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9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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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노현 |
노씨 아줌마는 하대원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쳤다. 지금의 대일초등학교 자리가 성남여중이었다. 그 전에는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에서 살았다. 친정은 워낙 못 살았다. 거기다 아버지는 팔방 난봉꾼으로 전국을 안 다닌 데 없이 떠돌아 다녔다. 당연히 칠남매는 어머니 혼자 책임을 지셨다. 어머니가 아무런 믿는 구석도 없이 성남으로 이주를 결정하신 것도, 시골에 땅 좀 있는 거 난봉꾼 아버지가 다 없애버리기 전에 먼저 팔아치워 살림에 보태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참으로 무심했던 분이었다. 한번 나가면 이삼년씩 소식이 없었다. 노씨 아줌마가 2년을 꿇어 두 살 아래인 친구들과 동창이 된 데도 사연이 있었다. 학교로 전학증을 떼러 간다고 나가셨던 아버지가 아무런 얘기도 없이 그 길로 다시 집을 나갔고, 오도가도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못해 오빠가 대신 어찌 어찌 전학 수속을 마쳐 주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그 모양이라서 고생은 어머니와 나머지 가족들의 몫이었다. 어머니는 노상 왕십리로 성남으로 장사를 다녔다.
“엄마가 왕십리 쪽 무슨 하양리 무슨 장으로 새벽 장사를 다니셨어요. 인제 거기 하대원에서 남의 땅을 얻어가지고, 그 뭐라고 하죠 도지 주는 거 있잖아요, (소작) 소작 인제 그걸 하셔가지고, 인제 서울 사람 땅을 부치고 그러는데, 보통 뭐 고구마 감자 호박 가지 그런 거 심으면, 학교 갔다 오면 맨 날 그런 거 따고 맨 날 밥해 먹고. 저는 중학교 다닐 적에도 밥을 아침에 다 해먹고 다녔어요. 엄마가 그렇게 장사를 새벽 장사를 가시야 돼요. 거기까지 가려면 옛날 570번 자리 있는 데까지 니아카로 끌고 가야 되고 끌고 오고 그러면서. 밥을 해서 학교 다니면서 제가 밥을 해먹고 다녔어요.”
칠남매였지만, 언니는 노씨 아줌마가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일 때 일찌감치 시집을 가고 없었다. 그래서 딸로서는 둘째였던 그녀가 장사 나간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워야 했다.
“어느 때는 이제 지금 시의원 하셨다가 그만두셨는데 이응백씨라고 옆에 살았는데 하대원에, 그 집이가 테레비가 있어서 그 집에 가 테레비 보다가시리 밥을 할 시간을 잊어 먹어가지고, 그냥 지게 작대기로 얻어터진 적도 생각이 나고 오빠한테. 또 우리 거기가 물이 없었어요 그 집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는데, 그 소죽 끓이는데 그냥 그 물을 길러 와야 되는데, 못 길러오고 그래가지고 그냥 혼나기도 한 적이 있고. 그 집에는 물이 펌프질해서 하는데 참 좋으셨어요.”
노씨 아줌마는 중학교를 마치도록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그곳에 재개발 바람이 불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어쩌고 하는 바람에 상대원으로 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