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161 |
---|---|
한자 | 太平洞宜寧南氏墓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산3-8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주홍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는 의령남씨의 선영.
[개설]
고려 말에서 조선 전·후기에 걸쳐 이 지역에 세거하였던 의령남씨의 선영으로, 여말 선초의 문신이었던 남경문(南景文), 조선 전기에 충청도수군절도사를 지낸 남효원(南孝元)과 아들 남순민(南舜民),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남계하(南啓夏)와 그의 아들 남명우(南溟羽), 남명익(南溟翼) 등 6기의 묘소가 안장되어 있다.
[위치]
태평동 의령남씨 묘역은 복정동에서 수진동간 국도 3호선의 좌측, 경원대학교 맞은 편 분당~수서간 도시고속화도로와 인접한 구릉에 위치한다. 묘향은 대부분 북동향하고 있으며, 남명우 묘의 경우 유일하게 정남향이다.
[형태]
봉분의 형태는 남경문의 묘소만 전방후원(前方後圓, 앞쪽은 사각형이고 뒤쪽은 둥근 모양)인 고려묘제의 양식이고, 남명익의 묘는 원형 3품묘의 형태를 하고 있다. 나머지는 대부분 원형의 합장 혹은 쌍분이다. 석물은 대부분 원래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어 시대에 따른 석물의 시대 변천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석물은 대체로 단출한 편으로, 신도비와 묘갈을 갖춘 묘소는 없다.
[금석문]
봉분의 중앙 혹은 좌측에 세워져 있는 각 묘표는 대부분 비좌와 비신 월두의 단순한 형태이다. 그러나 남효원의 묘표의 경우 비좌와 일석(一石)의 비신 및 관석 형태로서 관석은 앞·뒷면에 가득히 화려한 운문을 조각하였는데, 특히 뒷면에는 관석 상부 중앙에 직경 14.5㎝의 태양을 상징하는 원문을 조각한 것이 매우 특이하다.
비신의 비문은 대부분 묘주의 사후 그의 아들, 손자, 외손자, 외중손 등이 나누어 비문을 짓고 썼으나, 조선 전기 오위장(五衛將)을 지낸 남순민의 묘표는 당대에 시문에 능하였던 송인(宋寅)이 비문을 찬하였다.
[현황]
태평동 의령남씨 묘역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산3-8에 위치하며, 의령남씨 충경공 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