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선생문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632
한자 桐溪先生文集
영어공식명칭 Donggye seonsaeng munjip|A Collection of Donggye's Works
이칭/별칭 동계집(桐溪集),동계 문집(桐溪 文集),정온 선생 문집(鄭蘊 先生 文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상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660년연표보기 - 『동계선생문집』 정기수(鄭岐壽)가 초간본 간행
제작 시기/일시 1852년 - 『동계선생문집』 중간본 간행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3년 - 『동계선생문집』 표점 영인본 간행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3년 - 『동계선생문집』 영인본 간행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7년 1월 30일 - 정온 문집 책판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321호로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0년~2004년 - 『동계선생문집』, 『국역 동계집』1~3권으로 발행
현 소장처 국립 중앙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산60-1
현 소장처 경상 대학교 도서관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900
성격 문집
작가 정온(鄭蘊)

[정의]

1660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출신 조선 시대 문신 정온의 문집.

[개설]

정온(鄭蘊)[1569.2.6~1641.6.21]의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棟溪)·고고자(鼓鼓子),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할아버지 정숙(鄭淑)이 현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에 이거하여 정착하였다. 아버지는 진사 정유명(鄭惟明)이고, 어머니 진주 강씨(晉州姜氏)는 강근우(姜謹友)의 딸이다. 외숙부 강익(姜翼)조식(曺植)의 제자이다.

8세에 아버지 정유명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15세에 아버지의 스승인 임훈(林薰)에게 배웠으며, 21세에 이황(李滉)의 고제자인 조목(趙穆)에게 수학하였다. 1604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0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계속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어가(御駕)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1637년 1월에 남한산성이 포위된 가운데, 화의를 반대하고 화의를 주선한 최명길(崔鳴吉)을 죄줄 것을 요청하였다. 인조가 남한산성을 나가 항복하려는 데 대한 논의가 결정되자, 정온은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생명은 끊어지지 않았다. 인조의 어가가 항복하기 위해 성을 나가자 인조에게 하직하고, 1637년 2월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1638년 덕유산 남쪽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모리(某里)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묘소는 거창군 가북면 용산리에 있다. 1642년 3월에 용문 서원(龍門書院)과 남계 서원(濫溪書院) 별사(別祠)에 배향되었다. 1652년에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고, 1657년에는 문간(文簡)이라는 시호가 내렸다. 1694년에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 좌찬성에 증직하였다. 저서로 『동계선생문집(桐溪先生文集)』이 있다.

[형태 및 구성]

『동계선생문집』의 초간본은 원집 4권과 부록 2권 등 합 5책의 목판본이며, 1660년 정기수(鄭岐壽)가 간행하였다. 책의 크기는 반곽(半郭)[글이 담긴 테두리 안쪽 면]이 17.9×15.3㎝이고, 광곽(匡廓)[판의 사주를 둘러싼 검은 선]은 31.4×21.6㎝이다. 사주 쌍변(四周雙邊)[지면의 네 둘레를 두 개의 선으로 돌림]이며, 어미는 상하 화문어미(上下花紋魚尾)[물고기 꼬리 모양의 어미가 위아래로 있으며, 어미 부분에 화문이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각 면은 9행 19자로 되어 있고, 각 행 사이에 경계선이 있다.

『동계선생문집』의 중간본은 원집 4권, 속집 3권, 부록 2권, 연보 등 모두 9책으로 된 목판본이며, 1852년 간행되었다. 표제는 ‘동계집(桐溪集)’으로 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반곽이 17㎝×23㎝이고, 광곽은 22.5㎝×33㎝이다. 사주 단변이며, 어미는 상 화문 어미(上花紋魚尾)이다. 각 면은 10행 20자로 되어 있다.

원집은 허목(許穆)조경(趙絅)의 초간 서발과 정홍경(鄭鴻慶)의 중간서(重刊序)가 실려 있고, 목차는 없다. 권1에는 시 348제(題) 421수가 실려 있다. 권2에는 기(記) 5편, 설(說) 1편, 서(序) 11편, 발(跋) 1편, 문(文) 2편, 제문 2편, 전(傳) 2편, 논(論) 4편, 서(書) 9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모리구소기(某里鳩巢記)」는 병자호란이 끝나 남한산성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뒤 자신이 거처할 지역으로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모리(某里)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서술한 글이다. 중국의 현인인 소보(巢父), 사호(四皓), 자릉(子陵) 등이 말년의 거처를 각각 기산(箕山), 상산(商山), 동강(桐江)에 정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전제한 뒤, 오랑캐에게 항복한 자신은 부끄럽기 때문에 자신의 거처를 그냥 ‘모리(某里)’[청나라의 영향권에 들어간 조선의 영토에 포함되지 않은 정해진 이름이 없는 땅이라는 의미]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권3에는 소(疏), 차(箚), 계(啓) 26편, 행장 3편이, 권4에는 비명(碑銘) 4편, 묘갈명 8편, 묘지명 9편, 습유(拾遺), 발문 1편이 있다.

속집 권1에는 시 169제 182수가 있고, 부(賦) 6편, 서(書) 20편, 소차(疏箚) 7편이 수록되어 있고, 보유에 시 1수, 속집 발문이 있다. 이 발문을 통해, 속집 권1을 완성된 권으로 편집한 뒤 나중에 다시 속집 권2를 편집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속집 권2에는 전 5편, 기 1편, 서(序) 2편, 제문 2편, 행장 1편, 묘갈명 2편, 부록으로 만시 14편, 제문 32편이 실려 있다. 속집 권3 부록에는 사제문(賜祭文), 기문, 봉안문 등 정온 사후에 지어진 문자들이다.

부록 권1에는 허목이 지은 동계행장과 조경이 지은 동계시장(棟溪諡狀)이 수록되어 있고, 부록 권2에는 교서(敎書), 사제문, 봉안문, 만시 등이 실려 있다.

1993년에 민족 문화 추진회와 경인 문화사에서 중간본을 저본으로 하여 영인본을 간행하였다. 또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민족 문화 추진회에서 중간본을 저본으로 하여 『국역 동계집』 1~3권을 발행하였다. 한편, 1997년 1월 30일에는 정온 선생 문집 책판(鄭蘊 先生 文集 冊板)이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32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초간본과 중간본이 국립 중앙 도서관에, 중간본이 경상 대학교 도서관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동계선생문집』정온의 학문과 사상, 역사 의식과 정치관 등 제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문집이다. 『동계선생문집』 속에는 16~17세기에 발생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기록한 작품이 많고, 한양은 물론 거창 지역의 비중 있는 인물들과 주고받은 시와 편지, 상소문, 서발문 등이 다수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거창 지역에서 정온의 활약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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