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831
한자 曺淑
영어공식명칭 Cho Suk
이칭/별칭 선경(善卿),죽헌(竹軒)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04년연표보기 - 조숙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31년 - 조숙 생원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31년 - 조숙 진사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40년 - 조숙 문과 식년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42년 - 조숙 성균관 전적 임명
활동 시기/일시 1553년 - 조숙 호조 정랑 임명
활동 시기/일시 1555년 - 조숙 흥양 현감 부임
활동 시기/일시 1557년 - 조숙 광양 현감 부임
활동 시기/일시 1559년 - 조숙 낙안 군수 부임
활동 시기/일시 1561년 - 조숙 영암 군수 부임
활동 시기/일시 1564년 - 조숙 광주 목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568년 - 조숙 풍기 군수 부임
활동 시기/일시 1573년 - 조숙 회양 부사 임명
몰년 시기/일시 1582년연표보기 - 조숙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80년 - 조숙 학림 서원 배향
추모 시기/일시 1783년 - 조숙 정충사 배향
출생지 조숙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거주|이주지 조숙 낙향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거주|이주지 조숙 강학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거주|이주지 조숙 이주지 - 전라남도 순천시
묘소|단소 조숙 묘소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사당|배향지 학림 서원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정충사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모동리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창녕
대표 관직|경력 광주 목사

[정의]

조선 전기 거창 출신의 문신.

[가계]

조숙(曺淑)[1504~1582]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선경(善卿), 호(號)는 죽헌(竹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판서(判書)를 지낸 조중인(曺仲仁), 할아버지는 전력부위(展力副尉) 조정(曺禎)이다. 아버지는 훈도(訓導)를 지낸 조승로(曺承老)이고, 어머니는 이계보(李季寶)의 딸 강양 이씨(江陽李氏)이다. 조숙의 첫 번째 부인은 부사(府使)를 지낸 이지(李芝)의 딸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며, 두 번째 부인도 전주 이씨다. 조숙의 증조할아버지 조중인 대에 처음으로 경상도 안음현 황산(黃山)[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정착하였다.

[활동 사항]

조숙은 1504년(연산군 10) 경상도 안음현 황산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 고모부 이연(李蓮)에게 학문을 배웠다. 아버지가 병상에 있을 때는 밤낮으로 간호하였으며, 돌아가신 후에는 삼년상을 정성껏 치러 고을 사람들이 조숙의 효성을 칭송했다고 한다. 이후 조숙임득번(林得蕃)김인후(金麟厚)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1531년(중종 26) 생원시(生員試)와 진사시(進士試)에 모두 급제하였고, 1540년(중종 35)에는 문과(文科) 식년시(式年試)에 급제하였다. 이후 관직에 나아가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저작(著作)·박사(博士)·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봉상시 직장(奉常寺直長)을 지냈다. 1542년(중종 37)에는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에 임명되었고, 이어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장악원 첨정(掌樂院僉正)을 역임하였다.

1543년(중종 38)에는 안음현의 사락정(四樂亭)[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영승리 소재]에 찾아온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함께 학문을 강론하였다. 이후 조숙은 예조 좌랑(禮曹佐郞)과 성균관 사예(成均館司藝)를 지냈으며, 1549년(명종 4)에는 임금의 명을 받들어 전라도의 선비들을 시사(試士)하였다. 전라도에서 돌아온 후에는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교리(校理)·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사간원 헌납(司諫院獻納)에 임명되었다. 이후 광양 현감(光陽縣監)으로 부임하였다.

1553년(명종 8) 호조 정랑(戶曹正郞)에 임명되었고, 이어 사복시 첨정(司僕寺僉正)을 거쳐 1555년(명종 10)에는 흥양현감(興陽縣監)으로 부임하였다. 이때 흥양현의 백성들이 조숙의 덕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를 건립했다고 한다. 1557년(명종 12) 다시 광양현감으로 부임하였으며, 1559년(명종 14) 낙안군수(樂安郡守), 1561(명종 16) 영암군수(靈巖郡守), 1564년(명종 19) 광주목사(光州牧使)로 부임하였다.

선조가 즉위한 이후에는 이조 좌랑(吏曹佐郞)과 홍문관 전한(弘文館典翰)에 임명되었다. 이때 조숙조광조(趙光祖)의 증전(贈典)을 청원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1568년(선조 1)에는 풍기 군수(豊基郡守)로 부임하였다.

1573년(선조 6) 선조가 경회루(慶會樓)에서 문신을 대상으로 친시(親試)를 거행하였다. 이때 선조조숙이 올린 시를 보고 가상히 여겨, 술을 하사하고 정랑(正郞)에 임명하였다. 이어 통정대부(通政大夫)로 품계를 올려 주었으며, 회양 부사(淮陽府使)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노환을 이유로 고향 임천(林泉)[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으로 내려왔으며, 이후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이어 정안(靜安)[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재실을 짓고 성리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만년에는 전라도 낙안군(樂安郡)에 머물렀으며, 1582년(선조 15)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조숙은 학문 연구와 관직 생활을 하면서, 이황을 비롯해 노수신(盧守愼)·이후백(李後白)·정유길·이윤경(李潤慶)·소세양(蘇世讓)·임억령(林億齡)·정사룡(鄭士龍)·임훈(林薰)·임운(林芸)·신권(愼權)·정유명(鄭惟明) 등 당대의 여러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저술]

조숙의 문집으로는 4권 1책의 『죽헌집(竹軒集)』이 전한다.

[묘소]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정안동(靜安洞)조숙의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조숙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학림 서원(鶴林書院)과 거창군 위천면 모동리에 있는 정충사(靖忠祠)에 배향되어 있다. 학림 서원은 1780년(정조 4) 건립되었으며, 조숙을 비롯해 권시민(權時敏)·강위용(姜渭龍)·유세홍(柳世泓)·곽인(郭訒)·우석일(禹錫一)을 배향한 서원이다. 1783년(정조 7) 건립된 정충사에는 조숙정구(鄭矩)·김문기(金文起)·조학(趙謔)·신복행(愼復行)·정유문(鄭惟文)과 함께 배향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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