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9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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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노현 |
또또기계라고 했다. 하도매기계라고도 했다. 그것은 배낭 같은데 구멍을 내고 조리개를 끼워 압착하는 기계였다. 잠바 같은 옷의 똑딱이 단추도 그 기계로 달았다. 노씨 아줌마의 부업이 본격화된 것은 또또기계가 집에 들어온 이후였다.
“첨에 6개월 작업이 있으니까 고거 좀 해 줍사 하고 어떤 제안이 왔어요 저한테. 어떤 사장이지 말하자면 하청 사장이 그런 식으로 제의가 와 가지고, 초창기는 그 기계를 사주는 바람에 인제 일이 된 거예요. 지퍼 끼는 부업에서 내 혼자 하다가, 그것도 인제 한 2년 정도는 저 혼자 했었어요, 기계 한대 딱 놓고. 뭐 분양집이니까 2층에 아래층에 다 세 주고, 2층에 혼자서 마루에 쪼그맣게 하나 놓고서 하니까.”
그렇게 소문과 소개를 통해 일거리가 조금씩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중동[현 중앙동]에 살던 친구네에 놀러간 일이 있었다. 돌마초등학교와 성남여자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였는데 결혼 이후에는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지내왔다. 친구 남편은 서울에서 군자실업이라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게 마침 가방을 재단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부탁하여 작업 물량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 남편이 다른 곳의 작업물량도 물색해 주고, 돈도 받아다 주었기 때문에, 노씨 아줌마는 이런 저런 신경 안 쓰고 기계 작업에만 열중하면 되었다. 1차로 완성되어 오는 가방에 펀치질을 해서 구멍을 뚫고, 또또기계로 조리개를 끼워 압착하는 데까지가 그녀의 역할이었다. 그렇게 최종 완성된 가방은 라벨을 달고 포장 공정을 거쳐 수출길에 올랐다.
그렇게 7,8년이 지나자, 소문이 소문을 내고 일이 일을 물고 왔다. 노씨 아줌마는 작업 보수를 현금으로 고집해서 받았다. 가격을 좀 낮추는 한이 있더라도 그 원칙만은 지켰다. 업계를 잘 모르는 아줌마라서 문제가 생겼을 때 일일이 찾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기한만큼은 확실하게 지켜주었기 때문에 신용이 쌓였다. 특히 수출 건은 시간엄수가 생명이었다.
“수출 건은 그렇잖아요, 수출 건은 날짜 시간 맞춰야 되니까 진짜 밤낮없이 열심히 살았어요. 저는 그런 식으로 일을 하면서 돈도 좀 모아지면서 그러니까, 이사를 가자고 그러는데, 거기서 자꾸 인제 기계가 늘어나면서 아래를 세를 주던 거를 빼고 내가 인제 거기다가 기계를 몇 대 놓고 일이 점점 커지면서 일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상대원동에서 주로 그런 식으로 내 생활을 가꾸면서 살았는데.”
노씨 아줌마에게 상대원은 삶의 터전이며 생활 전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