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16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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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工團- |
영어의미역 | The Light and Shadow in Indusrial Complex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신지은 |
[개설]
안산시는 반월공업단지[일명 반월공단]과 함께 건설된 신도시이자 계획도시이다. 그런데 현재 안산의 대표적인 이미지와 다양한 수식어를 보면, ‘인구 70만의 도시’, ‘수도권의 대표적 산업 도시’, ‘시화호 오염과 악취의 공해 도시’ 등 공업 단지 조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공업단지와 안산 지역의 연관성을 살펴보고 성찰하는 일은 안산시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의 전망을 탐색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공단과 함께 건설된 계획도시, 안산]
1976년 당시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 지역에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대통령 박정희가 헬리콥터 순시 중에 지금의 안산을 발견하면서 탄생한 것이 반월공업단지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2009년 현재 반월공업단지는 3,800여 개 업체에 9만 5,00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대규모 공업 단지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애초 반월공업단지의 배후 도시이자 20만 인구가 살 수 있는 신도시로 설계되었던 안산시 역시 이후 고잔동 등을 중심으로 한 신시가지가 조성되면서 2009년 현재 인구 70만을 넘어서는 수도권 신흥 도시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 급격한 발전과 변화의 중심에는 노동 문제와 산업 공동화 문제, 환경 문제,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 다양한 문제점이 나타났는데,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하기 위한 전망과 대안 역시 역동적으로 모색되면서 지금의 안산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특히 반월공업단지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의 절대적인 부족과 시화호 오염, 수많은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아우르면서 안산시는 서해안 지역 발전의 중심 도시로, 환경 문제를 극복하는 생태 문화 도시로, 외국인 노동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다문화 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천년 역사의 땅 안산에서 공업도시 반월로]
반월공업단지 조성은 갯벌과 농촌으로 이루어진 마을,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던 안산과 안산 사람들에게 급격한 변화를 선사하였다. 반월공업단지가 조성되기 전인 1976년까지 안산 지역은 농토와 염전·야산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2만여 주민들은 거의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안산에서 갈매기와 새우잡이, 포구, 뱃사람, 갯벌, 수인선 협궤열차로 상징되던 과거의 흔적을 찾기란 매우 힘들다.
반월공업단지는 안산의 모습뿐 아니라 그 이름 역시 바꾸어 놓았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왕세자가 탄생하고 실학의 대가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이 살았던 이 지역은 ‘안산’이라는 역사적 기원을 가진 이름 대신 1976년 신도시 개발 계획에 의해 ‘반월’이란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86년 안산시로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까지 약 10여 년간 통용된 ‘반월’이란 이름은 공단의 건설 계획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1960년대의 1~2차 5개년 개발계획 때 이 지역이 공업단지 후보지로 구상되었던 당시 명칭이 ‘반월지구’였으며 또 신 공업단지 후보지의 명칭도 ‘반월’이었다. 즉 국가 행정에 의해 ‘반월공업단지’라는 명칭이 붙여지게 된 이후, 유서 깊은 고장 안산과 반월은 아래에서가 아닌 위로부터의, 경험과 전통을 무시한 급격하고 압축적인 산업화와 발전이 이루어져 왔다.
[이주민의 땅으로 다시 태어난 안산]
반월공업단지와 신도시 건설에 사용된 방식은 기존 도시 개발에서 사용되었던 토지 구획 정리 방식과 달리 신도시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모든 토지를 사들여서 개발하는 ‘전면 매수 방식’이 적용되었다. 이는 곧 원주민이 자신이 가진 재산에 대해 일정한 보상을 받는 대신 대대로 살던 지역을 떠나야 하는 것으로, 주민들의 삶에 심각한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을 의미한다.
