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580
한자 六月抗爭
영어공식명칭 June Democracy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용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개 시기/일시 1987년 6월 10일연표보기~1987년 6월 26일연표보기 - 6월항쟁, 거창 시내 시위 전개
발생|시작 시기/일시 1987년 - 6월항쟁 시작
종결 시기/일시 1987년 - 6월항쟁 종결
발생|시작 장소 민주 헌법 쟁취 국민 운동 본부 거창 지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 지도보기
종결 장소 거창읍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성격 민주화 운동
관련 인물/단체 민주 헌법 쟁취 국민 운동 본부 거창 지부

[정의]

1987년 6월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서 전개된 민주화 운동.

[개설]

1987년 6월항쟁 당시 거창군민은 군 단위로서는 두드러지게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 거창에서 6월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된 데는 1980년대 정찬용, 표만수, 유성일 등 선구적인 인물들에 의해서 거창 YMCA, 거창군 농민회 등 사회 민주 단체들이 결성되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데 기인한다. 또한 천주교의 거창 성당, 개신교의 갈릴리 교회 등 기독교 세력도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단체들은 1986년 KBS 시청료 거부 운동,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추모 기도회, 농가 부채 해결 요구 등을 함께하면서 상호간의 연대 의식이 강화되었다.

거창의 6월항쟁 중심에는 민주 헌법 쟁취 국민운동 본부[국본] 거창 지부가 있었다. 1987년 5월 27일 거창군 농민회장 표만수, 갈릴리 교회 목사 유성일 등이 서울 향린 교회에서 열린 국본 결성식에 참석한 후 6월 초 국본 거창 지부가 조직되었다. 국본 거창 지부는 거창 YMCA, 아림 민주 협의회, 거창 천주 교회, 거창군 농민회, 갈릴리 교회 등 5개 단체로 구성되었다. 공동 대표는 각 참여 단체의 대표로 정찬용[총무], 이상모[약사], 이은진[신부], 표만수[농민], 유성일[목사]가 맡았으며, 집행 위원회는 유성일을 집행 위원장으로 한대수, 정신화, 박환영 등으로 조직되었다. 국본 거창 지부는 거창 YMCA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6월항쟁을 준비하였다.

거창의 6월항쟁에는 다양한 단체와 사람들이 참가하였다. 통일 민주당 거창 지구당, 아림 민주 협의회, 민주 산악회 등 정치 단체뿐만 아니라 거창군 농민회, 가톨릭 농민회 등의 농민 단체, 그리고 거창 YMCA 등 시민 단체, 거창 성당과 갈릴리 교회 등 종교 단체의 소속 회원들과 거창 지역의 교사와 학생, 자영업자와 여성들도 동참했다. 이 운동은 1980년대 거창 지역 사회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이었다. 이후 이 운동의 주체 세력들은 공정 선거 감시단 활동, 부정 선거 규탄 대회를 전개하였으며 새로운 시민 사회 단체를 결성해 나갔다.

[역사적 배경]

제5 공화국의 군사 독재와 4·13 호헌 조치, 이에 저항했던 1987년 전국적인 6월항쟁, 그리고 1970년대 후반 이후 성장한 지역의 민주화 운동 세력이 거창 지역 6월항쟁의 기반이 되었다.

[경과]

1987년 6월 거창의 시민 사회 단체가 중심이 되어 민주 헌법 쟁취 국민운동 본부 거창 지부를 조직한 후 계획에 따라 몇 차례 시위를 전개했다. 그 중 6·10 대회와 6·23 대회가 대표적 시위였다.

6·10 대회는 관료와 경찰의 집요한 방해를 받았다. 대회 전날 거창군청과 각 면사무소, 경찰서와 지서, 농협, 농촌 지도소 직원들은 5~6명씩 조를 짜서 각 단체의 회원들을 감시하였다. 이들은 밤새 감시 활동을 벌였고 심지어 대회 당일 대회에 참가하려는 농민들을 납치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런 감시 속에서도 한 농민은 "독재 정권이 거꾸러지고 민주화된 세상이 오지 않으면 농민도 잘살 수 없다."며 낫을 들고 나가 공무원들의 방해를 뿌리치고 행사에 참가하기도 했다.

6·10 대회에는 6월 10일 오후 6시경 거창 시민 수백 명이 참가하여 선언문을 낭독하고 시가행진을 벌였다. 6·26 대회도 같은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6월 26일 오후 6시경 거창읍 중앙리 민주당사 앞에서 시민 수백 명이 모여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들은 “호헌 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며 1시간 20분 간 시가행진을 벌였다. 이때 가두에 있던 시민들이 박수를 보내기도 했으며 시위대가 지나갈 때 건물 안에 있던 시민들이 나와 함께 구호를 외치기도 하였다. 거창의 6월항쟁은 모두 평화 시위로 진행되었다.

[결과]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민주 헌법을 쟁취하였다.

[의의와 평가]

거창 지역에서 일어난 최대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으로 이후 거창 지역의 시민운동과 사회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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