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4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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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淵墓 |
이칭/별칭 | 양연의 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산31-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주홍 |
성격 |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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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원형 합장분 |
건립시기/일시 | 1542년 |
관련인물 | 양연 |
높이 | 2m |
지름 | 6.2m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산31-3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 있는 양연(梁淵)의 묘.
[개설]
양연[1485~1542]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거원(巨源), 호는 설옹(雪翁)으로 토산현감(兎山縣監) 양호(梁琥)의 아들이다. 1524년(중종 19)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고 사헌부 직제학(直提學)에 올랐다. 1535년(중종 30) 공조참판(工曺參判)으로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고, 1537년 대사헌(大司憲)이 되어 자신도 한때 가담한 바 있던 김안로(金安老), 채무택(蔡無擇), 허항(許沆) 등의 붕당이 옳지 않은 계략을 꾸미자 이를 탄핵하여 처형케 하였다. 그 후 승정원승지,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1541년(중종 36) 우참찬(右參贊)을 거쳐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다.
[위치]
양연 묘는 상대원동 보통골 서광사(西光寺) 좌측의 나지막한 구릉에 남서향하여 있다.
[변천]
양연 묘는 1767년(영조 43)에 건립되었고, 봉분 좌측의 묘표와 신도비는 1999년에 건립된 것이다.
[형태]
양연 묘는 정경부인 나주나씨와의 원형 합장분(合葬墳)으로 용미와 활개를 갖추고 있다. 묘소에는 봉분 중앙에 묘표, 혼유석, 상석, 사각향로석, 장명등과 상석 좌우에 팔각망주석 및 복두(幞頭)의 문인석 한 쌍을 갖추고 있다.
이수는 앞면에 한 마리 용(龍)이 운문(雲文)속에 입을 꾹 다물고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인데, 몸에 비늘의 표현이 없다. 뒷면은 지름 23cm 가량의 큰 원문 여섯 개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측면에도 좌우 두 개씩의 큰 원문이 조각되어 있다. 후면은 직경 23㎝ 가량의 큰 원문 6개가 화려하게 조식되어 있으며, 측면에도 좌우 2개씩의 큰 원문이 조식되어 있다.
[금석문]
양연의 묘표는 봉분 중앙에 비좌와 비신 및 이수를 갖추고 있다. 비신은 백색 대리석제로 표면에 청색의 파도 무늬가 수려하다. 비문은 앞뒤 두 면에 있으며, 앞면에 세로 석 줄로 ‘崇祿大夫議政府左贊成梁公淵之墓 貞敬夫人羅州羅氏祔左’(숭록대부의정부좌찬성양공연지묘 정경부인나주나씨부좌)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의 규모는 총 높이 156㎝로 비좌 높이 26㎝, 너비 84㎝, 두께 50㎝, 비신 높이 82㎝, 너비 49㎝, 두께 16㎝, 옥개석 높이 48㎝, 너비 59㎝, 두께 24㎝이다.
1999년 후대에 건립된 봉분 좌측의 묘표는 백색화강암 비좌와 오석의 비신 및 이수를 갖추고 있다. 비신의 비문은 앞뒤 두 면에 있으며, 앞면에 세로 네 줄로 ‘崇祿大夫議政府左贊成兼知義禁府知春秋館同知經筵事吏曹判書五衛都摠府都摠管南原梁公諱淵 配貞敬夫人羅州羅氏?左 ○坐之墓’(숭록대부의정부좌찬성겸지의금부지춘추관동지경연사이조판서오위도총부도총관남원양공휘연 배정경부인나주나氏?좌 ○좌지묘)의 비문이 있다.
묘역 입구에 남향하여 있는 신도비는 1999년 건립된 것으로 백색화강암제 귀부와 오석의 비신 및 이수를 갖추고 있다. 비신의 비문은 4면에 있으며, 상부에는 전·후·우 3면에 걸쳐 전서(篆書)로 ‘左贊成雪翁梁公神道碑銘’(좌찬성설옹양공신도비명)의 비문이 있다. 비제는 ‘崇祿大夫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知春秋館同知經筵事吏曹判書五衛都摠府都摠管雪翁梁公神道碑銘 幷序’(숭록대부의정부좌찬성겸판의금부사지춘추관동지경연사이조판서오위도총부도총관설옹양공신도비명 병서)이다. 비문은 완산(完山) 이양섭(李兩燮)이 짓고, 14세손 재흥(在興)이 썼다.
[현황]
조선 전기 문신인 양연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