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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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大鉉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명환 |
출생 시기/일시 | 1872년 - 김대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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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7일 -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에 만세 시위 전개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23일 -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 받음 |
출생지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 |
활동지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오산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대현(金大鉉)[1872~?]은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당시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자, 같은 마을에 사는 안종태(安鍾台)·안종규(安鍾奎)·이사범(李士範)·조필선(趙弼善) 등과 함께 백석면에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27일 주민 수백여 명이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에 모여 시위를 하였는데, 이날의 성공적인 시위에 고무되었던 김대현은 만세 운동의 열기를 다음날까지 이어 가기 위해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3월 28일 양주군 백석면 오산리 대들벌에서 600여 명이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고, 백석면사무소 앞까지 진출하여 만세를 불렀던 김대현은 경찰에 체포되어 동지들과 함께 기소되었다. 1919년 5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 받고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6월 30일 기각되고 다시 고등 법원에 상고하였으나 8월 28일 기각, 형이 확정되어 복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