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 신이 함께 사는 동호 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1385
한자 自然과 人間, 神- - - 東湖 -
영어공식명칭 Dongho Village Living with Nature and Humans and Gods
이칭/별칭 솔향기 돌담 마을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태성

[정의]

마을 숲과 마을의 돌담과 고택, 마을의 당산과 신앙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로서, 현재 새로운 미래로 도약하기 위하여 녹색 농촌 체험 마을로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는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 동호 마을 이야기.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마을

동호 마을은 동쪽의 불영산(佛靈山)[835m]을 주봉으로 남쪽으로는 와웅산(臥熊山)[600m], 북쪽으로는 백석산(白石山)[흰대미산, 1,019m]에 둘러싸여, 서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남쪽 성재를 넘으면 성기성지(聖基城址)가 있고, 서쪽으로는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소재지 있는 마을로서, 옛날 역원이 있었던 원촌(院村)이 있다. 불영산 서남쪽으로 뻗은 가지 능선 사이에 있으므로 높은 진산을 배산으로 하고 하천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급격하게 낮아지는 능선과 능선 사이에 있어 안정적이다. 마을 뒤편은 경사가 매우 급하여 농경을 할 수 있는 밭도 규모가 크지 못하다. 그러나 마을 앞의 들판은 산에서 흘러내려 충적된 농지가 계단식으로 매우 발달되어 있어, 산간 지역의 마을로는 비교적 넓은 농토를 가지고 있다. 마을이 서쪽으로 뻗은 가지 능선에 의지하여 서남향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서쪽에 하천을 따라 개설된 큰길에서는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마을 앞에는 소나무가 주가 되는 마을 숲이 넓게 조성되어 있어 마을은 산속에 싸여 있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동호 마을은 삼한 시대부터 있었던 옛터라고 이야기 되는데, 이는 가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의 고분군이 마을 앞에 산재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熊陽面)의 웅(熊)의 훈은 곰[, ]이다. 대개 지모신을 뜻하는 우리말 , 를 차자 표기하는 한자로는 熊, 釜, 甘 등이 사용된다. 근방에 지모신으로 인식되는 곳의 남쪽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지명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대개 백석산 남쪽이므로 ‘웅양’이라고 한다는 설이 있으나, 우두령의 남쪽이라고 보는 쪽이 더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동호 마을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의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미수천(渼水川)의 동쪽에 있으므로 동변(東邊)이라고 부르다가 조선 순조 때 이곳에 살던 동호(東湖) 이지유(李之裕)의 호를 따서 동호 마을로 이름을 바꾸었다. 동호리는 두개의 자연 마을로 되어 있는데 동호[동변, 댕빈]와 성북[잣뒤, 잿뒤]이다. 동호는 쳉이[키]설이라 하여 키를 까불면 쭉정이는 날아가고 알곡만 남는다는 설을 바탕으로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서 살수록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성북(城北)’은 잣뒤 혹은 잿뒤라고 하는데 마을 뒤편[남쪽]에 옛 성터가 있으므로 그 성의 북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고 하여 ‘성북’이라고 하였다. ‘잣뒤’ 혹은 ‘잿뒤’의 재는 성(城)을 뜻하는 우리말이고, 뒤는 북쪽을 말한다. 또한 옛날에는 용바위가 마을 뒤에 있으므로 용호동(龍湖洞)이라 하였다.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므로 마을을 아래로 옮겨 성 북쪽에 자리하게 되어 ‘성북’ 또는 ‘잿뒤’라고 부르던 것이 ‘잣뒤’가 되었다.

