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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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안산 지역에서 부모를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한 자녀. 효(孝)는 예로부터 백행(百行)의 근본으로 강조되었으며, 가정질서의 기본이 됨은 물론 국가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되었다. 효에 대하여 『소학(小學)』에서는 ‘부모를 지성으로 섬기는 것’이라 하였고, 『논어(論語)』에서는 ‘예(禮)에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또한 『효경(孝經)』의 첫 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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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녕(金寧). 아버지는 효자 김충주(金忠柱)이고 어머니는 안정나씨이다. 김경남은 1482년(성종 13)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위한 효성이 지극하여 버섯국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하여 늘 산간을 헤매어 버섯을 채취하여 음식을 해드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여막을 짓고 3년을 한결같이 시묘하였다. 버섯효자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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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효자. 김계창은 아버지가 병환이 나자 변의 맛을 보아 병의 상태를 알아내고, 피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다. 밤낮으로 아버지의 병환이 낫기를 하늘에 기원하였으며, 상을 당하매 정성과 예를 다하였다. 1822년(순조 22)에 정려(旌閭)가 내려지고, 아들 김집은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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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지역에서 거주하였던 효자.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군엽(君燁). 아버지는 중추부사를 지낸 김로(金輅)이다. 김귀만은 어릴 때부터 부친을 모시고 살았으나 집안이 빈곤하여 농사지을 땅이 한 평도 없는 처지였다. 이에 심산유곡으로 들어가 오두막집을 짓고 화전을 일구며 돗자리를 팔아 맛있는 음식으로 부친을 봉양하였다. 도롱이와 돗자리를 팔아 연명하였는데, 시장에 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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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 거주하였던 효자. 본관은 의성(義城). 중종 때 문신인 문목공(文穆公) 김정국(金正國)의 9세손이며, 아버지는 헌납(獻納) 김한로(金漢老)이다. 김달명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 강씨(姜氏)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드렸다. 추운 날 어머니가 생선을 먹고 싶어 하므로 부인과 함께 울면서 하늘에 기도하니 담비와 개가 생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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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출신의 효자. 효자 김동은(金東殷)의 형이다. 김동려는 안산 지역 서쪽 두메산골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여름에 아버지의 베개에 부채질을 한 한나라 황향(黃香)의 효행이 있었다. 성장하면서 농사에 힘쓰고 부모를 극진히 모셔 부모의 입에 맞는 음식으로 봉양하였다. 부모가 병환이 나자 하늘에 기도하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어 목숨을 수십 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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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출신의 효자. 효자 김동려(金東礪)의 동생이다. 김동은은 안산의 서쪽 두메산골에서 살았다. 형과 함께 천성적인 효자로 칭송을 들었다. 부모를 섬김에 있어 도리를 다하였고, 모친이 종기로 고생하자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었고, 안질이 나면 혀로 핥았다. 모친이 돌아가시자 몸을 깨끗이 씻어드리고 눈을 감도록 하였고, 상례를 치름에 술과 고기를 먹지 않는 등 형과 같이 정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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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이자 문신.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이원(而遠), 호는 율강(栗崗)·촌로(村老). 아버지는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내고 좌승지에 증직된 김찬(金讚)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이다. 효자 김성발(金聲發)·김성옥(金聲玉)의 형이다. 김성대는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부모를 모시고 산골 깊숙이 들어가 살았다. 아버지가 병석에 눕게 되자 약제와 음식을 손수 마련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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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정이(正而)이며, 호는 반성재(反省齋). 아버지는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내고 좌승지에 증직된 김찬(金讚)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이다. 효자 김성대(金聲大)의 동생이자 김성옥(金聲玉)의 형이다. 김성발은 어려서부터 진실되고 성실하여 행동함에 흠잡을 데가 없었다. 형과 함께 타고난 우애와 효성을 보였고, 농사에 종사하면서도 틈틈이 꿩·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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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집경(集卿). 처음 이름은 김성률(金聲律)이며, 아버지는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내고 좌승지에 증직된 김찬(金讚)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이다. 효자 김성대(金聲大)·김성발(金聲發)의 동생이다. 김성옥은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슬픔 속에 채식으로 상을 마쳤다. 또한 어머니의 병환을 당하여 밤낮없이 간호하면서 대변을 맛보며 약을 지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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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 거주하였던 효자이자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현필(顯弼).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김창근(金昌根)이고, 어머니는 열녀 밀양박씨이다. 김세철은 지금의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둔배미에서 살았으며, 음직으로 의금부도사를 역임하였다. 아버지가 중병을 앓을 때 허리띠를 풀지 않고 옆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간병하였다. 