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7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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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巫俗信仰 |
영어공식명칭 | MusokSinang|Shamanistic Beliefs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진아,서종원 |
[정의]
경기도 성남시에서 무당[무속인]을 주축으로 민간에 전승되는 신앙 형태.
[개설]
성남 지역은 예로부터 광주굿이 성행하던 곳이며, 권역상으로는 경기도 무속권역에 속한다. 경기도의 무속은 세습무와 강신무로 나누어진다. 지역적으로는 한강과 남한강을 경계로 하여 이북은 강신무가 주를 이루며, 이남은 세습무가 주를 이룬다. 이러한 구분은 화랭이[광대와 비슷한 놀이꾼패]의 유무로 구분 짓는다. 성남은 남한강 이남 지역으로 세습무 권역에 속하지만, 현재는 그러한 구분은 의미가 없으며, 화랭이 전통 또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성남 지역은 조선시대 강남, 송파 등 현재의 서울 일부 지역과 함께 현 광주시인 광주유수부(廣州留守府)에 소속되었던 지역이었다. 이들 지역은 이천과 함께 하나의 무속권을 이루었으며, 의례는 광주굿이 성행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성남의 무속 의례는 광주굿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광주굿은 경기도굿과는 크게 다르지는 않으며, 한두 거리 정도에서 약간의 차이를 나타낼 뿐이다. 성남의 무속은 서울굿과 경기도굿이 함께 존재하였다. 서울굿은 한양굿이라 불리기도 하며, 경기도굿은 한강 이남의 다른 경기도 지역과 마찬가지로 화랭이를 중심으로 행해지는 수원굿이라 불리는 경기 남부 무속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이는 경기 남부의 무속이 수원을 중심으로 성행하였기에 이렇게 불리는 것이다. 일명 광주굿 무속권에 해당되는 성남에는 한양굿과 수원굿이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선굿이라고 부른다. 또한 이와는 반대로 충청도의 법사들이 주로 하는 앉은굿도 행해지고 있다. 한때는 전라도의 당골이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는 성남의 이주민 정책 영향으로 인해 여러 무속이 혼재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특히 이주가 많이 된 중원구 지역과 수정구 지역에 여러 지역에서 이주해 온 무속인들이 혼재되어 있는 실정이다.
[굿당]
성남 무속의 역사적인 측면을 이해하기 위해서 성남을 대표하는 굿당에 대한 설명이 필수적이다. 성남에는 크고 작은 굿당이 여러 개 있지만 그중 성남의 굿당을 설명하려면 뻬놓을 수 없는 곳이 남한산성에 있는 청량당이다. 경기도 광주시 소재인 청량당에는 조선 인조 때의 장군인 이회(李瀤)가 모셔져 있다. 이회는 남한산성을 축조한 인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하였는데, 그의 억울함을 위로하기 위해 청량당을 세우고 도당굿을 하였다. 이회는 성남, 하남, 광주 지역의 지역 신에 해당하는 부군당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성남은 남한산성과 이회 장군의 영향으로 인해 만신들 중에서도 장군신과 산신을 몸주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이회 장군을 위해 청량당을 세우고 옆에 향나무를 심고 향나무 앞에서 주변 만신들에 의해 굿이 이루어졌다. 6.25전쟁 무렵 칠석과 초파일에 청량당에서 치성을 올리고 10월 상달에 굿을 했으며, 굿을 할 때 성남 사기막골의 곰보만신도 왔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지나고 미신으로 취급되면서 이승만 대통령 시절 청량당 앞 50여m 앞에 있던 당지기 집이 철거되고 350년 마을 대동굿은 사라지는 듯하였다. 이후 1991년 5월 ‘남한산성 대동굿보존회’가 결성되고 그 명맥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한때 성남 지역의 만신들이 대동굿을 지내기 전에 산신제를 지냈을 뿐이다. 1996년에는 마을 주민의 대동 행사와 2001년 광주시의 시 승격과 함께 문화예술 행사로 남한산성 대동굿이 포함되었으나 본래의 도당굿의 모습이 아닌 일반적인 강신무의 선거리굿으로 진행되고 있다. 2016년 대동굿은 열두거리며. 대동굿판의 열두거리 중 첫 번째 순서인 주당퇴산을 시작으로 대신거리, 선녀거리, 상산/별상거리, 신장/대감거리, 군웅/화전거리, 위령제, 도당창부, 뒷전 등의 의식과 ‘별상 13계단작두’가 치러졌다.
