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남문화대전 > 성남향토문화백과 > 삶의 주체(성씨와 인물) > 근현대인물 > 정치가·행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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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 군인, 공무원, 사업가. 본적은 서울, 고향은 평양, 주소는 광주 중부면 탄리이다. 한국전쟁 기간 중 월남하여 군생활을 하였고, 32세 때인 1958년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1961년에는 3개월간에 걸쳐 광주군수를 지냈다. 그 후 무적(無籍)으로 전전하다가 개발사업에 착수하여, 1971년 서울에서 모란개척단을 설립하고 대표이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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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989. 성남초등학교 신축 교사의 부지 등을 제공한 육영사업가. 박천복은 1901년에 출생하여 정식으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면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 활동을 본격화하였다. 박천복이 성남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것은 사회적 환원을 실천적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성남초등학교의 신축 교지를 기증하는 한편 사회 공적 시설인 성남출장소의 부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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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1975. 정치인. 건국 초 국회의장을 지낸 신익희의 큰아들로 광복군과 정치인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1915년 9월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하여 1923년에 어머니와 함께 상해로 아버지 신익희를 찾아갔다. 1941년 중국 상해 광화대학(光華大學) 상과를 졸업하였다. 중일전쟁중인 1941년 중국국민정부감찰원 위임관을 비롯하여 국민정부군의 소교복무원(少校服務員), 중앙은행 과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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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철종 9)~1926년. 조선말기 문신. 친일파. 본관은 우봉(牛峰).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출신. 자는 경덕(敬德), 호는 일당(一堂)이다. 이석준(李奭俊)의 아들이며 판중추부사 이호준(李鎬俊)의 양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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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에서 1952년까지 돌마면사무소 면장을 역임한 인물 1906년에 돌마면은 여수동, 하탑리, 상탑리, 이매동, 분당리, 수내촌 등 15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29년 이매리에 돌마면사무소가 신축하였고 이갑규에 이어 1930년에는 이택규가 돌마면장에 임명되어 행정을 관장하였다. 1930년대 면장은 관제 자치기구를 육성하여 매판적 동맹자를 구축하는 한편 혁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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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이매리에 신축한 돌마면사무소 면장을 역임한 인물 조선 후기 여지도서에 따르면 돌마면은 상동리와 하동리의 2개 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1846년에 돌마면의 경우 총호수가 460호이며 남자가 1,140명이고 여자가 1,224명으로 나타난다. 1906년에 돌마면은 여수동, 하탑리, 상탑리, 이매동, 분당리, 수내촌 등 15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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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가이자 교육가. 정동성(鄭東星)[1939~1999]은 경기도의 성남시·광주군·여주군·이천군 지역에서 1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이후로도 11대, 12대, 13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민주정의당 원내총무, 국회상공위원장과 체육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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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1979. 군인. 국회의원. 1934년 서울에서 출생한 차지철은 1953년 사병으로 입대하여 갑종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미국 육군보병학교 고등군사반을 수료하고 국민대학교 정치학과와 한양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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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내무부에 근무하다 성남시청의 제3대 시장으로 취임한 인물. 홍석표는 1976년 7월에 내무부에 근무하다가 성남시청의 제3대 시장으로 취임하였다. 1977년 7월 19일에 강원도 기획관리실장으로 이임하여 성남시장으로 재직한 것은 1년 정도에 해당한다. 성남시에 재임하면서 문화 복지의 도시 건설을 시정 방침으로 정하여 업무를 추진하였다. 세부적인 추진 사업은 총력안보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