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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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출신 조선 후기 학자 신필희의 문집. 신필희(愼必嬉)[1771~1835]는 어려서는 집안에서 가학(家學)으로 학문을 배웠고, 나이가 들어서는 오촌(鰲村) 송치규(宋穉圭)에게서 학문을 배워 이이, 김장생의 학문을 계승하였다. 성격이 소탈하고 분방하여 음식이나 의복에 구애받지 않았고 일생 동안 학문 탐구에 힘썼다. 특히 예서(禮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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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당 정종주가 1614년에 건립한 건물로 멸실되었다가 1786년에 중건된 가옥. 거창 만월당의 정면 동편에 ‘만월당’이라는 편액 외에도 정면 서편에 ‘팔완당’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만월당은 정종주(鄭宗周)[1573~1653]가 현재의 자리에 건립하였지만 팔완당은 만월당의 조부인 팔완당 정몽서(鄭夢瑞)가 16세기 중엽에 건립한 건물로 건립 장소는 현재의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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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민 유격대의 경상남도 조직으로 거창 지역에서 활동한 북한 인민군의 배후 부대. 1950년 9월 인천 상륙 작전 성공 후 인민군 후퇴 과정에서 낙오병과 토착 좌익 세력이, 9월 29일 경상남도 인민 유격대를 결성했다. 경상남도 인민 유격대는 지리산, 덕유산을 중심으로 1950~1951년에 주로 활동했으며 1954년 10월에 완전히 토벌되었다. 1950년 9월 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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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체결 후 덕유산을 근거지로 거창 등지에서 일제와 맞써 싸운 의병 부대. 을사늑약 체결 후 덕유산을 배경으로 경상남도과 전라북도, 충청북도 접경 지대에서 활약한 의병 부대로, 김동신과 문태수 의병 부대가 대표적이다. 러일 전쟁과 을사늑약의 체결로 이어지는 일제의 국권 침탈이 가속화되자 이에 반대하는 의병이 전국적으로 크게 일어났다. 거창 등의 경상남도 서부 지역에서는 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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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 세워졌던 서원. 1703년(숙종 29)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1606~167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성천 서원(星川書院)은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해 왔다. 1868년(고종 5)에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다. 동춘당 송준길은 율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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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영승리 뒷산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황고 신수이를 기리는 신도비. 황고(黃皐) 신수이(愼守彛)[1688~1768]는 영조 대의 학자로 거창 신씨 가문의 후손이다. 요수(樂水) 신권(愼權)의 5세손으로 도암(陶庵) 이재(李縡)의 문하에 출입하여 학문을 닦았고, 여덟 권의 문집을 남겼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戊申亂] 때 안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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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체결 후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를 근거지로 활약한 항일 의병. 을사늑약 체결 후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서 조직되어 덕유산 의병과 함께 일본군 및 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거창의 대표적인 지역 의병이다. 을사늑약 체결 후 이에 반대하는 의병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무렵인 1906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서 오일선(吳馹善)을 중심으로 김성진(金成鎭),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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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에 속한 법정리. 월성리(月星里)는 경상남도 거창군 최북서단에 자리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전라북도 무주군, 북서쪽과 서쪽으로는 전라북도 장수군과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거창군 위천면, 동쪽으로는 거창군 북상면 산수리와 창선리에 접해 있다. 월성리 내에 황점 마을과 놀골 마을, 월성 마을, 심동 마을 등 4개 마을이 있다. 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