아버지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자 어머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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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장로(章老), 호는 성지당(姓支堂). 단종대 충신인 백촌 김문기의 5세손으로, 증조부는 충신 김현석이고, 할아버지는 효자 김충주이다. 아버지는 효자 김경남(金慶男)이며, 어머니는 염광염씨이다. 김약전은 1523년(중종 18)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너빌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나자 매일 종기를 빨아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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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효자 김여우(金汝遇)의 동생이다. 김여규는 형 김여우와 우애가 돈독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와 기개가 비범하였다. 부모가 병환이 나자 쉬지 않고 약시중을 들었다. 아버지가 가지나물을 먹고 싶어 하였는데, 때가 초여름이라 이제 겨우 싹이 돋아나는 때였다. 이에 김여규는 형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다음날 가지 열매가 열려 이를 따다 아버지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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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호는 계술당(繼述堂). 효자 김여규(金汝逵)의 형이다. 김여우는 동생 김여규와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삼강오륜을 존중하여 부모를 모시는 일과 제사 받드는 일에 정성을 다하였다. 아버지가 병환이 나자 잠시도 쉬지 않으며 시중드는 일에 충실하였다. 아버지가 가지나물을 먹고 싶어 하였는데, 때가 초여름이라 이제 겨우 싹이 돋아나는 때였다. 그는 동생과 함께 밤새워 기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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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출신의 효자. 김정훈은 안산김씨(安山金氏)로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 살았다. 효성으로 주위의 칭송을 들었는데, 추운 겨울 병석에 있던 아버지가 물고기를 먹고 싶어 하자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다 드렸으며, 병환이 위중하자 변을 맛보며 정성으로 약을 지어 드려 효험을 보았다. 항상 저녁에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문안하였으며, 아침 일찍 일어나 안부를 살폈다. 조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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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출신의 무신이자 효자.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후이(厚而)·중빈(仲賓). 초명은 김처관(金處觀)이다. 조선 전기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좌명공신에 오르고 연성군(蓮城君)에 봉해진 김정경(金定卿)의 후손이다. 김처곤(金處坤)은 오로지 효를 다하기 위하여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몸소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아 부모를 봉양하였다. 그러나 부모의 뜻이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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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효자. 신용남(申龍男)은 지금의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에서 태어나 목동으로 생활하였다.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으나, 부모를 모시는 데 평생 동안 정성을 다하였다. 열다섯 살 때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올리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회생시키는 등 효행이 지극하였다. 효종 때 조정에서 정려(旌閭)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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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일경(一卿). 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지낸 이석(李晳),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이상기는 경기도 안산군 초산면 산현리[현 시흥시 산현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병환이 나자 변의 맛을 보아 병의 상태를 살피는 등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고, 병이 낫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하였다. 그 효성의 지극함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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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효녀. 중종 대의 명신 홍춘경(洪春卿)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경기관찰사를 역임한 홍명원(洪命元)[1573~1623]이다. 지중추부사·예조참의 등을 지낸 홍처윤(洪處尹)[1607~1663]과는 남매지간이다. 홍소저(洪小姐)는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매우 슬퍼하였다. 집안사람들이 장지(葬地)를 논의한 끝에 군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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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안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아버지는 홍호민이다. 홍정희(洪貞羲)[1863~1907]는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애통해하며 묘소 앞에 여막을 짓고 시묘하였다. 3년 동안 한 번도 집에 내려오지 않았으며 고기도 입에 대지 않았다. 효행이 고을에 알려지고 조정에 보고되어 1893년(고종 30) 정문(...