[무속인]
성남 지역은 1970년대 이후부터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실시된 이주민 정책으로 인해 원주민보다 이주민이 많아졌다. 이러한 이주민들 속에 무속인도 함께 이주해 온 경우도 있고, 이주해 온 이들이 무속인이 된 경우 등의 특징으로 인해 성남 지역 무당의 유형은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 의례를 행하는 유형에 따라 분류를 하면 선굿을 하는 경우, 선굿과 앉은굿을 함께하는 경우, 충청도 지역에서 주로 행해지는 앉은굿만을 하는 경우, 그리고 점을 주로 보는 점쟁이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이 중 서울굿과 경기도굿이 혼재된 선굿을 하는 경우가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다.
2003년 현재 성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속인은 대략 1,000여 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는 무당들이 무속용품을 구매하는 만물상의 상인과 경신연합회 성남지부 이성재 지부장이 추정하는 숫자를 절충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경신연합회 성남지부에 현재 소속된 회원은 150~200여 명 정도이고, 그 외에도 여러 다른 단체가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기에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러한 무당들은 전적으로 성남 지역에서 태어나서 무속을 행하는 경우보다는 다른 곳에서 무업 활동을 하다가 이주해 와서 정착한 경우와, 이주해 온 뒤에 신이 내려 무속을 행하는 경우가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성남 지역에서 30여 년 이상 무업을 행하고 있으며, 주로 선굿만을 행하며 성남 지역 내에서도 큰무당으로 인식되고 있는 만신 장석만[1946년생]은 정부의 이주민 정책으로 인해 서울의 미아리에서 1970년대 초반 이주해 온 사례이다. 선굿과 앉은굿을 병행하는 여윤정[1960년생] 또한 1980년대 충청도에서 성남으로 이주한 후 10여 년 정도 성남에서 무업 활동을 하고 있는 사례이다. 그러나 이 두 만신의 차이는 장석만은 이미 무업 활동을 하다가 이주해 온 경우이고, 여윤정은 성남으로 이주 후에 신이 내려 무업에 입문한 점이 다르다는 차이점을 지닌다.
[내용과 특징]
무속 의례는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나라굿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굿, 그리고 개인을 위해서 행해지는 개인굿으로 나뉜다. 성남은 광주굿이 성행하던 곳으로, 광주굿 또한 경기도굿이기는 하지만 그중에서 농사를 장려하는 신농씨를 위한 거리가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즉 행초맞이, 황토물림 등으로 불리는 이 거리는 신농씨를 위한 거리로서, 굿이 행해지는 굿청 밖에서 굿을 행한 뒤에 굿청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경기도 도당굿의 초입부에 행해지는 돌돌이에 해당된다.
현재 성남 지역에서는 광주굿의 전통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서울굿과 경기도굿이 혼재되어 나타나며, 도당굿 혹은 대동굿으로 불리던 마을굿의 명맥은 끊긴 상태로서 개인굿만이 행해지는 실정이다. 과거에 행해졌던 대표적인 마을굿은 과거 은행동에서 행해졌던 은행동 대동굿으로, 청량당 산신제도 함께 행해지던 굿이다. 이 굿은 장석만의 말을 빌리자면 ‘거둠추념’, 즉 마을 사람들의 걸립으로 의례가 준비되고 진행되었다. 그 역사 또한 깊으나, 현재는 그 명맥이 끊긴 상황이다.
또 다른 대동굿으로 ‘남한산성 대동굿’이 있다. 이 굿은 남한산성 대동굿보존회를 주축으로 12년 전부터 남한산성에 굿청을 마련하여 매년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굿은 광주문화원에서 후원하고 현재는 남한산성문화제와 함께 일종의 문화행사로 치러진다. 개인굿은 주로 집안의 재수를 기원하고 액을 막아 주기를 기원하는 재수굿과, 죽은 망자를 저승으로 천도해 주기 위한 천도굿인 진오귀굿이 행해진다. 개인굿의 형태는 서울굿과 경기도굿 이 두 가지가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지만, 현재는 서울굿이 더 많이 행해지는 추세이다.
