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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구씨와 절강편씨 - 봉산마을에 터를 잡다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C010201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봉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수정

봉산마을자여마을에서 나누어진 지 채 15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이전까지는 송정마을·용정마을·단계마을과 함께 하나의 자여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봉산마을 입향조는 자여마을의 입향조와 같다. 자여마을에 처음 들어온 성씨는 예부터 창원에 터를 두고 형성된 창원구씨와 창원편씨로 알려져 있으며, 이 후 봉산마을로 그 생활권이 확대되어, 지금의 마을 입향조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 송산노인회 총무인 한판줄 씨에게 봉산마을 입향조가 누구이며 본이 어디인가를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젤 먼저 온기 입향조라. 편씨하고 창원구씨하고. 근데 편씨 집안은 형편이 없었어. 안 일어나. 살고 있기는 (마을에) 몇이 살고 있는데. 집안이 자꾸 오물어 들고(형편이 어려워지고). 창원구씨는 성장을 많이 했고. 집안이 번창하고 지금. 저 마을 언저리게 재실도 있어. 창원구씨 재실.”

편씨는 본시 단본으로서 절강편씨가 마을에 입거하였던 것으로 추측되나 마을에 입거한 후에 번창하지 못했다고 한다. 마을에서 세거하여 번창한 성씨는 창원구씨로, 창원의 북면 내곡과 동읍 송정마을 등에 집성을 이루고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정마을과 연접한 봉산마을에도 다수의 창원구씨가 거주하면서 대성을 이루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봉산마을에는 현재 대부분의 후손들이 도시로 이주하여 3~4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인근 송정마을에도 대부분의 후손들이 이주하고 현재는 5~6가구의 구씨들이 거주하고 있을 뿐이다.

봉산마을에는 시조공(始祖公) 의창군(義昌君)의 유허비와 제단, 중시조(中始祖) 직제학(直提學) 천곡공(川谷公)의 제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후손들에 의해 매년 10월에 향사가 이루어진다.

[정보제공자]

황봉광(남, 1919년생, 봉산마을 거주)

한판줄(남, 1941년생, 봉산마을 거주, 송산노인회 총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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