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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1287
한자 皐鶴里
영어공식명칭 Goha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고학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홍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고학리 개설
성격 법정리
면적 10.28㎢
가구수 143세대
인구[남/여] 272명[남자 135명, 여자 137명]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고학리(皐鶴里)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병항리, 고신리, 고대리 등 3개의 행정리와 병항(柄項), 고신(皐新), 고대(皐大), 상촌(上村)의 4개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명칭 유래]

‘고학(皐鶴)’은 높은 언덕이며 풍수설의 산세 모양에서 높을 ‘고(皐)’ 자와 새 ‘학(鶴)’ 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병항 마을은 마을 동쪽 당봉에 있는 자라 바위와 서쪽의 자라 바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중앙의 목넘 고개에 있으므로 자라목이라 하다가 일제 강점기 때 병항으로 고쳤다. 고신 마을은 띠말리촌에 해주 오씨가 살기 시작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나 땅이 높고 경사가 급하여 불편하고, 산사태로 바위가 무너져 위태로워지자 지금의 마을 자리로 옮긴 후, 고학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에서 고신이 되었다. 상촌은 고학리에서 가장 위쪽에 위치하여 상촌이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고학리는 757년(신라 경덕왕 16)까지 마리(馬利)라 일컫는 지역의 일부로 조선 시대에는 안음현·안의현의 남리면 소재지가 있었던 곳이다. 본래 안의군 남리면 지역으로 고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안의군 고대동과 고신동 일부를 병합하여 고학리라고 부르고 거창군 마리면에 편입되어 지금의 고학리가 되었다.

고대 마을은 옛부터 큰 마을이라고 불렸던 곳으로 삼국 초기부터 200여 년간 마리현의 치소가 위치하여 ‘마리[머리: 首]’라고 하는 명칭이 처음으로 불렸던 곳으로 전하고 있다.

[자연환경]

고학리기백산 남동쪽의 큰 골짜기에 위치해 있는데, 마을이 있는 해발 고도는 330~370m 내외로 마리면의 다른 자연 마을보다 높다. 고학리는 서쪽으로 함양군 안의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동쪽으로는 마리면 월계리·말흘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고학리의 가운데는 기백산에서부터 시작된 마리천이 마을을 관통하여 남동쪽으로 흘러나가고 있으며, 마리천 주변에는 골짜기를 개간하여 만든 크고 작은 농경지가 분포하고 있다.

[현황]

2015년 12월 현재 면적은 10.28㎢인데 대부분이 임야 8.36㎢이며, 논 0.92㎢, 밭 0.34㎢, 과수원 0.01㎢ 등의 경지 면적은 협소하다. 인구는 2016년 4월 30일 현재 총 143세대, 272명[남자 135명, 여자 137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고,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마리면 소재지에서 안의면 소재지로 이어지는 국도 3호선이 지나간다. 주요 문화 유산으로는 충효비인 청주 한씨·오유모 정려, 이도조·벽조 형제 정려, 밀양 박씨 행적비와 선정비로 시혜 불망비가 있으며 구화재, 학산재, 추모재, 동림재, 덕남재, 자화재 등의 재실이 있다. 병항 마을 입구 개울가에 있는 용원정과 용원정 앞에 높여 있는 돌다리인 쌀다리도 유명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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