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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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明勗墓-墓碣 |
이칭/별칭 | 한명욱의 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6-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주홍 |
성격 | 능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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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품(品)자형 |
건립시기/일시 | 1652년 |
관련인물 | 한명욱 |
높이 | 1.3m |
지름 | 3.2m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 6-2 |
소유자 | 청주한씨 청련공파 종회 |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있는 한명욱의 묘 및 묘갈.
[개설]
한명욱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67년(명종 22)~1652년(효종 3)에 걸쳐서 살았던 인물이다. 본관은 청주, 자는 욱재(勗哉), 호는 율헌(栗軒)으로, 참판 한술(韓述)의 장남이다. 처음 음사로 관직에 나아가 현감(縣監)까지 하였으나 그만두고 송강(松江) 정철(鄭澈), 우계(牛溪) 성혼(成渾) 문하에서 수학, 뒤늦게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 진사가 되어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갔다. 성균관 장의(掌議) 때에는 계곡 장유(溪谷 張維)와 더불어 성혼과 율곡(栗谷)의 무함을 소변(疏辯) 하기도 하였다. 1612년(광해군 4) 증광시 문과에 급제, 사과(司果)에 제수되어 기사관(記事官)으로 『선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630년(인조 8)과 1634년에 사신으로 중국 명나라에 다녀왔다. 1646년(인조 24) 자헌대부에 올라 지돈녕부사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조부 한지원(韓知源)과 한술, 한회(韓懷) 삼부자의 시문(試文)을 한데 모은 『삼체집(三體集)』을 편집하였다. 율리(栗里)라는 지명은 이곳에 정착한 그의 호에서 유래하는 것이라 전한다.
[위치]
묘소는 아버지 한술의 묘에서 약 50m 아래에 정남향(正南向)하여 품(品)자 형태로 있다.
[형태]
묘역 조성 방법은 전부인(前夫人)을 쌍분을 조성하여 합장하고, 쌍분의 중간 뒤로 또 하나의 봉분을 만들어 후부인(後夫人)을 부장하여 전체적으로 세 개의 봉분을 品자형으로 조성하였다. 좌측으로는 한지원 묘가 40∼50m의 거리를 두고 정면에 바라보인다. 앞의 두 묘는 용미가 없는 대신, 후부인의 묘는 용미와 활개를 갖추고 있다. 명욱의 묘 하단에는 한회와 정부인 전의이씨(貞夫人全義李氏)의 쌍분이 위치하고 있다. 봉분 중앙에는 묘갈, 상돌, 4각 향로석이 있고, 상돌 좌우에 망주석 등의 석물을 갖추고 있다. 향로석은 크기 높이 44㎝·너비 26㎝이다. 망주석은 8각으로 좌가 높이 176㎝, 우가 높이 166㎝이며 간주석에 석수가 양각되어 있다.
[금석문]
묘갈은 봉분 중앙에 위치하여 정남향(正南向)하고 있다. 백색 화강암의 비좌와 비신 월두형으로 비좌는 마모가 심한 편이다. 비신은 백색 대리석제로 비문은 앞뒤 양면에 있는데, 앞면에 세로 넉 줄로 '司憲大夫知敦寧府使韓公明勗之墓 貞夫人高靈朴氏之墓 貞夫人東萊鄭氏之墓'(사헌대부지돈녕부사한공명욱지묘 정부인고령박씨지묘 정부인동래정씨지묘)라 새겨놓았다. 뒷면의 갈제(碣題)는 '資憲大夫知敦寧府事韓公墓碣銘(자헌대부지돈영부사한공묘갈명)'이다. 비문은 한명욱이 찬(撰)하고 이유(李秞)가 서(書)했으며, 추기(追記)는 이민구(李敏求)가 했다. 뒷면의 비문은 적색을 띠고 있으며, 건립연대는 1743년(영조 19)이다. 비의 총높이는 147cm로, 비좌 높이 16cm, 너비 80cm, 두께 45cm, 비신 높이 131cm, 너비 상 60cm, 하 57cm, 두께 20cm이다.
[현황]
현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 6-2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주한씨 청련공파 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