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819
한자 鄭蘊
영어공식명칭 Jung On
이칭/별칭 휘원(輝遠),동계(桐溪),고고자(鼓鼓子),문간공(文簡公)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9년연표보기 - 정온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06년 - 정온 진사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09년 - 정온 광릉 참봉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10년 - 정온 봉자전 참봉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10년 - 정온 문과 별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11년 - 정온 시강원 겸 설서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11년 - 정온 사서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11년 - 정온 사간원 정언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12년 - 정온 경성 판관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12년 - 정온 장악원 첨정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13년 - 정온 부사직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13년 - 정온 성균관 사예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13년 - 정온 시강원 필선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14년 - 정온 부사직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14년 - 정온 제주도 대정현으로 유배
활동 시기/일시 1623년 - 정온 해배
활동 시기/일시 1623년 - 정온 사간원 사간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23년 - 정온 성균관 직당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23년 - 정온 상의원 정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23년 - 정온 남원 도호부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24년 - 정온 사간원 대사간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27년 - 정온 한성부 우윤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27년 - 정온 병조 참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36년 - 정온 사헌부 대사헌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37년 - 정온 낙향
몰년 시기/일시 1641년연표보기 - 정온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42년 - 정온 용문 서원 배향
추모 시기/일시 1642년 - 정온 남계 서원 별사 배향
추모 시기/일시 1652년 - 정온 자헌대부 이조 판서 증직
추모 시기/일시 1657년 - 정온 문간공 증시
추모 시기/일시 1661년 - 정온 도산 서원 배향
추모 시기/일시 1662년 - 용문 서원 사액
추모 시기/일시 1662년 - 도산 서원 사액
추모 시기/일시 1668년 - 정온 귤림 서원 배향
추모 시기/일시 1677년 - 정온 남계 서원 본사 배향
추모 시기/일시 1682년 - 귤림서원 사액
추모 시기/일시 1694년 - 정온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증직
추모 시기/일시 1711년 - 정온 현절사 배향
출생지 정온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거주|이주지 정온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정온 묘소 -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용산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용문 서원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봉산리
사당|배향지 남계 서원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사당|배향지 도산 서원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귤림 서원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
사당|배향지 현절사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사당|배향지 모리재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초계(草溪)
대표 관직|경력 이조 참판

[정의]

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문신.

[가계]

정온(鄭蘊)[1569~1641]의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고고자(鼓鼓子),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포서 별제((司圃署別提)를 지낸 정옥견(鄭玉堅)이며, 할아버지는 진용교위(進勇校尉) 정숙(鄭淑)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 정유명(鄭惟明), 어머니는 장사랑(將仕郎) 강근우(姜謹友)의 딸 진주 강씨(晉州姜氏)이다. 부인은 충의위(忠義衛) 윤할(尹劼)의 딸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활동 사항]

정온은 1569년(선조 2) 경상도 안음현 역동리(嶧洞里)[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에서 출생하였다. 젊은 시절부터 아버지 정유명의 스승인 임훈(林薰), 퇴계(退溪) 이황(李滉), 조목(趙穆) 등 여러 명현들을 만났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킨 아버지를 도왔다. 또한 1593년에는 남쪽으로 내려온 명나라 군대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사민(士民)을 위하여 열읍(列邑)에 통문(通文)을 보냈다. 28세가 되던 1596년(선조 29) 아버지 정유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다시 왜적이 쳐들어오자, 상복을 입은 상태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영남과 호남 사이에 피신하였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정온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음식을 동냥해 어머니 진주 강씨가 끼니를 거른 적이 없었다고 한다.

1599년(선조 32) 정온가야산에 가서 정인홍(鄭仁弘)의 제자가 되었다. 1604년(선조 37)에는 도내의 많은 선비들과 함께 오현(五賢)[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이황]의 문묘(文廟) 종사(從祀)를 청원하는 상소를 가지고 한양으로 올라갔다. 이때 임금이 상소문을 가지고 온 선비들을 대상으로 특별히 정시(庭試)를 치렀는데, 정온이 2등을 하였다. 1606년(선조 39)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다. 1607년에는 고을 사람들이 정온을 학행(學行)으로 천거하였다.

1608년(선조 41) 선조가 세상을 떠나기 전 세자 광해군에게 전위(傳位)를 하교하였다. 그러나 소북(小北)의 영수였던 유영경(柳永慶)이 하교를 숨기고 임해군(臨海君)을 즉위시키려 했다. 대북(大北)의 영수이자 정온의 스승이었던 정인홍은 이 사실을 알고 유영경을 공격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도로 영변(寧邊)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때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으나, 복시(覆試)를 보기 위해 한양에 와 있던 정온이 여러 선비들과 직언(直言)하였다. 광해군 즉위 초에는 임해군을 역모죄로 다스리려고 하는 여론에 반대하였다.

정온은 1609년(광해군 1) 광릉 참봉(光陵 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으며, 1610년에는 봉자전 참봉(奉慈殿 參奉)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그해 문과(文科) 별시(別試)에 급제하였다. 1611년(광해군 3) 시강원 겸 설서(侍講院兼說書)·사서(司書)·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이 되었다가 경성 판관(鏡城判官)으로 부임하였다. 이어 1612년에는 장악원 첨정(掌樂院僉正)이 되었다. 1613년 부사직(副司直)·성균관 사예(成均館司藝)·시강원 필선(侍講院弼善)을 거쳐 1614년 부사직이 되었다.

