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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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李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집필자 | 문수진 |
[정의]
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유래]
국당공 월성부원군 이천(李蒨)의 후손이다. 이희종(李稀鍾)[1909년생]의 14대조 이배(李培)는 경기도 광주시 서부면 말미산에서 살던 중 마침 왜란을 당하여 왜놈을 잡아 말 두 필에 얽어매고 도망가다가 처치하고 평북 가산으로 가서 살았다. 그후 아들, 장손은 놔두고 두 손자를 데리고 다시 정림(定林)으로 와서 살다가 별세하자 대왕면 천곡(泉谷)에 장사지내고, 장손 이인언(李仁彦)의 3남인 호조참의 이경이 오야동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인물]
이주철(李柱哲)[1918년생]의 11대조인 이경표(李慶標)는 찰방 이숙(李潚)[1590~1636]의 5남으로 첨지중추부사였고, 아들 이현(李炫)은 군자감정, 손자 이위기(李渭基)는 증참의였고, 증손 이영은 도사였다. 이경담은 문경현감 이호(李灝)[1578~1638]의 3남으로 통사랑, 아들 이현(李炫)은 참봉, 이황(李熿)은 군자감 봉사, 손자 이태기(李泰基)는 첨정, 증손 이은(李銀)은 첨사였다. 이상기(李相冀)[1957년생]는 이경담의 11대손이다.
[세거지]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 응달말에 세거하고, 오야동의 아랫말에 세거하여왔다. 이장춘(李長春)[1930년생]의 8대조부터 수정구 창곡동 창말에 세거하였는데, 원래 서울 용산에서 살다가 큰집은 서울 거여동으로, 작은집은 창말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분당구 운중동 중간말에도 세거한다.
[집성촌]
분당구 야탑동 중탑(中塔)에는 이경표(李慶標)가 경기도 양주시에서 이주하여 정착한 후에 후손이 세거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당시 6촌인 이경담(李慶覃)은 상탑골에 살았다.