동호 마을 안쪽에는 서당단(書堂壇)이 있는데 입구에 있는 입석을 세운 대(臺)이다. 옛날 서당인 설천재가 있으므로 이 단을 세운 것이다. 이외 동호 마을 안쪽의 들판을 안터들이라고 하고, 마을 남쪽 들판은 번득들이라고 한다. 불무골이라는 곳은 동호 북쪽의 골짜기와 논밭인데 이곳에 쇠를 녹이는 대장간[불무터]이 있었다고 하며 부솔골이라고도 한다. 또한 마을 뒤쪽 산에 물레방아가 있는 골짜기를 물방아골[물방골]라 하고, 마을 북쪽에는 은을 캤다는 은점골도 있다. 물방아골 남쪽의 골짜기에 턱이 진 곳은 둔턱골이라 한다. 이처럼 마을의 이름과 지형, 지질, 옛 흔적은 지명을 통하여 잘 남아 있다.

[마을을 일군 사람들]

동호 마을불영산에서 발원하여 동서 방향으로 흐르는 하천을 따라서 북쪽과 남쪽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 안에는 들어가는 입구에 설천재가 있고, 남서쪽 아래에 쌍청당(雙淸堂)이 있으며, 마을 동쪽에는 영은 고택동호리 이씨 고가[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22호]가 있다.

쌍청당은 동호 마을 남서쪽 어귀에 있다. 동호 마을의 실재 입향조라고 할 수 있는 이계준(李繼俊)이 조선 중종 기묘사화(1519) 때 벼슬을 그만두고 동호로 들어와 심청 수청(心淸 水淸)의 쌍청의 풍광을 즐기며 후학을 양성한 것을 기리기 위해 지은 집이다. 현재 이계준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원천사에서 제향받고 있다.

설천재는 동호 마을 입구에 있는데, 처음에는 서당골에 있던 것을 마을로 옮겨 세웠다. 설천재는 조선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서당으로 역할을 하면서 수많은 선비들을 키워낸 공간이다.

동호리 이씨 고가는 대개 1830년 건립된 것으로 격식보다는 실생활에 맞게 지어진 남부 지방의 전통 민가이다. 솟을대문 안의 경내에는 안채, 사랑채, 곳간채, 중문채, 대문채 등이 있다. 그중 사랑채는 건립자 이진악(李鎭岳)이 할아버지 이지유의 호를 따라 ‘동호재(東湖齋)’라 명명하였다.

영은 정사(靈隱 精舍)는 동호리 이씨 고가의 아래쪽에서 담장을 공유하는 집이다. 1884년 참봉 이준학(李浚鶴)이 차남인 영은(靈隱) 이현석(李鉉碩)에게 내어 준 집이다.

동호 마을은 산을 의지해서 이루어진 관계로 마을 담장들은 돌담이 대부분이고, 흙과 돌을 적절하게 섞어서 담을 쌓은 집들도 있다. 이들 돌담들이 줄지어 어우러진 모습은 동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심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거칠고도 투박하면서도 사납지 않고, 지나치게 높지도 않게 얼기설기 엮어서 되는 대로 툭툭 던져 놓은 듯 쌓아 올린 돌담은 순박한 농부의 사심 없는 손길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그 속에는 동호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산과 들과 계곡을 오가면서 겪었던 매우 일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동호 마을을 ‘돌담 마을’이라고 하는 것이다.

[주변의 산과 마을 숲]

동호 마을은 천혜의 자연적 환경을 갖추고 있다. 마을을 감싸는 백석산, 불영산, 와웅산의 산세도 웅장한 듯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으며, 마을 들어가는 입구에는 마을을 감싸는 숲이 있어 서남쪽을 제외한 바깥에서는 마을이 보이지 않도록 배치되어 있다. 이 숲은 약 100여 년 전 동호 마을에 있는 설천재의 학도들이 주위 경관을 조성키 위해 나무를 심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숲 중간 중간의 큰 소나무와 마을 입구의 오래된 소나무 등을 감안하면 그 이전부터 있었던 자연 숲에 조림을 더한 것으로 보인다. 숲은 약 500여 그루가 넘는 소나무를 주종으로 참나무, 낙엽송 등이 함께 자라며 아름다운 숲을 이루며, 그 가운데로 작은 개울이 흐른다. 일설에는 동북쪽의 불영산 아래는 곡식알이 남게 되는 챙이의 안쪽과 같아서 그곳의 마을 주민들은 부유하게 살고, 서쪽과 동쪽은 챙이의 손잡이이며, 남쪽은 챙이 끝이라서 재물이 날아가 버리는 형국이라고 한다. 이를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 소나무를 넓게 심어서 재물을 가두려는 풍수적인 비보 숲[裨補林, 비보림이란 어떤 마을이나 집의 지형적 위치나 풍수적 위치를 고려하여 그 마을에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으로 가꾸었다고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어떤 신을 믿어 왔나]