경기도굿은 부정을 치기 전에 산거리를 먼저 하거나 불사거리 전에 산거리를 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반면에 서울굿은 불사거리를 산거리보다 먼저 행한다. 경기도굿의 전통을 지닌 장석만의 재수굿 순서는 산거리→부정→[가망청배]→불사거리→대내림→군웅거리→대감거리→조상→제석→성주→창부→뒷전 순으로 비교가 가능하다. 진오귀굿은 부정→가망청배[앉아서 행함]→진적→상산→별성→신장→영실→구조상→대감→창부→시왕사자→말미→도령돌기→배째기→상식→후영실→뒷전 순으로 진행된다. 현재 성남에서 활동하는 장석만과 여윤정은 성남의 무속 경향을 과거와 비교한다면 지역적인 전통굿 의례는 줄어들었으며, 의례의 규모 또한 축소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반면에 의례 형식 자체는 좀 더 발전된 형태로, 세련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현황 및 문제점]
성남 지역에서 행해지는 무속의 가장 큰 특징은 여러 가지 무속의 유형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성남 지역은 주로 선굿이 행해졌던 지역이었지만 이주민의 유입으로 인해 현재는 굿의 유형에서도 선굿과 앉은굿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선굿은 다른 경기도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서울굿과 경기도굿 두 유형이 혼재되어서 나타난다. 즉 서울굿만을 하는 경우와 경기도굿만을 하는 경우, 그리고 서울굿과 경기도굿을 혼합해서 하는 경우로 나뉜다. 앉은굿은 크게 두 유형의 만신이 행한다. 하나는 충청도에서 주로 행해지는 굿으로, 충청도 지역에서 이주해 온 법사류의 만신이 이 굿만을 주로 행한다. 다른 하나는 선굿과 앉은굿을 모두 행하는 만신이 굿을 의례하는 단골의 사정에 따라 경제적 형편이 여의치 않을 때는 선굿 대신 앉은굿을 해 주기도 한다. 이러한 유형은 대부분 성남으로 이주해 온 이후에 강신 체험을 통해 무업에 입문한 경우이다.
성남 지역 만신의 유형은 선굿을 하는 만신, 앉은굿을 하는 법사류, 선굿과 앉은굿을 모두 하는 만신, 점쟁이 등으로 분류된다. 선굿만을 하는 만신은 무업 경력이 오래된 성숙한 만신이 이에 해당하고, 앉은굿만을 하는 만신은 충청도 지역에서 이주해 온 법사류의 만신이 주를 이룬다. 이 두 굿을 모두 하는 만신은 무업 경력이 다소 짧은 이들이 주로 이 두 의례를 함께 행하고 있다.
점쟁이류는 점사만을 행하고, 굿은 하지 않는 만신을 말한다. 또한 내림굿을 받거나 신을 받은 후에 집안에 무신도 혹은 신상만을 모셔 놓고 무업을 하지 않는 이들도 더러 있다.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만신의 유형은 근대 이후 성남 지역의 변화상을 가장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즉 이주 정책으로 인한 각 지역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들 틈에 만신들 또한 함께 이주해 와서 무업을 행하면서, 이러한 다양한 양상의 무속인들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화랭이를 중심으로 광주굿이 성행했던 성남 지역은 이러한 다소 복잡한 무속의 양상으로 인해, 광주굿의 전통성은 사라져 가고 있으며, 또한 경기도굿보다는 서울굿 위주로 점차 바뀌고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전망]
현재 성남 지역에서는 과거의 전통 무속 의례의 양상은 찾아보기 어렵고 의례의 규모 또한 축소되었지만, 반면에 의례 형식 자체는 서울굿의 영향 등으로 좀 더 세련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게 성남에서 활동하는 만신들의 의견이다. 다른 경기도 지역도 성남과 마찬가지로 세습무의 붕괴와 더불어 강신무의 유입으로 인해 무속의 유형이 다소 혼재된 양상을 보이지만, 성남은 이주민들의 유입으로 인해 이들과는 다르게 무속의 유형이 보다 복잡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양한 지역의 무속의 유형이 혼재되는 양상은 신도시로 개발된 성남 지역의 특성을 가장 잘 대표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의례에 있어서 성남 지역의 특징을 지녔던 의례는 바로 은행동에서 행해졌던 대동굿이었다. 이 대동굿은 남한산성의 청량당에서 지내는 산신제를 시작으로 은행동의 고목나무 터에 마련된 굿청에서 대내림→부정청배→산거리→불사→상산→별상→신장→대감→제석→성주→창부→뒷전 순으로 행해진 굿이다. 경신연합회 성남지부 지부장인 이광수의 노력으로 1995년까지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었으나 2003년 기준 아예 끊긴 상태이다.
은행동 대동굿 의 특징은 창부거리에 있다. 이 거리는 무속의 예능신인 창부신을 위한 거리로 만신을 중심으로 의례가 행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성남 지역에서는 마을 사람들도 굿에 참여시키기 위해 광대나 사당패들을 주축으로 해서 신명나게 한판 노는 연희적인 행사로 치렀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특징을 지닌 대동굿을 부활시켜서 성남 지역민의 주민 화합의 장으로 정착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