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5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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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景文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산3-8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주홍 |
성격 |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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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원형 합장분|전방후원(前方後圓) |
관련인물 | 남경문 |
높이 | 2.3m |
지름 | 전면부 8.7m|좌우 8.9m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산3-8 |
소유자 | 의령남씨 충경공 종회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는 남경문의 묘.
[개설]
남경문은 여말 선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의령이며, 조선조 개국공신인 의령부원군(宜寧府院君) 남재(南在)의 아들이다. 장남은 충간공(忠簡公) 지(智), 차남은 간(簡), 3남은 조선 태종의 4녀 정선공주의 남편 소간공(昭簡公) 휘(暉)이다. 병조의랑을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나, 일찍 요절하여 약력이 자세하지 않다. 배위(配位) 숙녕택주(淑寧宅主) 온양방씨(溫陽方氏)는 참의 방순(方恂)의 딸이다.
[위치]
수정구 태평동 경원대학교 맞은편 분당~수서간 도시고속화도로와 인접하여 있는 의령남씨 선영에 위치한다. 남경문 묘는 의령남씨 묘역 왼편 구릉의 하단 동쪽에 안장되어 있다.
[형태]
묘소는 숙녕택주 온양방씨와의 합장묘로서 하단부 후면을 제외한 3면에 높이 40㎝, 너비 170㎝ 가량의 화강암제 장대석을 둘렀으며, 후면에는 활개를 대신하여 150㎝의 거리를 두고 높이 26㎝, 너비 240㎝ 가량의 화강암제 장대석을 2단으로 둘렀다. 봉분의 형태는 전방후원(前方後圓, 앞쪽은 사각형, 뒤쪽은 둥근 모양)인 고려묘제(高麗墓制)의 양식이다.
봉분의 앞면에 혼유석 1기, 상석 2기, 향로석 1기와 상석 좌우에 장명등 각 1기, 문인석, 무인석 각 2기, 묘갈 등 다수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이 중 머리에 관모를 쓰고 있는 문인석은 턱이 뾰족하며, 눈, 코, 입 등은 윤곽만 확인되고, 홀(笏)을 마주잡고 있는 두 손은 왜소하게 표현되어 있다. 무인석은 큰 눈과 코 및 안면 볼의 윤곽이 뚜렷하며, 턱 밑에는 수염이 나 있다. 또한 두 손은 복부에서 총길이 68㎝인 검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데, 검 끝이 지면을 향하고 있다.
[금석문]
봉분 우측의 묘갈은 비석의 비신 4면에 비문이 있다. 앞면에 세로 3줄로 ‘贈大匡輔國崇祿大夫領議政行奉正大夫兵曹議郞宜寧南公諱景文之墓 淑寧宅主溫陽方氏合葬(증대광보국숭록대부영의정행봉정대부병조의랑의령남공휘경문지묘 숙령택주온양방씨합장)’의 비문이 있다. 구갈이 왜소하고 훼손되어 1975년 의령남씨 의랑공파 종중에서 신묘갈을 건립하게 된 배경을 기록하고 있으며, 비문은 후손 남승우(南升祐), 남경우(南慶祐) 등이 짓고, 남봉우(南鳳祐)가 썼음을 밝히고 있다.
[현황]
남경문 묘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산3-8에 있는 의령남씨 묘역에 위치하며 의령남씨 충경공 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