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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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부터 1910년까지의 시기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의 역사. 조선은 1876년 2월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에 따라 부산, 원산, 인천이 차례로 개항되었고 내륙의 주요 도시에는 개시장이 설치되었는데, 이들 개항장과 개시장을 중심으로 근대의 신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정부는 개항 이후 부국강병을 목표로 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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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3월 거창군 매학 일대에서 의병장 김동신이 일본 군경과 교전한 전투. 1908년 3월 의병장 김동신은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궁항리 매학 일대에서 일본 군경 합동 토벌대와 교전하여 큰 타격을 입혔다. 을사늑약 체결 후 이에 반대하는 의병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는데, 경상남도 서부 지역에서는 1907년 8월 군대 해산 이후 본격적인 의병 투쟁이 전개되었다. 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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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거창 지역과 덕유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 김동신(金東臣)[1871~1933]은 경상남도, 전라북도의 접경 지대와 덕유산, 지리산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김동신은 1906년 음력 3월경 약 30명의 의병을 이끌고 덕유산에 있는 자원암(紫原庵)으로 내려와 머무르면서 거사를 준비하였다. 군대 해산 후 의병 항쟁이 본격화되자 1907년 8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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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체결 후 덕유산을 근거지로 거창 등지에서 일제와 맞써 싸운 의병 부대. 을사늑약 체결 후 덕유산을 배경으로 경상남도과 전라북도, 충청북도 접경 지대에서 활약한 의병 부대로, 김동신과 문태수 의병 부대가 대표적이다. 러일 전쟁과 을사늑약의 체결로 이어지는 일제의 국권 침탈이 가속화되자 이에 반대하는 의병이 전국적으로 크게 일어났다. 거창 등의 경상남도 서부 지역에서는 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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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거창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성문길(成文吉)[?~?]은 김동신(金東臣) 의병장의 비장(裨將)으로 합류하여 거창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이다. 1908년 6월 김동신이 체포된 후에는 독자적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여, 차은표(車恩表)와 함께 경상북도 성주에서 활약하였다. 성문길은 경상북도 지례군[현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으로, 1894년 동학 농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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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체결 후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를 근거지로 활약한 항일 의병. 을사늑약 체결 후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서 조직되어 덕유산 의병과 함께 일본군 및 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거창의 대표적인 지역 의병이다. 을사늑약 체결 후 이에 반대하는 의병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무렵인 1906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서 오일선(吳馹善)을 중심으로 김성진(金成鎭),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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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거창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유종환(兪宗煥)[1860 또는 1858~1909]은 서울 출생의 무과 급제자로서, 1907년 김동신(金東臣)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김동신의 비장(裨將) 등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김동신이 체포된 후 80여 명의 부하를 이끌며 전성범(全聖範) 등과 연계하여 경상남도, 전라북도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5월 초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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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덕유산을 중심으로 거창 지역에서도 활동한 의병장. 이장춘(李長春)[1878~1910]은 1907년 덕유산을 근거지로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이며,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출신이다. 초기에는 김동신(金東臣) 의병장과 함께 활동한 적이 있으며, 1908년 초에는 30여 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무주 주재소,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등을 습격하였다. 1909년에는 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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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거창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임수안(林遂安)[?~?]은 의병장으로서 약 9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독립적으로 활동하였지만, 상황에 따라 김동신, 이장춘, 유종환 등의 의병 부대와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김동신(金東臣) 의병장의 비장으로서 거창을 비롯하여 지리산과 덕유산을 무대로 활동하였다. 임수안은 김동신 의진에 참여한 의병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