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A030102 |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신대광 |
화정동 주민들은 전통 시대부터 시작된 대동계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계(契)는 마을 또는 동리의 복리증진과 상호부조를 위하여 공유 재산을 마련하고 관리하는 자치 조직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특정 목적을 위하여 여러 사람이 모여 공동으로 기금을 염출하고, 그 기금으로 식리(殖利)하여 목적을 달성하려는 결사체이기도 하다. 계(契)를 이르는 호칭도 다양하여 대동계(大洞契)·이중계(里中契)·동중계(洞中契)·동리계(洞里契)·촌계(村契)라고도 한다.
전통 시대 촌락은 대부분 촌락의 복리증진과 협동, 동제 등의 공동 행사를 위한 경비 조달 방법으로 각 가구로부터 평등하게, 또 등급을 정하여 현물이나 금전을 갹출하여 공유 재산을 형성하고 거기서 얻은 이식(利息)으로 촌락 공동의 사업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공유 재산의 소유 형식과 그 관리 조직으로 동계(洞契)가 나타났다. 아마도 화정동에서도 유사한 계의 형태로 운영된 듯하다.
한때 계주를 맡기도 했다는 김연권[1929년생] 옹에 따르면 화정동에도 여러 개의 계가 있었다고 한다. 김연권 옹이 맡아 하던 계의 계원은 약 60~70여 명에 달했는데, 그때는 계원 당 쌀 한 말씩을 내어서 그것을 기금으로 삼아 사용했다고 하며, 계원의 집안에 큰 일이 생기거나 혼사가 있을 경우 그 기금을 내어서 도와주기도 했다고.
늘 그러하듯 계주는 윗대 어른으로부터 그 직분을 이어 받아 계의 명맥을 유지해 나간다. 김연권 옹도 계주의 권한을 이어받았는데, 본인이 물려준 뒤로는 행사도 많이 축소되고 의미도 많이 퇴색되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산제사 지내던 명단마저 없어졌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당시 산제사 명단에는 양반은 성(姓)이 있고 천민은 성이 없이 이름만 두 글자가 있어서 누가 양반인지 천민인지를 금방 알 수 있었다고 하는데, 성이 있는 사람이 반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의 대동계가 열리는 날은 이장을 뽑는 날이기도 하였다. 이 날은 특별히 두부를 만들고 돼지를 잡아 마을 사람들이 모두 같이 나누어 먹었다. 특히 연말에 모여 새로운 이장을 뽑는 행사를 겸했기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 계주는 그 날의 행사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는 행사를 성대하고 즐겁게 치르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행사가 다 끝나면 모든 내용을 기록으로 잘 정리해 두었는데, 그 기록이 지금까지 남아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통장이 동회에서 지원금을 받고 행사를 치르기 때문에 옛날처럼 마을 사람 전체가 참여하는 그런 분위기는 없다고 한다. 또한 자녀들이 대부분 고향을 떠나 도시에 나가 살고 있기에 거의 노인들만 남은 마을의 현실로는 더더욱 행사를 치르기가 힘들다고 한다. 세상 물정은 좋아져서 살기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옛날 같은 훈훈한 정이 없다며 마을 어른들은 한결같이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