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내리의 대표적 유적으로는 풍덕마을의 서남쪽에 있는 토계원지이다. 토계원은 대소원과 용원으로 통하는 중간지점에 설치되어 모도원으로 이어지는 영남대로 상에 위치하였다. 지금은 논으로 변한 사갑들 앞의 들 가운데 어디쯤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옛날에는 원이 있는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이 마을이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수년 전 농경지 정리사업...
제내리에 전해오는 대표적인 금석문으로는 풍덕마을의 동쪽 언덕인 제내리 353번지에 입향조 이덕량의 장남인 이정지(李廷芝)의 묘와 묘역 입구에 묘비가 있다. 묘역은 넓고 여러 기의 묘가 있다. 이정지의 묘는 가장 상부에 있으며 10여 평의 규모에 상석과 망주석이 있다. 묘비는 묘역으로 진입하는 입구인 마을쪽 언덕 위에 있으며 비각을 세우고 있어 이채롭다. 비석의 총 높이는...
여기에 소개되는 고문서류는 풍덕마을의 방호3파인 이충배(李忠培) 씨의 댁에 있는 자료들이다. 이복영·이충배 씨는 숙종 때 벼슬을 한 이진항의 후손으로 이진항(李震恒)이 받은 7점의 교지와 1점의 점령을 소장하고 있다. 고문서류 외에 호패·화살통·화살집·가죽으로 만든 인궤(印櫃) 등이 있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벼슬·시호·자격·토지·노비 등을 내려주는 사령의 문서를 말한다. 문무관...
제내리의 풍덕마을에는 과거 72동의 주거 가옥이 있었다. 이중 목조가옥이 9동, 토담집이 3동, 흙벽돌집이 40동으로 전통성을 지닌 가옥이 52동이나 되었다. 나머지 20동은 17동의 시멘트벽돌 가옥과 3동의 조립식인 현대식 주거 건물이었다. 그 중 전통성 있다고 생각되는 50여 동의 건축물 중 건축학적 및 보존적 차원에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이민재의 목조가옥과 이희...
제내리에는 마을에 다음과 같은 풍덕전거(豊德奠居)가 전해지고 있다. 마을 개척자인 이덕량이 방죽안을 개척하여 성동·대촌·풍덕의 세 마을에 터를 닦아 세 아들에게 각기 나누어 장남은 성동에, 차남은 대촌에, 그리고 막내는 자신이 자리 잡은 풍덕에 살게 하였다. 그런데 이덕량은 막내를 제일 귀여워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가장 좋은 터를 잡아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여 풍수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