그런데 이 무렵 선조의 유일한 적자인 영창 대군(永昌大君)이 불과 9세의 나이로 죽임을 당하였다. 이에 앞서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가 일어났는데, 이 사건으로 영창 대군의 외할아버지인 김제남(金悌男)이 반역죄로 죽임을 당하고 많은 서인(西人) 인사들이 숙청되었다. 영창 대군도 이에 연루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었고, 1614년 죽임을 당하였던 것이다. 정온은 이 과정에서 영창 대군에게 은전을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하였고, 이 사건을 주도한 대북의 이이첨(李爾瞻)과는 절교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요로(要路)에 있던 인사들과 광해군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결국 국문을 받고 제주도 대정현(大靜縣)에 유배되었다. 이때부터 정온은 10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나자, 유배지에서 풀려났다. 또한 광해군 대에 절의를 지킨 인물로 지목되어 사간원 사간(司諫院司諫)에 임명되었고, 이어서 성균관 직강(成均館直講)·상의원 정(尙衣院正)·남원 도호부사(南原都護府使)에 임명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정온은 공주(公州)로 피신한 임금을 호위하였고, 이어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이 되었다. 이후 사간원 대사간·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형조 참판(刑曹參判)·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등에 임명되었으나, 사직을 청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정온은 곧장 강화도의 행재소(行才所)로 가서 임금을 호위하였다. 후금(後金)의 군사가 물러간 후,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과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임명되었다. 정온은 사직을 청하였으나, 임금은 시국이 어지러우니 계속 머물러 직임을 보라며 거부하였다. 1628년 승정원 도승지·예조 참판(禮曹參判), 1629년 이조 참판(吏曹參判)·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에 임명되었는데, 모두 나가지 않았다. 이후 고향에 머무르면서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였으며, 상소문을 올려 공신 세력을 견제하기도 했다.

1636년(인조 14) 사헌부 대사헌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상소를 올려 청나라와의 관계에 대한 척화(斥和)를 주장하였다. 그해 12월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들어가 적들과 맞섰다. 1637년 전세가 불리해지자 최명길(崔鳴吉) 등이 화평 교섭을 진행하였는데, 정온은 이를 매국(賣國)으로 보고 강력하게 척화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강화도가 함락되자 임금은 남한산성에서 내려가 항복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소식을 들고 분개한 정온은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끝내 조선 정부가 청나라에 항복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1638년(인조 16) 덕유산의 모리(某里)[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에 은거하였다. 모리는 인적이 드문 골짜기로, 정온은 이곳에 풀을 엮어 집을 만들고 흙을 쌓아 침상을 만든 뒤 ‘모리구소(某里鳩巢)’라 이름을 붙였다. 또한 산밭을 개간하여 기장과 조를 심어 자급자족하다 1641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학문과 저술]

정온의 문집으로는 『동계집(桐溪集)』이 전한다. 『동계집』은 1660년(현종 1) 초간 되었는데, 이후 부록(附錄)·보유(補遺)·속집(續集)이 추가되어 최종적으로 1852년(철종 3) 원집 4권, 속집 3권, 부록 2권, 연보(年譜) 1권의 합 9권 9책으로 완성되었다.

[묘소]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용산리 용산(龍山)정온의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1652년(효종 3) 자헌대부 이조 판서 겸 지경연 의금부 춘추관 성균관사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세자 좌빈객(資憲大夫吏曺判書兼知經筵義禁府春秋館成均館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世子左賓客)으로 증직되었다. 1657년(효종 8) 문간공(文簡公)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694년(숙종 20)에는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세자 이사 지경연 춘추관 성균관사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오위도총부 도총관(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世子貳師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五衛都摠府都摠管)에 증직되었다.

1642년(인조 20)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봉산리에 있는 용문 서원(龍門書院)에 배향되었다. 용문 서원은 1582년(선조 15) 건립된 서원으로 정여창(鄭汝昌)·임훈·임운(林芸)이 배향되어 있었는데, 이때 정온이 추가로 배향된 것이다. 용문 서원은 1662년(현종 3)에 사액(賜額)되었다. 1642년에는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남계 서원(灆溪書院) 별사(別祠)에 배향되었다. 1552년(명종 7) 건립된 남계 서원에는 정여창이 배향되어 있었는데, 이미 사액된 서원이었기에 정온은 별사에 배향된 것이다. 1677년(숙종 3) 정온의 위패가 별사에서 본사(本祠)로 옮겨졌으며, 강익(姜翼)도 함께 배향되었다. 1661년(현종 2)에는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에 건립된 도산 서원(道山書院)에 배향되었다. 도산 서원은 1662년 사액되었으며, 정온을 비롯해 김굉필·정여창·이언적을 배향한 서원이다. 1668년(현종 9)에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에 위치한 귤림 서원(橘林書院)에 배향되었다. 귤림 서원에는 정온을 비롯해 조선 시대에 제주도로 유배되었던 김정(金淨)·김상헌(金尙憲)·이약동(李約東)·송인수(宋麟壽)·송시열(宋時烈)·이회(李檜)를 배향하고 있다. 귤림 서원은 1682년(숙종 8)에 사액되었다.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는 현절사(顯節祠)에도 정온이 배향되어 있다. 현절사는 1688년(숙종 14) 병자호란 삼학사(三學士)인 윤집(尹集)·오달제(吳達濟)·홍익한(洪翼漢)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으로, 1693년(숙종 19)에 사액되었다. 정온은 1711년(숙종 37) 김상헌과 함께 추가로 배향되었다. 한편,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에는 모리재(某里齋)[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307호]가 건립되어 있다. 모리는 병자호란이 끝난 후 정온이 은거한 곳으로, 모리재는 지역 유림들이 정온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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