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5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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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季門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산20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주홍 |
성격 |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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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방형분 |
건립시기/연도 | 1445년 |
관련인물 | 유계문 |
높이 | 1.4m |
지름 | 4.85m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산20 |
소유자 | 문화유씨 안숙공 종중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에 있는 유계문의 묘.
[개설]
유계문[1383~1445]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숙행(叔行)으로, 우의정 유관(柳寬)의 아들이다. 1408년(태종 8) 문과에 급제하여 언관을 제수받았고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다. 1430년(세종 12) 대사헌으로 있던 중 제주 감목관(監牧官) 태석균(太石均)이 많은 말을 죽이고 은폐하기 위하여 대간에게 뇌물을 바친 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당했으나 부친의 상소로 복직되기도 하였다. 이후 이조참의, 형조참판,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고, 1437년과 1442년에 명나라에 다녀온 후 판한성부사, 형조판서, 개성부유수를 지냈다. 1445년 행궁으로 세종을 문안하였다가 영서역(迎曙驛)에서 급사하였다.
글씨에 뛰어나 태종이 돌아가자 그 명복을 기리기 위해 왕명으로 안지(安止), 최흥효(崔興孝) 등과 함께 『금자법화경(金字法華經)』을 썼다. 시호는 안숙(安肅)이다.
[위치]
유계문 묘는 동서울대학과 복정정수장 뒤편 복정안골길을 넘어가다 보면 안골마을 직전 우측의 나지막한 구릉에 북동향하여 있다. 아래에는 양원군(楊原君) 이희(李憘)의 묘가 안장되어 있다.
[형태]
방형의 봉분은 고려묘제의 형태이고, 높이는 1.4m, 전후 지름 3.65m, 좌우 지름 4.85m이다. 봉분 후미에 활개를 갖추고 있으며, 하단 4면에는 높이 28㎝ 가량의 호석을 둘렀으며, 상부는 평평하다. 묘역의 석물로는 봉분의 중앙에 혼유석과 상석이 있고, 상석 좌우에 신구 묘표 각 1기 및 복두(幞頭)의 문인석 1쌍이 있다. 좌측 문인석은 조선 초기 문인석의 한 형태를 보여주는 통비형의 투박한 조각 수법으로, 신체 비례가 불규칙하며, 우측 문인석은 귀가 양 어깨에 붙어 있으며, 홀(笏)을 마주잡은 두 손은 왜소하나, 3단의 옷주름문이 뚜렷하다.
[금석문]
상석 좌우의 묘표 중 우측 원래의 묘표는 비좌와 비신이 월두형이다. 비좌는 4면에 안상문과 상부에 전후 4엽, 좌우 1엽씩의 복판복련문이 조각되어 있다. 비신의 비문은 앞뒤 양면에 있는데, 앞면에는 세로 2줄로 ‘刑曹判書修文殿提學 贈謚安肅公柳公墓(형조판서수문전제학 증익안숙공유공묘)’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세로 3줄로 공의 휘 및 자, 장례일, 비를 고쳐 세운 연도를 새겨놓았다. 이를 통해 비를 세운 때는 1714년(숙종 40)임을 알 수 있다. 비는 총 높이 124㎝로, 비좌 높이 26㎝, 너비 84㎝, 두께 58㎝, 비신 높이 98㎝, 너비 상 48.5㎝, 하 45㎝, 두께 22㎝이다.
봉분 좌측의 신묘표는 비좌와 오석의 비신 월두형으로 1999년 3월 안숙공 종중에서 건립한 것이다. 비신 전면에 세로 2줄로 ‘資憲大夫刑曹判書修文殿提學 贈謚安肅公文化柳諱季聞之墓(자헌대부형조판서수문전제학 증익안숙공문화유휘계문지묘)’의 비문이 있다.
[현황]
유계문 묘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산20에 위치하며, 문화유씨 안숙공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