지 한시동(韓始東), 승지 이건용(李建容), 부사 정대무(丁大懋) 등과 모두 막역하게 지냈다.

[편찬/간행 경위]

하종호가 죽은 뒤 증손 하영필이 묘갈명(墓碣銘)[묘비에 새겨진 죽은 사람의 행적과 인적 사항에 대한 글]을 받아 1987년 10월 5일 대경 출판사에서 문집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1987년 대경 출판사에서 B5 규격으로 간행하였다. 세로쓰기로 되어 있으며, 분량은 202페이지다.

[의의와 평가]

『봉서일고(鳳棲逸稿)』하종호의 학문과 문학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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