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2월에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결성된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의 거창 지역 농민 운동 조직. 거창 농민 조합은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 산하의 대중 조직으로 결성되어 거창 지역 농민들의 토지 문제와 신국가 건설 등에 대한 요구 사항을 대변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해방 직후 토지 개혁과 소작료 3·7제 실시, 양곡 수집령 반대 등의 당면한 문제를 거창 지역...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단체. 1924년 결성된 조선 청년 총동맹은 1927년 6월 집회 위원회에서 방향 전환하여 무산 청년 운동을 전 민족 청년 운동으로 전선을 확대하기로 결의하였다. 신운동 방침으로 종전의 청년 단체를 해체하고 전 청년을 포괄하는 군·부 청년 동맹을 조직하기로 하여 군·부 동맹 및 도 연맹의 강령과 규약을 통일하였다. 군·부 청년 동맹의...
1895년부터 1945년까지 국권 회복을 위해 거창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운동으로 의병 운동, 3·1 만세 운동, 파리 장서 운동, 민중 운동 등 민족운동. 을미사변 이후 전국에는 항일 의병 항쟁이 전개되었다. 1896년 1월 8일 진주성 점령에 참여했던 거창 출신의 노응규 부대의 참전으로 시작된 경상도와 전라도, 덕유산 일대에서는 일본 군대에 저항하는 의병 운동이 일어났다. 거창...
1910년~1945년 일제의 식민 통치와 거창 지역민의 대응, 지역 사회 변천사. 거창의 역사에서 일제강점기는 중세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중요한 시기로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때였다. 당시 대다수의 지역민들은 정치적 자유는 물론이고 생존권까지 위협당해 절대 빈곤의 상태에 빠졌다. 해방 전까지 거창 전체 인구 중 30% 이상의 주민이 해외로 이주해야 했던 사실은 이를 상...
일제 강점기 거창 지역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사회 변혁 운동. 거창의 청년 운동은 1919년 3·1 운동 이후 활발히 전개되었다. 1920년대 초반 청년 운동은 주로 지식인층이 주도하는 문화 계몽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1920년 거창 지역도 마찬가지로 지역 지식인들과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300여 명이 모여 청년회를 결성하였다. 가장 먼저 확인되는 청년회는...
일제 강점기 거창에서 청년 운동, 신간회 운동을 벌였던 해방 직후 거창 경찰서장. 황창석(黃昌錫)[?~?]은 거창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웅변에 능한 농촌 계몽 사상가로서 거창 청년 운동의 중심 인물로 부각되었다. 1927년 4월 30일 오후 9시 거창 청년 회관에서 개최된 동아 일보 사옥 낙성 기념 동아 일보 거창 지국 현상 웅변 대회에서 “민중아, 농촌으로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