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907
한자 金在明
이칭/별칭 회현(晦賢),일산(一山)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대산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배병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2년연표보기 - 김재명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김재명 파리 장서 운동 서명
몰년 시기/일시 1923년연표보기 - 김재명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 - 파리 장서비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김재명 건국 포장 추서
출생지 김재명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대산리
거주|이주지 김재명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대산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자
대표 경력 파리 장서 서명자

[정의]

일제 강점기 거창군 남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재명(金在明)[1852~1923]의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회현(晦賢), 호는 일산(一山)이다.

[활동 사항]

김재명은 한말과 일제 강점기 초에 활동하였던 거창 지역 유생으로, 장복추(張福樞)에게서 배웠다. 경북 예천 출신의 장복추는 81세 때 거창군 가조면으로 이주하여 이진상(李震相) 학맥과도 빈번히 교류하였다. 따라서 김재명곽종석(郭鍾錫)은 그 학맥에 있어 깊은 유대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김재명은 1919년 곽종석과 그 문인들이 쓴 독립 청원서[파리 장서]에 거창 지역 유림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전국의 유림 대표 137인의 서명을 받은 이 청원서를 파리 평화 회의에 제출하기 위해 김창숙(金昌淑)이 상하이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김창숙은 직접 파리로 가는 대신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의 대표로 파리에 파견된 김규식(金奎植)에게 송달하여 제출케 하였다. 이른바 ‘파리 장서 운동’이다. 이로 인해 청원서에 서명한 유생들이 대거 검거되어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저술 및 작품]

김재명은 거창 지역의 대표적 유학자 윤주하(尹胄夏)의 문집인 『교우 문집(膠宇文集)』(1911)을 만들 때 교정 작업에 참여하였다. 거창군 남하면윤주하이진상의 문인으로 곽종석과 동문이었고, 장복추에게서도 가르침을 받았다. 장복추의 문인인 김재명도 이러한 인연으로 윤주하와 학문적 교류가 있었고, 유고 출간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상훈과 추모]

파리 장서 운동에 참여한 공훈이 인정되어 1995년 김재명에게 건국 포장이 수여되었다. 파리 장서의 발상지인 거창에서는 1977년 거창읍 상림리 옛 침류정 자리에 ‘파리 장서비’를 세워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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