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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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炯信 |
영어공식명칭 | Lee Hyeong-sin |
이칭/별칭 | 여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성격 | 왕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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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생년 | 1603년(선조 36) |
몰년 | 1682년(숙종 8) |
본관 | 전주(全州) |
대표관직 | 혼전(魂殿) 제관(祭官) |
추증/추서 | 봉산군(蓬山君) |
묘지 |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종친.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덕양군(德陽君)[중종의 다섯째 아들] 이기(李岐)의 증손이다. 풍산군(豐山君) 이종린(李宗麟)의 손자이며, 구천군(龜川君) 이수(李睟)의 셋째아들이다. 이형윤(李炯胤)의 동생이다. 사도시(司䆃寺) 첨정(僉正) 정인수(鄭麟壽)의 외손이다.
[활동사항]
광해군 때 이버지 이수가 순천(順天)으로 유배당하자 적소까지 따라가 지극한 정성으로 봉공하였다. 인조와 효종의 대상(大喪) 때에는 혼전(魂殿) 제관(祭官)이 되어 모든 일을 고례에 따라 준행하였다.
현종이 해마다 온천을 행행할 때는 도총부 부총관(都摠府副總管), 사옹원(司饔院) 제조(提調)로 어가를 수행하였으며, 1679년(숙종 5)에는 복선군(福善君) 이남(李柟)의 모함으로 탄핵되었다.
연로하여 사옹원(司饔院) 제거(提擧)의 직임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논하여 체차(滯差)를 청하였고, 1681년(숙종 7) 이상진, 김수항의 상소에 힘입어 수직(壽職)으로 가계의에 올랐다.
[묘소]
봉산군(蓬山君)으로 봉해졌다. 묘소는 양주 신천 율원[현 서울특별시 성동구 자양동 율리]에 있던 것을 이장하여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전주이씨 묘역 안에 있다. 묘갈은 1698년(숙종 24)에 건립되었는데, 송시열(宋時烈)이 음기를 짓고 조상우(趙相遇)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