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8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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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권오영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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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광주 |
성별 | 남 |
생년 | 1327년(충숙왕 1) |
몰년 | 1387년(우왕 13) |
본관 | 광주(廣州) |
대표관직 | 판전교시사 |
[정의]
고려 말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
[개설]
본관은 광주(廣州). 초명은 원령(元齡). 자는 성노(成老)·호연(浩然)이며 호는 묵암자(墨岩子)·둔촌(遁村)이다.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의 한 사람으로 정몽주(鄭夢周)·이색(李穡) 등 당대의 거유(巨儒)들과 교유하였다.
[가계]
광주 향리 생원공 이당(李唐)과 어머니 인화이씨 사이의 다섯 아들 중 둘째로 출생하였다. 아들은 탄천(炭川) 이지직(李之直)이고, 선조는 신라 17대 내물왕 때 내사성령을 지낸 이장성이다.
[활동사항]
안보(安輔)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특히 경서(經書)에 밝았다. 1347년(충목왕 3) 문과에 급제하였고, 1368년(공민왕 17)에는 왕의 측근인 신돈(辛旽)을 논박하다가 미움을 사 생명의 위협을 받자, 아버지를 업고 영천(永川)으로 도피하여 최원도(崔元道)의 집에서 은거하였다. 1371년 신돈이 주살되자 개경으로 돌아와 판전교시사(判典校時事)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이름과 호를 집과 둔촌으로 바꾸고 여주 천녕현(川寧縣)에서 자연을 벗 삼아 시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저술 및 작품]
시에 특히 뛰어나 꾸밈과 가식이 없고, 직설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시풍으로 당대에 이름을 얻었다. 저서로는 『둔촌유고(遁村遺稿)』가 있다. 아단문고에서 소장본 2권 1책의 『둔촌유고』는 1995년 4월 3일 보물 제1218호로 지정되었다.
[묘소]
둔촌 이집 묘역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산7-1에 있으며, 2008년 5월 경기도 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조선시대에 의정부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다. 1669년에 광주(廣州) 암사(岩寺) 강상[현재의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에 서원을 세우고, 1697년에 구암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아 이곳에 제향되었으나 1870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1998년 성남시의 재정 지원을 받아 둔촌 이집 묘역 아래 재실과 고옥을 복원한 추모재를 건립하고 이집의 영정을 봉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