동호리에는 세 곳의 신성한 장소가 있으며, 이곳을 마을 사람들은 모두 당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이름은 산제당[웃당산], 아랫당산 두 곳으로 나눈다.

산제당은 할아버지 당산이라고도 한다. 마을에서 동쪽으로 약 1㎞ 정도의 거리의 수령 400여 년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소나무를 신목으로 하고, 그 옆의 바위를 신체로 한다.

마을 입구에는 나이가 500여 년을 넘는 느티나무가 있고, 그 나무 옆에는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석으로 들여쌓기 한 조산(造山)[인공적으로 쌓아 만든 산]이 있다. 이 느티나무는 당목이 되고, 조산은 조탑(造塔)이라고 한다. 조산의 가장 높은 곳 중앙에는 1매의 입석이 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높이 1.5m, 둘레 4m 정도이며 금줄이 둘려져 있다.

그곳에서 약 200m 남쪽에 있는 조탑은 소나무를 당목으로 삼고 있으며, 마을의 옛 길가에 자리 잡고 있다. 높이는 180㎝, 둘레는 10m이다. 북쪽에 있는 조탑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석재로 만들었으며, 역시 상부에 1매의 입석이 있다. 아마도 이 조탑이 원래 마을의 당산이었다가 나중에 마을에 새로 길이 나면서 북쪽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조산은 가장 원시적 형태의 탑으로 우주산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바위는 하늘과 땅, 지하를 관통하는 하늘 계단의 의미이며, 당목 역시 우주목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동호 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지내는데 제관은 마을 회의를 통하여 생기복덕이 있는 사람으로 정한다. 대개 약 5일 전부터 제관은 목욕재계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다음 흰 죽을 먹으며 근신한다. 마을 우물을 청소하여 새 물을 받게 하고, 주변에 붉은 황토를 뿌려 모든 부정을 몰아낸다. 당산나무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에 부정한 것을 금하고, 금구줄[금줄]을 친다. 14일 밤 11시가 되면 윗당산으로 올라가 15일 첫시에 당산제를 시작하고, 윗당산제를 드린 후 내려와 아랫당산에 제를 올린다. 웃당산에는 새로운 제기를 마련하여 제물을 진설하는데, 제물은 돼지머리·떡·삼탕·건어물 등을 올린다. 반면 아랫당산에는 술만 올린다.

