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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구 판교동 지역 마을지 - 의생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209
한자 盆唐區板橋洞地域-誌-衣生活
지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이 지역 사람들의 옷차림은 인접한 지역과 차이가 별로 없었다. 보통 사람들은 무명옷을 입었고, 돈이 있는 사람들이나 모시옷 또는 비단옷을 입었다. 6.25 때만 해도 중의적삼에 바지저고리를 입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그것도 안팎으로 여러 차례 기운 옷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손님을 맞거나 제사를 지내거나 할 때면 어른들은 반드시 정장인 두루마기나 도포를 갖추어 입었다.

한편, 옷감의 재료인 목화나 베도 직접 심어서 자급자족하였다. 옥밭골밭에다 목화를 심어서 꽃이 피면 그걸 따고, 덜 핀 건 그냥 뽑아다가 양지쪽에 놓으면 전부 활짝 피게 된다. 그럼 씨아를 이용하여 전부 씨를 뺀다. 그리고 활을 이용하여 피면서 꼬치를 만드는 것이다. 물레로 실을 만들고 이것으로 무명을 짰다.

베는 논이나 수렁 같은 곳에다 심어서, 이것이 자라면 베어다가 개울물에 담궜다가 껍질을 분리해서 베를 짰다. 마약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일제 때는 베를 많이 재배한 기억이 있다.

양복은 1950년대 중반에 교복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쉽게 헤지기 때문에 3년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해방 직후까지 신발은 거의 짚신이었다. 심지어 학교에서도 짚신을 삼았으며 겨울철인 1.4후퇴 때에도 짚신을 신고 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남양군도로부터 고무를 들여와 고무신을 신어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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