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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913
한자 居陀知
영어공식명칭 Geotaji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군인
성별

[정의]

남북국 시대 거창 출신으로 추정하고 있는 신라의 군인.

[활동 사항]

거타지(居陀知)와 관련된 이야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 제2 ‘진성 여대왕 거타지(眞聖女大王居陀知)’에 수록되어 있다. 이를 대략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라 제51대 진성 여왕[재위 887~897] 대에 왕의 막내 아들 아찬(阿湌) 양패(良貝)가 사신으로 당나라로 가게 되었다. 거타지는 양패를 호위하기 위해 따라갔던 궁사 50명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항해 도중 곡도(鵠島)에서 풍랑을 만나 십여 일 동안 머무르게 되어, 사람을 시켜 점을 치게 하였다. 그 결과 섬에 있는 신지(神池)[귀신의 못]에서 제사를 지내야 된다는 점괘가 나왔다. 양패 일행이 신지에서 제사를 지내자 물이 솟아올랐고, 그날 양패의 꿈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 “활 잘 쏘는 사람 하나를 이 섬에 남겨 두면 순풍을 얻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꿈에서 깬 양패는 꿈 이야기를 일행에게 하면서 “누구를 남겨 두는 것이 좋을까?”라고 물었다. 이에 사람들은 목간(木簡) 50개에다 궁사의 이름을 쓰고, 이를 물에 가라앉게 해서 제비를 뽑자고 건의하였다. 그렇게 하니 ‘거타지’라는 궁사의 이름이 쓰여 진 목간만 가라앉았다. 양패 일행은 거타지만 남겨 두고 섬을 떠나니, 과연 순풍이 불었다.

홀로 남겨진 거타지가 수심에 잠겨 있자, 홀연히 한 노인이 못에서 나와 말하기를 “나는 서해약(西海若)[서해의 신]인데 해가 뜰 때마다, 매번 한 젊은 중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다라니를 외우면서 이 못을 세 번 돌면, 우리 부부와 자손들이 모두 물 위에 뜨게 됩니다. 그때마다 젊은 중이 내 자손의 간과 창자를 빼 먹어,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우리 부부와 딸 하나밖에 없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반드시 젊은 중이 나타날 것이니, 그대가 활로 쏘아 주십시오.”라고 하니, 거타지는 승낙하였고, 노인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약속대로 거타지가 몸을 숨긴 채 기다리니, 젊은 중이 노인이 말한 대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용이 나타났으니, 노인은 용이 둔갑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노인의 말처럼 젊은 중은 늙은 용의 간을 빼먹으려 했고, 그때 거타지가 활을 쏘아 젊은 중을 명중시키니, 젊은 중은 늙은 여우로 변해 죽었다. 이에 노인이 나타나 감사해 하면서, 거타지에게 자신의 딸을 아내로 삼아 달라고 청하였다. 거타지가 청을 받아들이자, 노인은 딸을 꽃으로 변하게 하여 거타지에게 주었고, 두 용에게 거타지를 호위케 하여 사신의 배를 쫒아가게 하였다. 그 결과 거타지가 합류한 사신의 배는 두 용의 호위를 받고 무사히 당나라에 도착하게 된다. 이를 본 당나라 사람들이 이 사실을 당나라 황제에게 알리니, 황제는 사신을 비상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상으로 금과 비단을 후하게 내렸다. 이후 신라로 돌아온 거타지는 꽃을 다시 여자로 변하게 하여 함께 살았다.

[거창과 거타지]

거타지의 ‘거타(居陀)’는 거창의 옛 이름과 글자가 동일한 관계로 거타지를 거창 출신의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삼국사기(三國史記)』 제34 지리지(地理志) 강주 조(康州條)에 따르면 “거창군은 본래 거열군(居烈郡)으로 혹은 거타(居陀)라고도 한다.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도 그대로 따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거타지의 ‘거타’는 사람의 인명이 아니라 거창의 옛 지명을 뜻하는 것이며, ‘지(知)’는 고대 신라에서 흔히 사용하던 존칭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거타지는 개인의 인명이 아니라, ‘거창의 귀인(貴人)’으로 해석 할 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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