평생을 농업과 어업에 종사했던 대다수가 고령자였던 원주민들에게 새로운 직업을 찾거나 생활양식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충분하지 못한 보상액과 복잡한 행정 절차 등은 이들이 낯선 땅에 정착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리하여 원주민들의 생활수준은 낮아졌고, 극단적인 경우 도시 빈민층으로 전락하면서 신도시에서 주변 도시와 농촌 지역으로 밀려 나갔다. 그 결과 1980년대 말 안산시 인구 중 안산 토박이는 8%에 불과한 1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후 고령화와 사망, 타 지역으로 이주 등을 고려한다면 2009년 현재 원주민은 전체 안산 인구의 1% 수준을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계획 변경과 시행착오를 통해 드리워진 공단의 그늘]
사람과 사회의 자연스러운 발전이 아닌 위로부터 계획된, 압축적으로 조성된 공단과 신도시는 시공과 실행 과정에서도 무수한 계획 변경과 시행착오를 거치게 된다. 부실 시공된 하수관과 오수관으로 공단 폐수가 흘러나오고, 급격한 인구 팽창과 체계 없는 도시 계획 변동은 교통과 교육, 의료 등 삶의 여러 영역에서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원주민들과 신도시에 새롭게 이주하는 주민들의 부담으로 지워졌는데, 원주민들이 고향을 떠나는 방식으로 그 부담을 안았다면, 이주민들은 부실 건설된 도시, 준비되지 않은 도시가 주는 온갖 문제를 생활 속에서 떠안게 되었다.
반면 공업단지의 조성 과정은 이주 기업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과 규제 완화 속에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1978년 이후 1982년까지 정부는 초기 공단 조성 계획 때 세웠던 여러 가지 규제와 지원을 풀고, 금융 지원과 세제상의 혜택을 통해서 기업을 입주시키고, 공단의 규모를 늘렸다. 정부의 이러한 조처는 환경오염, 고용 불안정과 인력 부족, 노동 분규 등 안산 지역의 대표적 사회 문제에 직간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시화호 오염과 악취를 딛고]
안산 지역은 태생적으로 주민에게 쾌적한 산업 도시를 제공하기에는 큰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서울과 수도권의 중소 규모 공장, 특히 공해 기업이나 공업 용지가 아닌 지역에 있는 공장을 이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곳이 반월공업단지였기 때문이다. 서울의 부적격한 공해 업소가 대거 유치되면서 이루어진 반월공업단지는 애초부터 산업 폐기물 처리 장소나 시설이 부족해서 공해 문제를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더욱이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 완화와 부실 공사는 그러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데 촉진제 역할을 했다.
공해 정화 시설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반월공업단지 내에는 피혁 단지, 염색 단지, 화학 단지 등 대표적인 공해 전문 업체들이 밀집하고 있다. 공단이 뿜어내고 배출하는 대기 오염과 수질 오염·악취 등 갖가지 공해는 안산 주민들의 삶에 오롯이 영향을 미쳤고, 결국 안산은 오염과 악취의 도시라는 오명을 안을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러한 환경 문제는 시화방조제의 완공과 함께 그 정점에 다다르게 된다.
1994년 시화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시화호는 서서히 오염되었는데, 이는 인공위성 사진으로 확인될 만큼 심각한 양상을 보였다. 시화호로 유입되는 6개의 하천은 공장과 축사·주택가에서 방류되는 오폐수로 변했고, 이 썩은 물이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채 그대로 방류되면서 시화호는 서서히 죽어갔다. 시커먼 물과 떼죽음을 당한 수십만 마리의 물고기 모습은 무분별한 공단과 도시의 건설이 인간의 삶뿐 아니라 생태계에 어떤 재앙을 안겨다 주는지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런 모든 것을 딛고 안산시는 현재 녹색 도시, 환경 도시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시화호는 다시 이전의 생태계를 회복했고, 악취와 대기 오염은 서서히 사라졌으며, 높은 녹지 비율을 자랑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이는 환경 단체의 노력, 시민의 자발적인 환경 실천, 정책적 의지가 반영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외국인 노동자의 등장]
안산 지역 공단 입주 기업의 중요한 특징은 이들 기업의 80% 이상이 100인 미만 중소기업으로 대기업의 하청을 맡은 사양 산업형, 공해 유발형, 저부가 가치의 내수 위주 공장들이라는 점이다. 서울에서 강제로 이전된 영세 공해 업소로 공단이 조성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그리고 동일 업종의 다수 기업들이 블록별로 밀집해 있어서, 경기 변동에 따른 휴업과 폐업 사태가 잦으며, 그에 따른 고용 불안정 문제 역시 심각하다.
