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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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성기리에서 주부치 희랑대사와 관련해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화엄종의 고승으로서 고려 태조 왕건(王建)[877~943]의 스승이었던 희랑(希朗]) 대사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희랑대사는 ‘주부치’라고 불리기도 했다. 희랑대사가 승려가 되기 전의 성이 주씨여서 ‘주부처’라고 불렸는데, 주부처가 나중에 주부치로 불리게 된 것이다. 경상남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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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출신 유학자 이교엽의 문집. 이교엽(李敎曄)[1863.11.21~1943.1.17]의 자는 정중(正中), 호는 국포(菊圃),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할아버지는 이수복(李守馥)이며, 아버지는 이병흠(李炳欽)이다. 모친 팔계 정씨(八溪鄭氏)는 정팔직(鄭八稷)의 딸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용산리(龍山里)에서 태어났다. 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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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용산 출신인 조선 후기 문신 김천일의 시문집. 『송천집(松川集)』은 1900년 주손(冑孫) 김용래(金溶來)를 비롯한 김종탁(金宗濯)·김병한(金炳漢) 등 문중의 어른들이 문집 간행을 위해 나서 곽종석(郭鍾錫)과 여러 유현(儒賢)들의 편차를 거쳐 1901년 4권 2책으로 간행되었다. 『송천집』의 저자 김천일(金千鎰)[1622~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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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 연안 이씨 입향조 이계준의 문집. 이계준(李繼俊)[1490~1558])은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자영(子英), 호는 쌍청당(雙淸堂)이다. 이구령(李九齡)의 아들로 문장이 뛰어나고 효행이 있었다. 1522년(중종 17) 임오(壬午) 식년시(式年試)에 생원 3등으로 급제하였으나, 당시 사화가 자주 일어나자 대과 응시를 포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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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출신 유학자 이동승의 문집. 이동승(李東昇)[1786.6.6~1863.11.17]의 자는 성목(聖木), 호는 아호(鵝湖), 본관은 완산(完山)이다. 할아버지는 이홍(李泓)이며, 아버지는 이양조(李陽肇)이다. 어머니 연안 이씨(延安李氏)는 이우항(李遇恒)의 딸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에서 1786년에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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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출신 조선 후기 유학자 박희전의 문집 박희전(朴熙典)[1803.2.1~1888.4.10]의 자는 문칙(文則), 호는 유간(酉澗),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5대조 박태웅(朴泰雄) 때부터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梁項)에서 살기 시작했다. 고조할아버지 박정(朴貞)은 무신란 때 창의했고, 할아버지 박경대(朴慶大)는 성담(性譚) 송환기(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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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의 조선 후기 무신 이술원의 문집. 『화촌선생실기(和村先生實記)』는 원집 4권 2책의 목판본으로 된 문집이다.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무신란] 때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서의 진압 과정과 화촌(和村) 이술원(李述原)[1677~1728]의 내력을 담고 있다. 1884년(고종 21)에 초판이 간행되었고, 1923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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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 산298-1에 있는 고려 시대 벽화 무덤인 거창 둔마리 벽화 고분이 그려진 이유. 옛 무덤 내부에 그리진 벽화는 고대 회화의 제작 과정, 표현 기법과 수준, 안료 및 아교 제조술 등 여러 가지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고대 사회의 생활 풍속·신앙·종교·사상 등을 생생하게 담아 내고 있어 역사·문화 자료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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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계진 거창 부사의 영세불망비로 한글이 새겨진 철비. 김계진 부사 선정비는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소재 포충사(褒忠祠) 자전루(紫電樓) 앞에 있으며, 원래 면사무소 뒷길에 반 이상 매몰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것을 도로 공사 과정에서 이건한 것이다. 1877년(고종 14) 거창에 부임한 김계진 부사에 대한 공적을 기록하기 위해 1879년(고종 16)에 건립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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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문신. 김천일(金千鎰)[1622~1696]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백강(伯剛), 호는 송천(松川)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김언평(金彦平)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훈련원 부정(訓鍊院副正) 김응복(金應福)이다. 할아버지는 참봉(參奉) 김식(金湜)이고 아버지는 참봉(參奉) 김중기(金重器)이다. 어머니는 충의위(忠義衛) 이용(李蓉)의 딸인 연안 이씨(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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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 동류의 명당 터, 청백리의 산실인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못질 마을 이야기.