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9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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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鍾燁 |
이칭/별칭 | 조상엽(曺相燁)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서해숙 |
출생 시기/일시 | 1876년 - 조종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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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42년 - 조종엽 사망 |
출생지 | 조상엽 출생지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
거주|이주지 | 조상엽 거주지 - 전라남도 화순군 |
활동지 | 조상엽 활동지 - 전라남도 화순군 |
성격 | 국악인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능주 신청 대방 |
[정의]
근대 화순 출신의 국악인.
[활동 사항]
조종엽(曺鍾燁)[1876~1942]은 일명 ‘조상엽’, ‘조상언’이라고도 불렸다. 형 조종률과 함께 고종(高宗) 황제 앞에서 줄을 타 의관이란 벼슬을 하사받은 줄타기의 명수였다. 능주 신청(神廳)의 우두머리인 대방(大房)을 지냈는데, 당대 최고의 고수였으며 승무로도 명성이 높았다.
주로 한양을 무대로 줄을 탔던 조종엽은 임금으로부터 하사 받은 가죽신이 밑에 구슬이 박혀 걸을 때마다 ’떼깔‘하고 소리가 나서 ’조떼깔’이란 별호로도 불렸다. 또한 신청의 마지막 지킴이로 일제 강점기이던 1924년 능주 장날에 맨상투 차림으로 흰 두루마기를 입고 장에 나갔는데 일본 순사가 상투를 자르라고 손으로 흔들고 두루마기에 먹물을 뿌리는 수모를 당했다. 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그는 마당에 거적을 깔고 물 한 그릇을 떠 놓고 절을 한 다음 가위로 상투를 잘랐다. 잘린 상투를 부여잡고 한없이 울었다.
결국 나라가 망하자 신청에 모셔둔 봉안을 모두 싸들고 능주 ‘영벽정’ 아래 강가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감에 울면서 봉안을 불태워 버렸다. 봉안을 모두 태우고 집에 돌아 온 조종엽은 마당에 거적을 깔고 몇날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묘소]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수박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