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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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秋完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서승갑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성남 지역 출신의, 조선프로레타리아 예술동맹원으로 활약한 항일 문화운동가.
[생애]
추완호의 본적은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209번지이며 서울 숭사동(崇四洞)에 거주하였다. 일명 적양(赤陽)으로 호칭되었으며 1934년 이전에는 조선일일신문 사원으로 근무하였다. 1931년부터 이동식 소형극장의 미술장치부원으로 활동하다 1934년 8월에 체포되어 옥고를 겪었다.
[활동사항]
1931년 8월경 서울에서 추완호(秋完鎬)는 박영희(朴英熙) 등과 함께 신사회의 건설을 목적으로 한 이동극단 형태의 비밀결사 신건설사(新建設社)를 조직하고 미술장치부를 맡아 항일적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영득, 석재홍, 이의백, 최정희 등과 함께 서울 와룡동 시대공론사에서 회합하고 프로레타리아 연극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선전을 행하고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이동식 소형극장이란 결사를 조직하였다.
1931년 11월부터 1932년 5월까지 원산, 함흥, 고원, 서울 방면에서 공연을 통해 대중에게 계급의식을 확산시키려 했다. 1932년 6월경 서울 외아현동 이천석(李千石)의 집에서 결사체의 명칭을 메가폰으로 고치고 연극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사회주의 의식을 확대하기 위한 연극 활동으로 인해 추완호는 1934년 8월 26일 일경에 체포되었다. 그 후 1935년 12월 9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