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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장 영업의 실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9081
지역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노현

착실하게 석유가게를 운영하던 남편은, 군에서 제대한 조카의 꾐에 넘어가 대학가 앞에 당구장을 열었다. 처음에 당구장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녀는 극구 반대했다. 그냥 몸으로 벌어먹던 사람이 젊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당구장을 잘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학생들을 상대로 당구장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뭐랄까, 대학생들 저는 좀 실망을 했던 게, 저희가 당구장이 백 평이니까 다이가 열 대였어요. 글고 가운데 휴게실이 있었어요. 근데 24시간을 하다 보니까 대학생들이 집에도 안가고 거기서 잠을 자는 거예요. 남자 여자 가운데 끼고. 그니까 저희 생각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거예요. 그냥 그런 거 봐주고 다 도닥거리면서 장사를 해야 되는데 고지식하니까 그게 안 되는 거예요. 나중에 휴게실을 딱 없애버렸어요. 그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애네 아빠 좀 융통성이 있었으면 괜찮았는데. 또 과대표가 와 가지고 무슨 축제 때 보면은, 술값을 달라고 노골적으로 그러는 거예요. 그래 갖고 안해 주면 과전체가 다른 당구장으로 가버리는 거예요. 너무 아이들이 맹랑한 거예요.”

당구장을 운영하는 경비도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심지어는 학생들을 당구장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당구장으로 실어 나르는 봉고차까지 운행해야 했다. 주변 당구장이 대부분 그런 식으로 영업을 했다. 그런저런 이유로 당구장은 6개월을 버텨낼 수 없었다. 지금도 학생들을 실어 나르는 학원 버스를 볼 때마다 그녀는 당구장의 악몽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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