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7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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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萊鄭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집필자 | 문수진 |
[정의]
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유래]
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 옹정촌(甕亭村)[독정리]에 정형운(鄭亨耘)이 최초로 거주하였다. 정형운의 손자 정대년(鄭大年)[1503~1578]이 신흥주공아파트 자리에 지은 정자가 있어, 옹촌의 ‘옹’자와 정자의 ‘정’자를 합쳐 옹정촌이라 불렀고, 그 일대 산을 옹정산이라 칭하였다.
[세거지]
중원구 여수동 벌말에 세거하였으나 분당지구에 편입되어 폐동되었다. 은행동, 백현동 잿너머 아랫말과 수풍안에 세거지가 있다. 분당구 야탑동 오야소와 웃탑골에도 세거했다. 참봉공파의 정광남(鄭廣南)의 차남 정익화(鄭翼和)가 화성군 속달리에서 난리를 피해 성남에 이주하여 정착한 이래 후손이 세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당구 정자동에는 정대년의 4남 정순복(鄭純復)의 후손이 광주 태전리에서 살다가 이사와서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인물]
정형운의 아들 정전(鄭荃)[1475~1513]은 대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에 제수되어 대교(待敎)로 승진되었으나 부친상을 당해 슬픔이 사무쳐 병이 되어 상중에 세상을 떠났다. 손자 정대년은 선조 때 이조판서, 좌찬성을 역임하고 우의정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옹정촌에 낙향하여 집을 짓고 사암(思菴)이라 하였는데, 그의 호 역시 사암이니 이는 조상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정창현(鄭昌鉉)[1921년생]은 정대년의 14세손이다. 정광남의 장남 정신화(鄭信和)와 손자 정재열(鄭載悅)은 모두 사헌부 감찰이었다. 정익화의 손자 정영선(鄭永先)은 양근군수를 지냈다. 정태호(鄭泰浩)[1939년생]는 정익화의 10대손이다.
[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