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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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안산 지역에서 남편을 잘 섬기고 절개를 지킨 아내. 열녀는 위기에 처하였을 때 죽음으로써 정조(貞操)를 지켰거나 남편이 죽은 후 개가하지 않고 수절(守節)한 부녀자를 가리키며, 열부(烈婦)·절부(節婦)·절녀(節女)·정녀(貞女)로도 쓰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임금의 유혹과 강압을 물리치고 남편을 위해 정절을 지킨 도미(都彌) 아내의 이야기와, 자신의 늙은 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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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산에서 거주한 열녀. 남편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서 음직으로 귀후서별제(歸厚署別提)·사헌부감찰·신창현감을 지낸 강희(姜僖)[1492~1539]이다. 자녀를 두지 못하여 강의(姜儀)[강희의 동생]의 아들 강응서(姜應瑞)를 입양하였다. 강희의 아내 나주김씨는 남편이 죽자 6년간 상복을 입었으며, 평생 빗질을 하지 않았다. 제사 때를 맞이해서도 초상 때와 같이 슬피 통곡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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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 거주했던 열녀. 남편 권이길은 본관이 안동이며, 평양판관으로 재직 중 정묘호란이 일어나 후금군과 싸우다 전사한 뒤 병조참의에 추증되고 정려가 내려진 충신이다. 권이길의 아내 예천임씨는 1594년(선조 27) 출생하였다. 호란을 당하여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 권이길에게 붉은 비단옷을 입히고 말총으로 상투를 틀고, 망포를 쓰게 하는 등 여러 가지 표식을 만들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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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 거주했던 열녀. 김경징의 아내 고령박씨는 선산부사(善山府使)를 지내고 이조참판에 추증된 박효성(朴孝誠)[1568~1617]의 딸이다. 남편 김경징은 영의정 김류(金瑬)의 아들로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감찰사로서 수비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사사(賜死)되었다. 김경징의 아내 고령박씨는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적에게 욕을 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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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 거주하였던 열녀. 김달명의 아내 양주조씨는 승지 김명겸(金鳴謙)의 손자이자 효자인 김달명의 부인으로 안산 지역에 거주하였다. 김달명의 아내 양주조씨는 『여훈(女訓)』·『소학(小學)』 등에 능통했을 뿐 아니라 효로써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시어머니가 병이 들자 남편과 함께 병이 낫게 해달라고 하늘에 비는 한편, 산고기를 얻어 봉양하였다. 그 후 상을 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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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에서 거주하였던 열녀. 아버지는 진주부원군(晋州府院君) 유근(柳根)이며, 남편은 김여물의 아들이자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김류(金瑬)[1571~1648]이다. 김류의 아내 진주유씨는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적에게 욕을 당하느니 죽음으로써 정절을 지키고자 1637년 1월 25일 강화 앞바다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이때 4대에 걸친 고부(姑婦)가 함께 목숨을 끊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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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 거주하였던 열녀. 양인(良人) 김병집(金秉集)의 부인이다. 김병집의 아내 남양홍씨는 남편이 죽자 상을 마친 후 음식을 먹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841년(현종 7)에 정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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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열녀.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전투에서 전사한 김여물의 후실이며, 삼도순변사 신립(申砬)[1546~1592]의 누이동생이다. 김여물의 후실 평산신씨는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피하였으나 성이 함락되자, 적에게 욕을 당하느니 죽음으로써 정절을 지키고자 1637년 1월 25일 강화도 앞바다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이때 4대에 걸친 고부(姑婦)가 함께 목숨을 끊었는데, 평산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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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열녀.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이조참판과 경기감사 등을 지낸 정백창(鄭百昌)[1588~1635]이고, 남편은 김진표이다. 김진표는 영의정 김류(金瑬)의 손자이자, 한성부윤을 지낸 김경징(金慶徵)의 아들이다. 김진표의 아내 진주정씨[?~1637]는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적에게 욕을 당하느니 죽음으로 정절을 지키고자 1637년(인조 15) 1월 25일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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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열녀. 본관은 밀양(密陽). 남편은 통덕랑(通德郞) 김창근(金昌根)이며, 아들은 효자 김세철(金世哲)이다. 김창근의 아내 밀양박씨[1795~1872]는 지금의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둔배미에서 살았다. 천성이 착하고 근면·후덕하였고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식구들을 잘 이끌어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어느 날 남편이 병석에 눕자, 박씨는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곁을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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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본관은 동래(東萊). 할아버지는 부사를 지낸 정복겸(鄭福謙)이고, 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한 정유길(鄭惟吉)이다. 남편은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 유자신(柳自新)이며, 셋째 딸이 광해군과 혼인하여 임금의 장모가 되었다. 유자신의 아내 동래정씨[1541~1620]는 1554년(명종 9) 출가하여 시부모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임금을 사위로 두었으나 평소와 다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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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열녀. 이원발의 아내 전주최씨는 경기도 안산에서 생활하였다. 이원발(李元發)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남편을 대할 때에도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영조 대에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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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열녀. 이소사는 경기도 안산에서 생활하였다. 인조 때 정언, 헌납, 지평, 이조좌랑, 교리 등을 지낸 박종부(朴宗阜)[1600~1645]의 첩으로 출가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슬픈 나머지 음식을 먹지 않다가 장례를 치른 후에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열행(烈行)이 전해지자 나라에서 정문을 세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