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30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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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善公主 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종준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659년 12월 28일 - 명선공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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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73년 8월 2일 - 명선공주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673년 8월 - 명선공주 묘 조성 |
이장 시기/일시 | 1936년 5월 24일 - 일제 강점기 민족혼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서삼릉의 왕자 왕녀 묘역으로 이전 |
현 소재지 | 왕자 왕녀 묘역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원당동 201-99] |
원소재재 | 명선공주 묘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고궁박물관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12[세종로 1-57] |
성격 | 묘 |
양식 | 민묘 양식 |
관련 인물 | 현종|명성왕후|숙종|명혜공주 |
관리자 | 문화재청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던 현종의 장녀 명선공주의 묘.
[개설]
명선공주(明善公主)[1660~1673]는 조선 제18대 왕 현종(顯宗)[1641~1674]과 명성왕후(明聖王后) 사이에 태어난 1남 3녀 중 장녀이다. 명선공주의 동생이 숙종(肅宗)이고, 그 뒤로 명혜(明惠)공주, 명안(明安)공주가 있다. 현종은 딸들을 끔찍이 여겼다. 사신이 북경에서 돌아올 때 청나라에서 보내온 은자(銀子) 1천 냥을 현종이 명선공주에게 주니, 송준길이 공금으로 사용해야지 개인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임금이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가축 전염병인 구제역과 사람에게 치명적인 천연두(天然痘)가 크게 번지던 현종 14년(1673)에 명혜공주가 9세에 죽고, 3개월 후 14세인 명선공주도 죽었다.
명선공주는 맹만택과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세상을 등져 현종은 맹만택이 상복을 입기를 바랐다고 한다. 상복을 입게 되면 맹만택은 평생 홀아비로 늙어야 할 운명이었는데, 대신들이 반대하여 상복을 입지 않아도 되었다.
[위치]
명선공주 묘는 지금의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인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숯골에 있었는데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으로 옮겨졌다.
[변천]
명선공주 묘는 본래 숯골에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인 1936년 5월 24일 고양시 서삼릉(西三陵)으로 옮겨졌다. 충남 보령에 있던 태실(胎室)도 서삼릉으로 옮겨졌다. 일제는 민족정기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전국에 있던 왕자와 공주의 태실과 묘를 한 곳에 수용했다. 현재 성남에 있는 봉국사는 명선공주와 명혜공주의 혼을 모신 절이다. 수진궁(壽進宮)은 공주의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지금의 수진동이라는 지명은 여기서 유래했다.
[형태]
명선공주 묘는 일반적인 민묘의 형태이다.
[금석문]
명선공주 묘비에는 태지(胎志), ‘명선공주지묘(明善公主之墓)’라고 쓰여 있다.
[현황]
명선공주 묘는 서삼릉 구역 내 왕자 왕녀 묘역에 있다.
[의의와 평가]
명선공주 묘는 조선 후기 매장 풍습과 함께 왕실의 장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전염병으로 생을 달리한 명선공주의 내력을 통해 조선의 질병사와 사회 연구에 참조할 만한 자료를 제공한다. 묘의 이전과 기록 등은 일제 강점기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학슬 증거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