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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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山申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문수진 |
[정의]
분당구 백현동, 수정구 양지동 등지에서 세거하는 성씨.
[유래]
분당구 백현동 아랫말에 호조참판 신명정(申命鼎)[1650~1698]의 차남 신함이 분당구 보평에서 분가하여 정착한 이래 자손이 세거한 것으로 전하여진다. 동양부원군 신순미(申順美)는 진사 신원(申援)의 6남이고 보평의 최초 정착자인 용인현령 신경일(申敬一)[1551~?]은 신원의 장남인 신준미(申遵美)의 장손이다.
[세거지]
분당구 삼평동 봇들에 신경일, 신정미(申廷美)의 손자 신공일(申恭一)[1560~1664], 신순미의 아들 예조판서 신점(申點)의 차남 신수일(申粹一)의 자손들이 세거하여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정구 신촌동 담박골에도 세거하였으나 비행장에 편입되었다. 수정구 양지동에도 세거했으며, 보평과 백현동에는 주로 신수일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는데 신용철[1940년생]은 신수일의 12대손이다. 판교동 널다리[판교]에도 세거한다.
[인물]
신경일은 용인현령, 아들 신유(申愉)는 주부, 손자 신명직은 통덕랑, 신명설은 증호조참판이었다. 신공일은 무과에 합격하여 도총관에 이르고, 아들 신황(申愰)은 황산도 찰방, 손자 신명중(申命重)은 선교랑, 신명열(申命說)은 진사였다. 또 신점은 예조판서 겸의금부사를 역임했으며 평성부원군과 충경의 시호를 받았다. 신수일은 감찰, 아들 신절(申幯)은 어모장군 용양위 부사과, 증손 신감(申鑑)은 첨지중추부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