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30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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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惠公主 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종준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663년 12월 4일 - 명혜공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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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70년 - 명혜공주 태실비 건립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73년 4월 27일 - 명혜공주 사망 |
이장 시기/일시 | 1936년 5월 26일 - 서삼릉으로 이전 |
현 소재지 | 서삼릉 왕자 왕녀 묘역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원당동 201-99] |
원소재재 | 명혜공주 묘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
출토 유물 소장처 | 명혜공주태실비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동남리 산16-1] |
성격 | 무덤 |
양식 | 민묘 |
관련 인물 | 현종|명성왕후|숙종|명혜공주 |
관리자 | 문화재청 |
문화재 지정 번호 | 부여군 향토유산[태실비]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던 현종의 차녀 명혜공주의 묘.
[개설]
명혜공주(明惠公主)[1663~1673]는 조선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 사이에 태어난 1남 3녀 중 둘째 딸이다. 언니가 명선공주이고 오빠가 숙종이다. 가축 전염병인 구제역과 사람에게 치명적인 천연두(天然痘)가 크게 번지던 현종 14년[1673]에 명혜공주가 9세에 죽고, 3개월 후 14세인 명선공주도 죽었다. 명혜공주는 신요경(申堯卿)과 약혼을 했기에 효경은 신요경에게 부마의 작위인 ‘동안위(東安尉)’를 내렸다. 하지만 신요경이 결혼할 수 있도록 작위를 거두었다.
명혜공주와 명선공주가 죽자 현종은 봉국사를 새로 짓고 두 공주의 혼을 모셨다. 숙종은 누나 명선공주와 동생 명혜공주의 혼을 달래기 위해 제사에 공을 들였는데, 궁궐의 담장을 허물어 두 공주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짓기도 했다. 나중에 성남 지역에 세워진 수진궁에서도 두 공주의 제를 지냈다.
[위치]
명혜공주 묘는 지금의 성남시 태평동인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숯골에 있었는데 나중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로 옮겨졌다.
[변천]
명혜공주 묘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숯골에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인 1936년 5월 26일 서삼릉으로 옮겨졌다. 일제는 민족정기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전국에 있던 왕자와 공주의 태실과 묘를 한 곳에 수용했다.
[형태]
명혜공주 묘는 흙으로 봉분을 쌓은 민묘 형태이다.
[금석문]
명혜공주 묘비에는 태지(胎志), ‘명혜공주지묘(明惠公主之墓)’라고 쓰여 있다.
[현황]
명혜공주 묘는 서삼릉 내 왕자 왕녀 묘역에 있다.
[의의와 평가]
명혜공주 묘는 조선 후기 매장 풍습과 함께 왕실의 장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전염병으로 생을 달리한 명선공주의 내력을 통해 조선의 질병사와 사회 연구에 참조할 만한 자료를 제공한다. 묘의 이전과 기록 등은 일제 강점기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학술 증거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