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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652
한자 韓汝溭
영어음역 Han Yeojik
이칭/별칭 중안(仲安),십주(十洲)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정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75년연표보기
몰년 1638년연표보기
본관 청주(淸州)
대표경력 형조판서

[정의]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한여직(韓汝溭)[1575~1638]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중안(仲安), 호는 십주(十洲)이다. 아버지는 청천군(淸川君) 한준(韓準)이고, 어머니는 중추부도사(中樞府都事)를 지낸 최정수(崔貞秀)의 딸이다.

[활동사항]

1604년(선조 37) 생원으로 유릉참봉(裕陵參奉)에 제수되었고,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 갑과에 급제한 뒤 세자시강원설서·세자시강원사서·사간원정언·세자시강원문학 등을 지냈다. 이후 외직에 보임되어 재령현감을 지내고 품계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으나 곧 사임하고 귀향하였다. 1613년(광해군 5) 해주옥사에 연루되어 투옥되었고, 석방된 뒤에도 10여 년 동안 은거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승정원동부승지에 이어 승정원좌부승지가 되었고,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경기도관찰사로서 난을 평정하여 품계가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이르렀다. 1628년(인조 6) 형조참판으로 동지의금부사를 겸하여 유효립(柳孝立)의 모반 사건을 다스리고 그 공으로 정2품에 올랐다. 이해 등극사(登極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그 뒤 의정부좌참찬·사헌부대사헌을 거쳐 예조판서·형조판서·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평소 독서를 즐겼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다. 사후 영사원종공신(寧社原從功臣)으로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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