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동변리 못질 마을은 성주 이씨와 신창 표씨가 주를 이루고, 다른 성씨들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다. 못질 마을은 예부터 서출 동류의 명당터로 소문이 나 많은 성씨들이 터 잡고 살아온 마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조선 시대 두 명의 청백리를 배출하고, 세 명의 절부와 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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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나라의 성씨에 관한 최초의 구체적인 자료는 조선 세종 때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성씨 조(姓氏條)다. 이 자료에 의하면 거창현(居昌縣)에는 토성(土姓)이 다섯, 내성(來姓)이 하나이고, 거창현의 속현(屬縣)이었던 가조(加祚)에는 다섯 성이 있었다. 현재 거창군에 편입된 안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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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문인. 신복진(愼復振)[1536~1619]의 본관은 거창(居昌), 호는 야천(夜川)이다. 할아버지는 승훈랑(承訓郞) 신우맹(愼友孟)이며, 아버지는 요수(樂水) 신권(愼權)이다. 어머니는 진사(進士) 임득번(林得蕃)의 딸 은진 임씨(恩津林氏)이다. 부인은 이소백(李小白)의 딸 연안 이씨(延安李氏)이다. 신복진은 1536년(중종 31)에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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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이동승(李東昇)[1786~1863]의 본관은 완산(完山)이다. 조선 태종(太宗)의 아들 양녕 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다. 을사사화(乙巳士禍)를 피해 집안 전체가 거창부(居昌府) 양항리(梁項里) 양촌(陽村)으로 이주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이기상(李基祥), 증조할아버지는 이석지(李碩枝), 할아버지는 이홍(李泓), 아버지는 이양도(李陽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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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에 거주한 효자이자 충신. 이명돈(李命暾)[?~?]의 본관은 연안이며, 나라의 위기에는 창의하여 충을 세웠고 부모의 병환에는 정성을 다하여 효를 실천하여 정조 때 정려가 내려진 거창 지역의 효자이다. 이명돈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호는 동오(東塢)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죽재(竹齋) 이시익(李時益)의 현손(玄孫)이다. 연안 이씨는 병자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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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일어난 무신란의 전개 과정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1803년 제작 필사본 전적. 『이승원무신일기』를 기록한 이승원(李升原)[1673~1750]은 자가 진숙(振叔),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아버지는 이연웅(李延雄)이고, 어머니 은진 임씨(恩津林氏)는 첨모당(瞻慕堂) 임운(林芸)의 증손녀이다. 이승원은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화동곡(和同谷)에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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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거창 지역에 거주했던 열녀. 열녀 이씨(烈女 李氏)는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에 사는 이유은의 처였다. 이유은이 병으로 사망한 뒤 장례를 다 치르고 남편을 따라 순절하였다. 열녀 이씨의 본관은 흥양(興陽)이다. 흥양 이씨 시조는 이언림(李彦林)이다. 열녀 이씨는 학문과 덕으로 유명하며 이조 판서와 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을 지낸 문간공(文簡公) 창석(蒼石) 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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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문인. 이일협(李逸協)[1750~1808]은 『주역』을 공부하며, 집안 선현들의 이야기를 편찬, 저술하는 데 평생을 보낸 거창 출신의 문인이다. 이일협의 본관은 하빈(河濱), 자는 이택(而宅), 호는 이와(螭窩)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백회공(百悔公) 이개(李蓋)이며, 아버지는 이광하(李光河)이다. 어머니는 이기현(李基玄)의 딸 연안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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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숲과 마을의 돌담과 고택, 마을의 당산과 신앙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로서, 현재 새로운 미래로 도약하기 위하여 녹색 농촌 체험 마을로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는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 동호 마을 이야기. 동호 마을은 동쪽의 불영산(佛靈山)[835m]을 주봉으로 남쪽으로는 와웅산(臥熊山)[600m], 북쪽으로는 백석산(白石山)[흰대미산,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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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집성촌은 대체로 하나의 지배적인 동성 동족 집단이 특정 마을의 주도권을 가지고 집단적으로 거주하여 온 마을을 말한다. 이들은 문중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선산과 묘소를 마련하고 재실을 건립하여 족계를 조직하였다. 이에 더하여 문중의 서원과 사우를 건립하는 등 친족 조직을 공고히 하며 집성촌을 형성하고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