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헌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489
한자 竹軒集
영어공식명칭 Jukheonjip
이칭/별칭 죽헌 선생 문집(竹軒 先生 文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태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504년연표보기~1582년연표보기 - 『죽헌집』 조숙이 저술
간행 시기/일시 1950년연표보기 - 『죽헌집』 간행
소장처 거창 박물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김천리 216-5 지도보기
성격 문집
저자 조숙(曺淑)
권책 4권 1책
권수제 죽헌선생문집(竹軒先生文集)
판심제 죽헌선생문집(竹軒先生文集)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 조선 전기 문신인 조숙의 문집.

[저자]

조숙(曺淑)[1504~1582]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휘는 숙(淑), 자는 선경(善卿), 호는 죽헌(竹軒)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현신 교위(顯信 校尉) 조승노(曺承老)이며 문행(文行)으로 훈도(訓導)가 되었다. 어머니는 강양(江陽) 이계보(李季寶)의 딸이다. 석천(石泉) 임득번(林得蕃)에게 수학하면서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문하에 들어가 임훈임운, 이후백, 정유길, 정유명 등 거창 지역의 여러 학자들과 교유하였으며, 퇴계 이황과도 교분이 있었다. 또한 김인후조숙에게 『소학(小學)』을 학문의 근본으로 할 것을 일러주었는데 실천적 유학의 맥락을 계승한 것이다. 1531년(중종 26)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고, 1540년(중종 30)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承文院 正字)가 되었다. 이후 예조 좌랑(禮曹佐郞), 성균관 사예(成均館司藝),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사간원 헌납(司諫院獻納) 등을 지내고, 광양 현감(光陽縣監)이 되어 향읍을 교도하는 치적을 남겼다. 또한 흥양(興陽), 영암(靈巖), 광주(光州)의 수령(守令)을 거쳤다. 선조 때 통정대부(通政大夫) 회양 부사(淮陽府使)가 되었다가, 임천(林泉)에 은퇴하여 성리학의 연구에 전념하였다. 저서로 4권 1책의 『죽헌집(竹軒集)』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처음 『죽헌집』의 서문을 쓴 사람은 임우동(林宇棟)으로 그 연도가 1681년이다. 이후 1741년에 조응택(曺應澤)이 쓴 후지(後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 이미 문집을 발간할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34년에 조영래(曺榮來)가 다시 서문을 쓰고 하겸진(河謙鎭)·유해엽(柳海曄)·조수환(曺受煥) 등이 발(跋)을 쓴 것으로 보아 1934년에 본격적으로 발간을 시작했고 나중에 1950년에 조기석(曺基碩)의 발(跋)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1950년에 최종본이 발간된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죽헌집』은 4권 1책으로, 목판본이다.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와 판심제(版心題)[책장의 가운데 접힌 곳인 판심에 표시된 책의 이름]는 ‘죽헌선생문집(竹軒先生文集)’이다.

[구성/내용]

『죽헌집』은 권1과 권2에 시가 있는데 자경시(自警詩)에서는 군자의 마음가짐과 경계할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갈천 임훈과 화답한 시에서는 벼슬에 초월한 선비의 모습이 또렷이 드러난다. 권3 상소문 중 「걸귀소(乞歸疏)」에서는 어린 군주에게 자신의 정치 철학, 즉 백성을 근본으로 하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며 충신[조광조]을 선양할 것을 강조하여 선정을 도우려 하였다. 또한 과거 시험 문제로 보이는 책제(策題)에서는 문자의 기원과 연원 등이 문명에 끼친 영향과 정치, 외교, 언로 등을 진작할 방책 등을 묻고 그것을 사기와 같은 역사서에 근거하여 답하라는 문제를 제출하였다. 이 외에도 제문, 기문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죽헌집』조숙 생존 당시 거창 지역 유학의 흐름과 경향을 면밀하게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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