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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업의 시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9038
지역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노현

신혼 초에는 그냥 집안일만 했다. 하지만 삶의 목표를 생각하면 뭐라도 해야 했다. 그러다가 주위 할머니들을 도와 심심풀이 삼아 도라지 까기를 시작했다. 상대원시장 상인에게서 도라지를 받아다가 한 양푼씩 까면 그 때 돈으로 1000원을 받았다. 1986년 즈음해서 우연히 지퍼 부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389단지의 쓰러져 가는 허름한 2층 기와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그 때 당시 우리 아저씨가 한 18만 원 월급생활 할 땐데, 우리 아줌마들이 사회 나가서 돈 벌면 하루 일당이 5000원씩 했을 때 무렵인데, 요 지퍼 하나를 딱 끼우면 1원씩인가 그렇게 줬었어요. 딱 끼면 1원씩인데 좀 욕심이 생기고, 시계를 재가면서 일을 했어요. 그래가지고 해보니까 한 시간에 5~600백씩 끼니까 그게 괜찮잖아요. 그런 식으로 재미를 붙여가지고, 일을 잘해주니까 연신 이어지면서.”

노씨 아줌마는 생활력이 강했다. 손이 많이 가는 부업을 하기에 제격일만큼 손도 빠랐다. 수출이 잘 되던 시절이라 일거리는 넘쳐났다. 조금 지나면서 집에 작업용 기계도 들여놨다. 그리고 아줌마들 서너 명을 모아서 같이 작업을 했다.

그러나 남편 강씨는 그녀가 부업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부업을 당장 그만두라고 하였다. 당시만 해도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주위에 많았다. 그들에 비하면 그녀의 살림 형편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으니 남편의 성화가 순전한 억지 강요는 아니었다. 그래도 노씨 아줌마는 부업을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여자가 집에서 우두커니 집지키는 개냐며 남편 강씨와 싸움도 많이 했다.

아이들은 엄마의 부업보다도 상대원의 초라함을 싫어했다. 그래서 이사 가자고 졸라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노씨 아줌마는 부업하기 좋은 상대원을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애들이 초등학교 가면서 막 인제 이사 가자고 난리를 치고, 엄마 여기 살기 싫다고 그냥. 동네가 너무 후지고 집도 작다 그러면서. 애들이 또 큰애가 욕심이 많아요. 절 닮아서 욕심이 많아가지고, 우리 아저씨가 벌고 내가 벌고 그니까, 인제 돈 어느 정도 저기하고 그러니까, 엄마 우리는 그렇게 못 사는 것도 아닌데 이사를 못가고 여기서만 눌러 사냐고 그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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