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구로공단이 있던 곳. 대한민국 수출의 10%를 담당했던 산업 1번지. 수많은 여공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던 곳. 바로 가리봉동이다.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화목한 가정에서 평범한 유년 생활을 보내고~’로 시작하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와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을 하고, 좁은 방에서 언니·동생과 부대끼며 살아야 했...
1970년대 구로동과 가리봉동에 들어선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두어 평 남짓한 좁은 벌집에서 서너 명이 같이 생활했다. 어떤 이들은 ‘쪽방’이라 부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벌집'이라 부르기도 한 곳으로, 두어 평 남짓한 작은 방에 부엌이 딸린 집을 말한다. 2010년 현재도 벌집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김정득[1947년생] 씨에 따르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고치고 살기 좋아졌다고는...
1960년대 후반부터 불어 닥친 산업화의 바람은 구로구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농사를 짓던 가리봉동 일대에도 거대한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주로 섬유 공장과 가발 공장이 많았다. 당시의 공장들은 기계화나 산업화보다는 다수의 인력을 투입해서 제품을 만드는 제조업이었다. 따라서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가리봉동 일대에 보다 많은 주거지가 필요했다. 가리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