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893
한자 金東臣
이칭/별칭 원표(元表),청암(淸菴),동신(東信),김승지(金承旨)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가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1년 12월 26일연표보기 - 김동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6년 3월 - 김동신, 민종식을 방문하여 의병 거병 약속
활동 시기/일시 1907년 8월 - 김동신, 내장산 백양사에서 고광순과 의병 거병
활동 시기/일시 1907년 9월 - 김동신, 순창 우편 취급소 및 경무 고문 분파소 습격
활동 시기/일시 1907년 10월 - 김동신, 거창군 월성 전투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08년 4월 - 김동신, 거창군 고제면 매학 전투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08년 6월 - 김동신 체포
몰년 시기/일시 1933년 1월 30일연표보기 - 김동신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김동신 건국 훈장 독립장 추서
출생지 김동신 출생지 - 대전광역시 유성구 덕진동
묘소 김동신 묘소 -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427-1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의병장

[정의]

근대 개항기 거창 지역과 덕유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

[개설]

김동신(金東臣)[1871~1933]은 경상남도, 전라북도의 접경 지대와 덕유산, 지리산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김동신은 1906년 음력 3월경 약 30명의 의병을 이끌고 덕유산에 있는 자원암(紫原庵)으로 내려와 머무르면서 거사를 준비하였다. 군대 해산 후 의병 항쟁이 본격화되자 1907년 8월 전라북도 정읍군 백양사(白洋寺)에서 고광순(高光洵)과 더불어 기병할 것을 의논하고 인근에 통문을 돌려 의병을 일으켰다. 그리고 삼남 의병 도대장(三南義兵都大將)이 되어 경상남도 거창군을 비롯하여 전라남북도, 충청남북도 접경 지역에 출몰하여 활동하였다.

[가계]

김동신의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 김소제(金堯濟)와 어머니 창원 황씨(昌原黃氏) 사이에서 6형제 중 3남으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김동신은 경상남도, 전라북도의 접경 지대와 지리산, 덕유산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본래 한의(韓醫)였던 그는 1906년 음력 3월경 민종식(閔宗植)이 홍주 의병을 일으킨 것을 듣고 그를 찾아가 전라도에서 의병을 일으킬 것을 약속한 후 약 30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라북도 무주군 덕유산에 있는 자원암으로 내려와 머무르면서 거사를 준비하였다. 김동신민종식이 홍주성 전투에서 패하고 연계가 되지 않자 금산, 용담, 전주 등지에서 동지를 규합해 나갔다. 김동신의 병력은 30~70명일 때도 있었으나, 최고 1,000명에 이르기도 했다고 한다. 스스로 ‘김승지(金承旨)’라 불렀던 김동신은 자신의 비장으로 유종환(兪宗煥), 문태수(文泰洙), 최정근(崔正根), 성문길(成文吉), 오대근(吳大根), 국인묵(國仁默), 임병주(林秉柱) 등을 두었는데, 이들은 각각 50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병력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김동신은 군대 해산 후 의병 항쟁이 본격화되자 1907년 8월 전라북도 정읍군 백양사(白洋寺)에서 고광순(高光洵)과 의논하고 인근에 통문을 돌려 의병을 일으켰다. 그리고 삼남 의병 도대장(三南義兵都大將)이 되어 경상남도 거창군을 비롯하여 전라남북도, 충청남북도 접경 지역에 출몰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9월 10일에는 의병 80여 명을 통솔하여 순창의 우편 취급소와 경무 고문 분파소를 습격하였다. 이 순창 거의(擧義)는 군대 해산 후 호남 지역에서 발생한 의병 봉기의 선구가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1907년 10월 10일에는 의병 600명을 거느리고 경상남도 거창군 월성에서 일본군 40명을 공격하였고, 10월 21일에는 의병 100여 명을 거느리고 이석용(李錫庸) 의진과 합세하여 용담군 심원산(深原山)에서 일본군 47명과 종일토록 교전을 벌였다. 1908년 3월 6일에는 거창군 고제면 매학(梅鶴) 일대에서 일본군 70여 명과 교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동신의 항전이 계속되자 일제는 김동신 부대의 근거지 중 하나인 지리산 문수암을 소각하는 등 진압에 혈안이 되었다. 그러던 중 김동신은 병을 얻어 비밀리에 고향인 충청남도 회덕군 탄동면 덕진동에서 치료를 하다가 1908년 6월 대전 경찰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8월 15일 공주 지방 법원에서 ‘일본군과 교전 내란죄’로 종신 유배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묘소]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427-1번지에 김동신의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김동신에게 건국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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