한국 경제는 수출 부문, 대기업·첨단 산업 부문이 호황이라 하더라도 내수와 중소기업, 전통적 산업은 장기적인 침체에 허덕이는 양극화에 직면하고 있다. 더욱이 2008년 이후 한국 경제의 심각한 위기 상황은 중소기업의 휴업과 폐업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 단지로서 안산이 직면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중소기업이 갖고 있는 낮은 임금, 열악한 작업 환경의 문제는 반월공업단지와 시화공업단지에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을 가져왔고, 휴업과 폐업으로 인한 고용 불안정 등은 이미 지역 경제에 구조화되어 있다. 공단이 가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안산 지역 경제, 나아가 안산 시민의 삶에도 그늘을 드리울 것이다.
한편 만성적 인력 부족은 안산 지역으로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모이게 만들었다. 반월공업단지와 시화공업단지에는 3D 업종을 중심으로 한 많은 업체에 외국인 노동자가 고용되었고, 이들의 숫자는 서울과 인천을 제외한 수도권 주요 도시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외국인 노동자의 급격한 유입은 안산에 새로운 공간, 곧 ‘외국인 집단 거주 지역’이 등장하게 만들었다. 이 새로운 변화는 또 하나의 빛과 그늘을 만들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문화와 가치가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의 거점이 될 수도 있고, 인종 차별과 범죄·빈곤 등과 같은 여러 사회적 문제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게토와 같은 공간이 될 가능성 역시 동시에 존재하면서, 안산의 현재와 전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단의 빛과 그늘, 그리고 그늘을 통과하는 새로운 빛]
천년의 역사를 가진 안산이 행정 편의에 의해 반월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된 것처럼, 안산의 변화는 공단 건설과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철저한 위로부터의 계획 과정, 졸속과 시행착오와 부실 공사로 점철되는 신도시 건설 과정, 삶의 터전을 빼앗긴 원주민들, 초기 이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된 부담은 공단 입주 기업에 대한 특혜적 지원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계획과 과정에서의 이러한 문제들은 곧 안산과 안산 주민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시화호의 오염과 악취 문제는 안산을 오염의 도시, 환경 재앙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했고, 반월공업단지와 시화공업단지는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과 불안정한 고용 구조 속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대거 유입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공단은 안산을 인구 70만이 넘는 수도권 최대의 산업 도시, 서해안 임해 공업 벨트의 중심이라는 ‘빛’을 선사하면서, 그 빛 아래 수많은 그늘을 만들었다.
안산은 이제 새로운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또 변화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환경 위기의 극복 과정을 통해 발생한 공공적 시민의 성장, 급속한 도시 변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 운동의 과정, 노동 문제를 통해 만들어진 노동 보호와 복지 강화의 풍토,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하는 새로운 다문화 실천, 잃어버린 역사를 찾기 위한 많은 문화적 노력 등이 바로 그 변화의 살아 있는 모습들이다.
이 변화 속에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의지, 노동자에 대한 존중, 생태계와 함께 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원칙이 담겨져 있으며, 또 담겨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공단의 빛은 그늘을 통과하며 새로운 빛을 만들어 낼 것이다. 반월신도시가 역사가 만들고 가꿔 온 이름인 ‘안산’을 다시 찾은 그 과정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