동호리 뒤에는 배산(背山)이자 진산(鎭山)인 불영산이 있다. 불영산은 예로부터 신령스런 산이라고 하여 부정한 것을 가까이하면 안 된다는 금기가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불영산에는 사람의 묘는 물론 짐승의 뼈조차도 하나 없다고 한다. 만약 부정한 것이 가까이 가서 부정을 탄다거나 사람이나 짐승을 묻으면 산이 우는 소리를 내면서 큰비가 오거나 아주 극심한 가뭄이 온다고 생각하였다. 옛날 어떤 가난한 사람이 묏자리를 찾을 수 없어 불영산장례를 지냈더니 산이 울음을 울고 비가 세차게 쏟아지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산울림이 너무 심하여 이상하게 생각하고 가 보았더니 묘소가 뒤집어져 난리가 났더라는 것이다. 이에 묘를 파내어 다른 곳으로 옮겼더니, 비가 그치고 산도 조용해졌다. 또한 어느 날 산이 흔들리고 울며 온 마을이 흔들려서 산으로 찾아갔더니 산에 동물의 뼈가 널려 있어 이를 치웠더니 다시 산이 조용해졌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마을 사람들은 불영산에 묘를 쓰지도 않고, 부정한 일이 있으면 산에 가지도 않으며, 산에 나쁜 물건이 있으면 금방 치운다고 한다. 그러므로 정갈한 마음으로 불영산에 소원을 빌면 소원이 잘 이루어진다고 여겼다. 또한 불영산에는 산나물과 송이버섯 등 약초가 많이 나는데 이곳의 약초는 특히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불영산에는 기우제를 지내는 장소가 있는데, 불영산 하단의 물방아골의 폭포가 그곳이다. 예전에는 비가 오지 않고 매우 가물 때 그곳에서 돼지를 잡아서 삶아 제를 지내고 마을 사람들이 나누어 먹고 내려왔다고 한다. 이러한 기우제 형식은 원래 강이나 호수, 폭포 등에 호랑이 머리를 집어넣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호랑이가 물을 관장하는 신인 용과 싸워서 비를 오지 못하게 하는 나쁜 용을 물리치게 해 달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호랑이를 구할 수 없으므로 개나 돼지를 이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늘을 사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소재지가 있는 원촌에서 동호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매우 아름답다. 하천을 건너 숲을 바라보면, 마을 뒤에 버티고 선 불영산의 모습이 마을의 존재를 신비롭게 만든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조성된 소나무 숲은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맞아 준다. 그러나 소나무 숲을 벗어나 마을 입구에 서면 몇백 년이나 된 느티나무가 버티고 서 있고, 그 옆에는 연안 이씨 쌍청당의 행적비가 근엄하게 서서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저절로 머물게 한다. 조금 더 들어가면 마을 회관이 있는데 이곳에는 서로 혈연관계인 일가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대부분 노령층으로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고 현재 마을에 남은 젊은 사람 몇몇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60세를 넘긴 고령층이다. 이들은 농사일로 매우 바쁜 5~6월의 농사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마을 회관에 모여서 함께 생활하고 점심을 함께 먹는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동호 마을은 마을 숲과 수려한 주변 산수 경관, 마을 당산과 조산, 불령산에 서린 신성하고 풍부한 이야기, 연안 이씨 집성촌이기에 만들어지는 고택과 재실, 서당 등이 어우러져 새로운 현재적 가치가 재창출되는 곳이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울창한 솔숲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걸으면 한여름에도 짙은 그늘이 드리우고 진한 소나무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동호림 내에는 급수 시설, 화장실, 의자 등 편의 시설이 설치되어 휴식처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와 연관된 길을 따라 마을 전체가 하나의 탐방 코스가 된다.

2007년 동호 마을은 ‘솔향기 돌담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녹색 농촌 체험 마을로 지정이 되었다. 녹색 농촌 체험 마을 조성 사업은 도시민의 다양한 수요에 맞는 휴양 체험 공간으로 농색 농촌 체험 마을을 조성하여 농촌 체험 관광 및 도농 교류의 거점 지역으로 활용하고 친환경 농업, 자연 경관 등을 활용한 농촌 체험 관광 활성화를 통해 농업 부가 가치를 증진시켜 농가의 소득 향상에 기여토록 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동호 마을에서는 마을 앞의 원시림인 동호숲과 마을 안의 전통 한옥, 지역의 농특산물인 포도, 송이버섯 등을 활용한 다양한 체험거리를 만들어서 농가 소득 증대는 물론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의 농특산물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지정되었다.

이러한 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거창 웅양 포도 축제가 열리고, 2011년 8월에는 홍익 대학교 교수들과 청년 화가들이 함께하는 예술 꿈나무 길잡이 ‘솔향기, 빛과 소리’ 행사가 열렸다. 또한 봄과 가을에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체험 학습을 하기 위해 동호 마을 숲을 찾는 횟수가 갈수록 점차 늘어나고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여서 이들과 연계된 마을의 이야깃거리와 먹거리의 적극적인 개발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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